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리우 올림픽 열기가 요즘 날씨만큼 뜨겁다. 올림픽 역사상 남미대륙에서 처음 열리는 지구촌 최대 축제다. 우리나라와 정확하게 12시간 시차가 있기에 모든 경기가 우리들이 잠자는 시간대에 벌어지고 있다.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걸 즐기느라 밤잠을 설치고 있다. 때문에 주간(晝間) 생활리듬을 잃은 ‘리우 올림픽 좀비’ 현상이 일고 있다 한다.

리우 올림픽 초반 특징은 종목별 정상급 스타들이 초반에 대거 탈락했다는 거다. 그중 남자 테니스 세계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의 패배는 이변 중 이변으로 꼽힌다. 여자 복식테니스 최강 콤비라 할 수 있는 윌리엄스 자매도 마찬가지다. 개막 첫날 우리에게 첫 금메달을 안겨 줄 거라 기대되었던 명사수 진종오도 10m 권총에서 메달 사냥에 실패했다. 국민들의 지나친 기대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던 것이다. 우리나라 남자 양궁 간판 김우진 경우도 그렇다.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그는 개인전 32강에서 인도네시아 선수에게 어이없이 져 탈락했다. 예선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웠기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 또한 컸다. 유도에서 유독 세계랭킹 1위 선수 탈락이 많았다. 남자 60kg급 김원진, 66kg급 안바울, 73kg급 안창림이 초반 고비를 넘기지 못했다. 이들 외에도 많은 스타들이 초반 줄줄이 짐을 쌌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 심리적인 요인이 가장 크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랭킹이 높은 선수는 지켜야 한다는 부담이 큰 반면 하위 랭커는 져도 부담이 덜한 도전자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또 상위 랭커들 전술·기술·약점은 100% 노출되어 있는 반면, 하위 랭커들은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이다. 상대를 얕잡아 보는 경적(輕敵)도 한 요인이 될 수 있다. 실력이 엇비슷한 정상급 대결에서는 일순간 방심이 승패를 좌우하기 십상이다. 이렇듯 내놓으라 하는 각국 대표들이 경쟁하는 올림픽 무대에서는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다.

이는 우리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한 때 성공했다 할지라도 그걸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거나 누군가로부터 도전을 받아 그 탑은 무너지게 되어 있다. 반대로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는 법이다. 일시적으로 곤경에 처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언제까지나 지속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예부터 청년급제(靑年及第)를 경계했다. 너무 일찍 출세하면 많은 사람들이 종종 독선과 아집에 빠져 교만해지기 쉽다. 그 영화(榮華)에서 멀어지면 평생 과거 회상에 젖어 의미 없는 삶을 살고 만다. 바둑에서도 선작가(先作家) 오십호(五十戶) 필패라는 격언이 있다. 초반 50집을 먼저 지은 사람은 반드시 진다는 거다. 초반에 대마(大馬)를 잡고나면 부자 몸조심을 하게 되고, 그게 빌미가 돼 결국 판을 그르치게 된다.

만물에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의 이치가 있다고 한다. 세상만사는 생겨나서 자라고 이루어지고 거두어진다는 것이다. 사람으로 치면 30대까지 생겨나서 자라고, 50대까지 뭔가 이루어 인생의 정점(頂点)을 찍고, 60대 이후 여생을 보내다 결국 때가 되면 이 세상과 이별하게 된다. 공자도 논어 위정편(爲政篇)에서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자립하였고, 40세에 유혹에 빠지지 않았고, 50세에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고, 60세에 들으면 그대로 이해했고, 70세에 마음대로 해도 법도를 넘지 않았노라”고 하였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자서전이라고 평가 받는 문구다. 후세에게 이와 같은 삶을 살 것을 권면(勸勉)하는 글귀이기도 하다.

요즘 세간에 ‘흙수저, 금수저’ 담론이 그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건 무얼 가지고 태어났느냐가 아니다. 세상에는 빈손으로 왔지만 큰 족적을 남기고 간 사람들이 많다. 각자 자기 나름대로 명확한 목표와 꿈을 지니고 그걸 이루기 위해 꾸준하게 정진하는 삶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원형이정과 공자 가르침에 따라 나이에 맞게 순리대로 한 생을 살면 그게 바로 성공적인 삶이라고 생각한다. 리우 올림픽에서 조기 탈락한 세계적인 스타들의 씁쓸한 퇴장이 우리네 삶에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는 교훈을 새삼 일깨워준다.

 

저작권자 © 엔디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