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교수
김동수 교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내년도 예산안을 설명하는 국회서 시정연설을 했다. 시정연설은 여야의 신사협정 이후 달라진 국회 분위기를 연출해준 무대였다. 이재명 대표도 시정연설에 앞서 가진 5부 요인·여야 지도부와의 환담 자리에 참석해 윤 대통령과 만났다. 윤 대통령은 자세를 낮추고 야당에 손을 내밀었다. 정치복원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장면들이었다.

윤 대통령은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에 입장하면서 민주당 의원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단상에서 시정연설을 시작하면서도 국회의장단을 호명한 뒤 “또 함께해주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님, 이정미 정의당 대표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님…”이라며 야당 대표를 먼저 호명하는 예우를 갖췄다. 통상 여야 순으로 호명하는 정치권의 관례를 깬 것이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이 진행되는 동안 여당 의원들은 수십 차례 박수로 화답했고,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대부분 자리를 지켰다. 다만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앞서 윤 대통령이 국회 본관으로 들어갈 때 로텐더홀에서 ‘민생경제 우선’ 등의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달 24일 여야 원내대표가 국회 회의장 내 정쟁성 피켓 금지, 국회 본회의장 고성·야유 금지에 합의한 이후 국회의 참다운 모습이다. 이젠 국회도 ESG운동에 동참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우리가 처한 글로벌 경제 불안과 안보 위협은 우리에게 거국적, 초당적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고 했다. 나라 안팎의 어려움을 설명하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초당적 협력을 야당에 요청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예산안 집행과 관련해 수차례 야당을 비롯한 국회의 “협조”를 당부했다. 첨단 산업 분야 세제 지원, 교권 4법 개정 등과 관련해선 “국회의 관심과 협조에 감사드린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이 연설 후 국회 여야 상임위원장들과 첫 오찬을 가진 것도 처음 있는 일이다. 윤 정부 출범 후 1년 5개월 만에 여야 수뇌부가 한자리에 모였으니 만시지탄이 아닐 수 없다.

윤 대통령은 대한민국 미래와 미래세대를 위한 3대 개혁, 건전재정 기조,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 보호 등을 강조했다. “저출산이라는 어둠의 터널에서 빠져나오려면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고 사회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케 하는 경제사회 전반의 구조 개혁이 필요하다”며 “연금·노동·교육개혁을 위해 깊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한다”고 했다. 세계 경기 위축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은 이스라엘·하마스 무력 충돌 여파로 내년 경제 전망은 악화일로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서민과 취약 계층에 대한 보살핌에 더욱 힘을 써야 한다. 그런 점에서 약자 보호에 방점을 둔 정부의 내년 정책 방향이 실질적이고 효율적으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여야가 초당적으로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연금 개혁 추진 등이 부담스럽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지만, 좌고우면하지 않고 개혁을 추진함으로써 책임 있는 정부와 여당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지금 우리 경제가 대내외적으로 복합위기를 맞고 있는 처지를 감안한다면 적어도 민생 살리기라는 목표에 대해선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한국 경제는 선진국 중에서도 가계부채 문제 등에서 IMF로부터 가장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지 못하면 민생들의 삶은 고달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치의 갈등과 실종으로 경제의 발목을 잡아선 안 된다.

윤 대통령과 여야가 가장 먼저 머리를 맞대고 할 일은 민생을 살피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물가와 민생 안정을 모든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총력 대응하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야당을 비롯한 국회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민생·개혁 입법을 위해서는 야당과 원활한 소통이 필수이다. 야당 역시 국민 삶과 직결된 사안에 대해 여야가 따로 없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당도 구호로만 민생을 외치지 말고 국회의석수를 앞세운 입법 폭주와 정부 발목잡기를 자제해야 한다. 야당과 소통하려는 윤 대통령의 이런 적극적인 행보가 민생과 경제를 위한 여야 협치와 정치 복원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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