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든 개인이든 누구나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누리려는 심리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밀에 비해 우수한 쌀을 유럽은 왜 재배하지 않았을까, 사실, 쌀은 경제적, 생산 기술적 관점에서 보면 밀에 비해 훨씬 뛰어나다. 쌀은 이어짓기 피해가 적고 수확이 많다. 잡초나 세균성 질병 발생 역시 밀에 비해 적다. 그런데 쌀은 세계 전체 생산량의 90퍼센트가 아시아 지역에서 재배된다. 유럽과 쌀의 궁합이 맞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쌀은 자연에 대한 영향력을 매우 많이 받는다. 이는 밀이나 옥수수와 같은 밭작물에 비해 기후조건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대개 농작물의 발육이나 성숙에는 온도나 일조량, 강우량과 같은 조건들은 작물의 생육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작물들은 작물마다 요구하는 조건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쌀과 밀 사이에도 큰 차이가 있다.

첫째, 온도 문제다. 쌀은 생육과정에서 높은 온도를 필요로 한다. 전 생육기에 걸쳐 필요한 적산온도(積算溫度)가 약 4,000℃나 된다. 벼가 자라는 데는 그만큼 높은 온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추위에 강한 품종이 개발되기 이전까지는 생육기간 약 3개월 동안의 벼가 필요로 하는 온도는 월평균 약 20℃이었다. 따라서 벼는 높은 온도조건에서만 재배할 수 있는 작물이다. 이 때문에 쌀의 주산지는 대체로 남위 18° 에 서 북위 20°에 이르는 열대와 아열대 지역에 분포했다. 그러나 지금은 품종개량의 결과,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도 재배된다. 특히 일본의 경우에는 북위 40°이상의 홋카이도지역에서도 재배되고 있고, 유럽에서도 특별히 이탈리아에서만 북위 45°이상의 북방 지역에서 재배된다.

반면, 밀은 낮은 온도에서도 생육이 가능하다. 적산온도로 보면 쌀의 절반 수준인 2,100℃이다. 따라서 날씨가 덥고 온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오히려 밀재배는 불가능하다. 그래서 날씨가 따뜻한 온대지역에서는 기온이 떨어지는 가을에 파종하여 온도가 높아지는 늦봄이나 초여름이 되기 전까지 충분히 영양생장을 완성시키는 재배방법을 취하고 있다.

둘째, 강수량 문제다. 논 작물인 쌀은 생육하는데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쌀은 비가 많이 내리는 아시아 몬순 지역을 중심으로 재배된다. 일반적으로 쌀 재배지역은 대부분이 연 강수량이 1,000㎜가 넘는 지역들이다. 그 이하의 지역으로는 파키스탄 일부, 중국 중부내륙, 이탈리아, 미국의 캘리포니아 등이 있으나 이들 지역은 인공적으로 물을 끌어들이는 인공관개나 빙하가 녹은 물을 이용하여 쌀을 재배하고 있다.

반면 밀은 수분 요구량이 적다. 쌀의 20퍼센트 수준의 수분에서도 밀은 자란다. 그래서 밀 재배지역은 쌀보다 강수량이 적은 지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특히 밀 주산지의 75%는 연 강수량이 300~600㎜지역에 분포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밀의 단위 면적당 수확량이 가장 높은 덴마크나 네덜란드, 독일 등도 연간 강수량이 500~600㎜내외의 비가 적은 지역들이다.

셋째, 해발의 표고(標高) 문제다. 밀은 높은 고산지대인 티베트 고원이나 네팔의 오지와 같이 해발 2,000m가 넘는 곳에서도 재배된다. 그러나 쌀은 표고가 높은 지역에서는 온도가 낮아 재배할 수가 없다. 따라서 쌀을 생산할 수 있는 지역은 지리적으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

넷째, 강우량 문제다. 비는 작물이 자라는 생육기에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비는 여름철에 많이 내려야 한다. 그러나 유럽은 아시아와는 달리 작물의 생육과는 전혀 무관한 겨울에 비가 많이 내린다. 보통 유럽의 주요 도시들은 여름철에 월평균 50mm 이하의 비가 내리지만, 겨울이 되면 50mm 이상이 내린다. 사실 겨울비는 작물생육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비다. 이처럼 유럽은 높은 온도와 물을 많이 필요로 하는 쌀 재배에 적합하지 않다. 아무튼 이런 조건 때문에‘유럽사회와 쌀’은 궁합이 맞지 않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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