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업무 인과관계 인정

유한양행 대방동 본사 사옥 전경.
유한양행 대방동 본사 사옥 전경.

[엔디엔뉴스=조창용 기자]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망인의 우울증이 발병‧악화했고, 그로 인해 정상적인 인식‧정신적 억제력이 저하돼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에 처해 사망에 이르게 된 것으로 추단할 수 있다”. 법원이 유한양행에서 근무하다 사망한 A씨의 업무와 사망 사이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박정대)는 지난 9월 14일 전직 유한양행(대표 조욱제) 직원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3일 밝혔다.

5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박정대 부장판사)는 사망한 수의사 A씨의 배우자 B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 취소소송에서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수의사 A씨는 2016년 유한양행에 입사해 양봉·축산 관련 업무를 맡아오다가 2020년 1월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반려동물 신제품 개발 등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A씨는 정신 질환 관련 과거 병력이 없었지만 이때부터 우울증을 겪고,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결국 A씨는 같은 해 12월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유족은 A씨가 사망 하루 전 "성과를 내지 못해서 더 이상 승진할 수 없을 것"이라며 "견디기 힘들 것 같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유족은 "극심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정신적 인식능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자해, 사망에 이르렀으니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이 "회사 업무로 인한 압박보다는 업무에 대한 개인적인 완벽주의 성향과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현실로 인한 것"이라며 부지급 결정을 하자 유족은 소송을 냈다.

B씨는 "A씨의 죽음은 업무상 스트레스로 발생한 것"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으나 공단은 "업무 압박보다는 업무에 대한 개인적인 완벽주의 성향과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현실에 따른 선택"이라며 부지급 결정했다.

B씨에 따르면 A씨는 2020년 초 과장으로 승진하면서 그전까지 경험하지 못한 업무를 추가로 담당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A씨는 새로 출시한 제품의 주요 성분 표시 문제를 두고 극심한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됐다.

하루 2~3시간밖에 못 자는 수면 장애를 겪고, 심장이 뛰고 불안해하는 증상도 있었다. 사망 전날 A씨는 '자신이 성과를 내지 못해 인사고과가 낮아져 회사에서 더이상 승진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승진 못할 경우 견디기 힘들겠지' 등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재판부는 "산업재해보상법상 업무와 재해 발병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면서도 "그 인과관계가 반드시 의학적·자연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지는 않아도 된다"고 설명했다. 규범적 관점에서의 상당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경우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당사자를 에워싸고 있는 주위 상황,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업무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발병 및 악화됐고,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없을 상황에 이르러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된 것"이라고 처분의 위법성을 설명했다.

안정적인 가족을 꾸려와 가족의 지지체계가 부족하지 않았고 경제적 형편도 양호한데다 종교적 신념으로 극단적 선택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점 등도 법원의 판단에 힘을 보탰다.

한편, 유한양행(사장 조욱제)은 지난 9월 9일, 2023 자살예방캠페인 ‘생명사랑 밤길걷기’에 임직원과 가족 201명이 참여했다. 회사는 9월 10일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을 맞아, 유한양행 임직원과 가족들이 생명사랑 밤길걷기 행사장인 여의도 공원에 참여하거나 또는 원하는 장소에서 7.1km를 걸으며 서로를 응원하고, 생명을 밝히는 활동을 펼쳤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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