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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회 칼럼] 뺄셈의 정치, 덧셈의 스포츠

평창 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린지 벌써 달포가 지났건만 아직도 그 감동 어린 장면이 뇌리 속 깊게 남아있다. 거기에는 기쁨 슬픔 환희 아쉬움 즐거움 탄식 흥분 괴로움과 같은 인간의 모든 감정이 다 담겨져 있었다. 어느 뛰어난 작가의 상상력도 초월하는 각본 없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우리는 세계에서 열두 번째 동계올림픽 개최국이 되었다. 흔히 하계·동계올림픽, 월드컵과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세계 4대 스포츠 제전이라 이른다. 대한민국은 이번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에 이어 이를 모두 개최한 세계 다섯 번째 나라가 되었다. 불과 60여 년 전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은 나라라고 누가 믿겠는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실로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

올림픽은 체육대회이자 문화제이고 그 꽃은 개폐회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모든 올림픽 개최국은 개폐회식에 가장 공들인다. 개최국은 개폐회식을 통해 자국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과시함으로써 국가브랜드 가치를 높이고자 한다. 이번 평창올림픽에서도 송승환 감독팀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우리나라 역사와 문화를 격조 있게 풀어내 외국 언론으로부터 많은 찬사를 받았다.

대한민국은 금 5, 은 8, 동 4개를 획득해 7위를 차지했다. 당초 금 8, 은 4, 동 8개로 4위를 하겠다는 목표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선전했다. 우리국민 어느 누구도 7위를 한 우리 선수단에 돌을 던지지 않았다. 메달을 딴 선수는 그 색깔에 관계없이 하나같이 만족해했다. 이제까지 있었던 국제대회에서 보여줬던 행태와는 확연히 달랐다. 대회 개막 임박해서 뒤늦게 참가를 결정한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을 따뜻하게 맞이했지만 과거처럼 그들에게 열광하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선진국 진입을 앞둔 국민다운 성숙한 모습이었다.

다양한 종목에서 메달을 딴 것도 큰 수확이었다. 여자 피겨,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등 빙상부문에만 의존하던 과거와는 달랐다. 컬링, 스켈레톤, 봅슬레이, 스노보드 등 설상부문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인구 5만 여명의 마늘 주산지 의성 출신으로만 구성된 ‘팀 킴’은 당당히 은메달을 따 신데렐라가 되었다. 얼마 전까지 대빗자루로 청소하는 것 같다고 조롱 받던 경기였다. 금메달과 은메달을 각각 거둔 스켈레톤의 윤성빈과 봅슬레이 남자 4인승의 원윤종 팀도 영웅이 되었다. 썰매 하나 제대로 없던 척박한 환경을 딛고 일어선 인간승리였다. 스노보드에서 은메달을 딴 ‘배추보이’ 이상호는 대한민국 스키에 새로운 역사를 썼다. 남녀 쇼트트랙은 금 3, 은 1, 동 2개를, 남녀 스피드 스케이팅은 금 1, 은 4, 동 2개를 합작해 효자종목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감동스러운 장면은 여자 500m에서 우승을 다툰 이상화 선수와 고다이라 나오 선수의 포옹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승부는 치열했고 결말은 아름다웠다. NBC는 “스포츠맨십이 뭔지 보여줬다.”고 했고, AP통신은 “역사적인 문제로 사이가 좋지 않은 두 나라지만 화합을 보여줬다.”고 박수갈채를 보냈다. 고다이라는 눈물을 쏟는 이상화를 꼭 안아주면서 서툰 한국어로 “잘했어!”라고 했고, 이상화는 “고다이라를 존경한다.”고 말했다. 두 선수가 경기 직후 어깨동무를 한 채 자국 국기를 어깨에 두르고 아이스링크를 도는 광경은 이번 올림픽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선정되었다. 스포츠 세계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을 두 선수는 세계인들에게 선물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어느 나라가 1등을 했고, 어느 종목에서 누가 1등을 했는지는 금세 잊힌다. 하지만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 간 펼친 명승부와 이어진 포옹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정치가 나눈 것을 스포츠가 하나로 묶는다고 한다. 한일 양국 간 껄끄러운 정치가 이번 올림픽을 계기로 봄 눈 녹듯 풀리게 되기 바란다.

허정회 칼럼니스트  hihuh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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