[전성군 경제별곡] 속도가 주는 심리경제학
[전성군 경제별곡] 속도가 주는 심리경제학
  • 전성군 전북대 겸임교수/경제학박사
  • 승인 2018.11.02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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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전쟁에 몸살을 앓고 있는 현대인

전성군 교수
전성군 교수

시월 중순부터 설악산 대청봉을 서서히 물들인 단풍은 소청봉, 화채봉, 마등령으로 빠르게 하산한 다음, 지리산 자락을 만산홍엽으로 물들이더니, 이어 11월 내장산으로 번져 온 산을 빨갛게 불태운다. 특히 11월 늦가을 내장산은 봄, 여름에는 볼 수 없는 진한 색깔의 꽃들이 큰 가지 작은 가지 할 것 없이 촘촘하게 산야를 온통 뒤덮고 있다. 말 그대로 철마다 형형색색의 옷을 갈아입는 ‘산중미인’ 그 자체다. 

 단풍산과는 달리 바깥세상은 최고의 속도를 향해 도전 중이다. 모든 분야가 속도의 안테나망을 벗어날 수는 없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심지어 영적세계까지도 속도전쟁에 몸살을 앓고 있다. 그만큼 ‘빠름’이 미덕인 시대다. 우리 사회는 눈 깜짝할 사이에 어떤 것이 결정되어 버리고, ‘느리다’는 말이 ‘불편하다’는 말로 바뀌어 가고 있다. 하루하루 ‘속도와의 전쟁’을 치르듯 살아가는 이들에게 ‘빠름’은 경쟁력이자 주도권의 상징이 됐고, 속도를 지배하는 사람이 결국 승자가 되는 시대가 됐다. 이것은 바로 놀라운 속도에 기반을 둔 사회가 도래한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속도를 숭배할수록 인간소외가 깊어진다는 점이다. 신속함으로 인해 생활이 편리해졌으면 전보다 마음이 풍요로워져야 하는데 답답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나고 있다. 근본적으로 세상의 빠른 속도가 인간의 풍요로운 마음의 척도를 빼앗아간 까닭일 것이다. 

  이런 힘든 시기에는 삶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단풍산을 찾아보자. 봄·여름 내내 태양의 양광을 흠뻑 빨아들인 나뭇잎들이 가을철 맑은 공기를 여태껏 저축해 두었던 태양 빛을 프리즘으로 갈라 영롱하게 발산하는 모습은  아무리 예찬해도 모자랄 게 없다. 무더운 여름 청량하게 땀을 씻어주던 플라타너스 잎은 단풍으로 거듭나서 사람의 눈을 즐겁게 해주지 못하고 된서리를 맞아 녹색 잎으로 나뒹군다. 구둣발에 밟혀가며 천대를 받아도 걸어가는 사람에게 사색에 잠기게 하는 영감을 주며 생각의 끈을 놓지 않게 하는 몸가짐은 자연의 순리에 묵묵히 순응해야 함을 일러주는 교훈이 아니겠는가. 

단풍산을 찾아 삶의 속도 조절을 

  가을을 따라 멀리 가지 않아도 높고 깊은 산속이 아니라도 도시를 조금만 벗어난 곳에는 단풍꽃이 활짝 피었다. 봄, 여름에는 볼 수 없는 진한 색깔의 꽃들이 촘촘하게 산야를 온통 뒤덮고 있다. 주위에 있는 붉고 노란 단풍나무들과 함께 하며 초록을 지닌 꽃으로 맑고 싱싱하게 자리매김을 한다. 이런 단풍산은 우리들에게 어떤 속도도 요구하지 않는다. 무엇 하나 강요하는 일도 없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빠르지도 또 더디게 흐르지도 않는다. 아무리 훌륭한 음악이라도 단풍이 불타는 소리에는 미치지 못한다. 단풍이 불타는 소리는 그 자체가 생명을 지닌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과 완전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또한 그 소리는 아주 작고 여리기 때문에 아무나 들을 수 없을 만큼 사소하지만,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면 사람들의 마음 내면에 훌륭한 깨우침을 담고 있다. 가을 산속 단풍나무 아래 덥석 누워있다 보면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만큼이나 선명하게 들리고, 머리 위로 보이는 단풍나무 가지에는 빨갛게 불태우는 단풍잎 소리가 세속에 찌든 귀를 맑게 씻어줄 것이다. 여기서 자연이 선물한 속도와 마음의 풍요를 누려보자. 이것만이 인간성 회복의 첩경이 될 수 있다. 

  단풍이 곱게 든 산은 현대인의 눈과 마음을 동시에 빼앗음으로써 삶의 속도를 선택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속도는 자신의 선택이라는 것과 자신이 선택한 속도에 따라 세상이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벌써 11월, 늦기 전에 가까운 가을 단풍산을 찾아 곱게 물든 단풍의 몸짓을 감상하면서 삶의 속도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자.

전성군 전북대 겸임교수/경제학박사  bodo@nd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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