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제주 매거진

 제주는 1년 365일 제각각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자신의 매력을 알아주는 사람들에게감 슬며시 감춰진 속살을 보여준다. 제주의 매력에 흠뻑 빠져 제주살이를 택한 사람들이다. 제주도에는 푸른밤, 바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소설가 서진과 편집 디자이너 강선제, 그리고 열네살 노견 보동이가 제주살이에 나선다. 그 길에서 만난 화가, 쉐프, 일러스트레이터, 잡지 발행인까지…. 제주살이를 택한 사람들을 만나 제주, 사람 그리고 삶 이야기를 들어본다.

 전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지 그곳을 가장 빠르고 속속들이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 바로, 그지역에서 발행되는 잡지를 보는 것이다. 10여 년간 부산에서 잡지를 만들었기 때문에 지역 잡지에 더욱 관심이 많다.

지난 여름 우연히 들른 공천포의 요네상회 카페에서 리얼 제주 매거진 인(iiin, i'm in island now)을 펼쳤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마치 소천지 앞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다가 열대어와 산호 밭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봄에 창간을 해서 겨우 2호 째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쁘고, 꼼꼼한 잡지였다. 일러스트 풍의 패턴 표지부터 해녀 특집 기사, 사진, 해녀 복을 만드는 분, 제주의 여름 음식과 제주 서핑에 대한 이야기까지…. 렌트카 회사에서 무료로 주는 쿠폰북이 아니었다. 진짜 잡지였다.

 이곳에서 살고 있지 않다면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이야깃거리, 볼거리로 가득한 진짜 잡지. 이 잡지를 만드는 내공 높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굴까? 이번 기획을 핑계로 제주에서 제일 궁금했던 사람을 맨 처음 만났다. 바로 잡지 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고선영(사진 왼쪽 두 번째)이다.


그녀가 2010년에 제주에 짐을 푼 이유는 다년간 여행 잡지의 일로 쌓인 여행의 여독을 풀기 위해서였는데 안덕면 대평리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대평리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안덕계곡을 통해 들어가는 길 때문이었어요. 전혀 제주답지 않은, 마치 강원도의 어느 산골짜기를 달리는 기분이 드는 길이었지요. 그런 예쁜 길을 달리다 갑자기 눈앞에 툭, 우리 마을이 튀어나와요. 바다를 향해서요. 마을 이름이 '난드르'인건 '바다를 향해 난 넓은 들'이라는 뜻이 담겼기 때문이에요.

마늘농사를 많이 지어 1년 내내 마을은 초록이고 고개를 돌리면 한라산과 쪽빛 바다가 펼쳐지는 멋진 마을이에요. 그 풍경들 때문에 막연히 이 마을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집을 얻었고 이사를 왔어요. 지금까지 4년 넘게 대평리에서 살고 있네요.”

 사진작가인 남편 김형우(발행인)씨와 제주 정착은 별 어려움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하는 일이 비슷해서 생활패턴이 많이 바뀌지는 않았다. 처음 2,3년간은 10일에서 15일 정도 제주 이외의 지역에서 보냈다. 하지만 점점 제주에서 지내는 날이 늘어났다.

“우리나라 전역에 아름다운 곳은 참 많잖아요. 산도 좋고, 바다와 강도 좋고. 제주에는 가장 좋은 것들이 다 모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제주에선 블로그를 검색해 가며 맛집 순례를 할 필요가 없어요. 어차피 요리는 양념과 손맛이 좌우를 하는데 제주는 달라요. 워낙 식재료가 좋으니까 음식에 포장을 할 필요가 없어요. 제주 음식에 자극적인 고추나 마늘 양념보다는 담백한 된장이 주를 이루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답니다.”

제주의 참맛을 점점 알게 되면서 그것을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거라고는 잡지뿐인데, 제대로 된 지역 잡지가 있었더라면 만들려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근처 사계리에 살고 있는 이웃 부부 하민주(편집장), 이재하(대표 CEO) 씨와 김은정(아트디렉터)씨와 의기투합해서 잡지를 만들기로 했다. 하민주, 이재하 부부는 이미 Lazybox 게스트 하우스(현재는 운영하지 않음)와 Lazybox 카페를 운영하면서 사계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발행 부수의 반 정도는 제주도의 카페와 문화공간에서 판매하고 반 정도는 전국 서점으로 유통된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제외하고는 서점을 찾아보기 힘든데 iiin을 판매하는 카페가 간이 서점 겸 문화공간의 거점이 되고 있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잡지의 창간을 두고 주위에서는 걱정이 많았지만 지난 가을호와 겨울호가 완판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

이렇게 안정적으로 잡지를 발행할 수 있는 것은 구성원들의 성격이 욕심이 없고 게으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두 부부의 팀워크, 구성원의 재능이 각각 달라서 의견충돌이 일어날 일도 없다고. 무엇보다 각자 생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또한 그 생업이 잡지와 동떨어지지 않기에 잡지에는 여유가 느껴진다. 그럴듯한 광고도 많이 없고 가격도 부담 없이 6천원인데다 계절별로 한권씩만 나온다.

잡지를 들춰보면 여백이 많다. 허툰 여백이 아니라 사진과 글 사이, 그림과 글 사이에 생각할 여유를 주는 여백이다. 어차피 제주에 내려온 이유가 안달복달 사는 것에 지쳐서가 아니었나? 그들의 사는 방식이 잡지에 그대로 녹아 있는 듯 하다.

“우리는 제주도에 이주를 해 온 사람들이잖아요. 여행자들의 시선과도 다르고 토박이들과도 다를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제주를 바라보는 시선이 더 객관적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iiin 의 운영상의 목표는 판매만으로 잡지가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현재는 서울에서 인쇄를 하고 있지만 제주 안에서 인쇄하는 방법도 궁리 중이다. 잡지 외에도 단행본 출간, 제주 작가들과 손잡고 제주를 대표하는 디자인 상품 등을 준비하고 있다. iiin 의 최종 목표는 무엇일까?

“제주의 아름다움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고 잡지를 통해 더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

첫 인터뷰라 머쓱하면 어떨까 걱정을 했는데 고선영은 내가 질문을 할 겨를도 없이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조급해하지 않고, 프로페셔널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그들의 이야기가 선배님들의 경험담처럼 들렸다.

포토그래퍼로 함께 취재에 나선 아내도 나와 함께 잡지를 만들었기에 그들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었다. 나이도 우리보다 선배고, 잡지계에서도 선배고, 무엇보다 제주 정착의 선배다. 무리 없이, 하고 싶은 일을,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멋진 선배 말이다.

iiin 겨울호 특집은 바람이다. 제주에는 불어오는 방향과 지역에 따라 바람의 이름이 다르다고 한다. 겁선내는 파도가 부풀며 부는 동풍이고, 산두새는 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지금, 제주에 부는 새로운 바람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지는 잘 모르겠다. iiin 은 그 바람을 잘 전달하는 잡지다. 직접 펴보면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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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서진

여행을 다니며 소설을 쓴다. 지난 여름 제주에 석달간 머물게 되면서 제주의 매력에 빠졌다. 아내와 반려견 보동이와 함께 올해에는 제주에 정착할 계획이다. 땅은 마련했고, 집은 직접 지을 것이다. 지은 책으로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제12회 한겨레 문학상)', '하트브레이크 호텔','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파라다이스의 가격','청춘 동남아' 등이 있다.

http://3nightsonly.com
http://facebook.com/bookwanderer

▷사진/ 강선제

※ 이 글은 제주특별자치도와 다음카카오 협력사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스토리텔링형 뉴미디어 콘텐츠 제작 사업의 하나로 다음카카오의 모바일플랫폼 '다음 스토리볼'(storyball.daum.net/story/324)과 포털 다음(http://storyball.daum.net/story/324)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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