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교수
김동수 교수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을 656조9,000억 원 규모로 확정했다. 올해 본예산보다 2.8% 늘어났는데 재정통계가 정비된 2005년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연평균 증가율 8.7%의 3분의 1 수준이다. 세수 부족 상황에서 건전재정 기조를 지키려는 정부의 고육책이다. 2017년 660조 원이던 국가채무는 5년 만에 1,000조 원을 넘어선 반면 올 상반기 국세 수입은 39조 원이나 줄었다. 내년 예산안은 연구개발(R&D)과 국가보조금 부분이 대폭 삭감돼 총 23조 원의 지출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정부는 출범 이후 줄곧 강력한 긴축재정 의지를 표명해 왔다. 정부 나름대로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겠다는 고민이 묻어난다. 생계급여액을 역대 최대 수준으로 올리고, 결혼을 안 했어도 아이를 낳았다면 ‘공공분양주택 특별공급’ 혜택을 주는 등 취약계층 지원과 저출산 대응에 예산을 늘린 것은 평가할 만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전 정부가 푹 빠졌던 재정 만능주의를 단호하게 배격하고 건전재정 기조로 확실하게 전환했다”며 “선거 매표 예산을 배격해 절약한 재원으로 서민과 사회적 약자를 더욱 두텁게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정부 예산안은 9월1일부터 100일간 열리는 정기국회로 넘어가 국회 심의를 거쳐 최종 확정된다. 염려되는 것은 국회 심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지역구 챙기기에 급급하면 예산이 더 늘어날 소지가 다분하다. 거액의 예산이 들어가는 사업들은 예비타당성 조사를 꼼꼼히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또한, 정치권은 포퓰리즘 유혹에서 벗어나 세금만 축내는 현금성 살포나 선심성 사업은 배제 시켜야 한다. 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정의 마중물 역할도 고민할 때다. 우리 경제가 올해와 내년 1%대 성장에 그치고 저성장이 고착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분야별 예산을 조정하거나 재정 집행 때 선택과 집중을 통해 경기진작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안이 절실히 요구된다.

2024년 예산안을 보면 한번 늘어난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대외환경 변화에 취약한 한국 경제로선 재정 건전성은 최후의 보루이다. 미국과 중국의 기술패권전쟁으로 중국의 리스크가 중국판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확산 될 경우에는 자본 유출과 와환 시장 불안 등으로 한국 경제 전반에 충격을 줄 수 있다. 정부는 2008년 겪었던 위기를 거울삼아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한국 경제의 부진 요인으로는 바로 제조업 편중과 고령화에 따른 노동생산성 저하, 중국 시장 의존도 및 주요국 통화 긴축정책 등이 위험요소이다. 불행하게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조차 제정되지 못하고 국회에서 수년 동안 잠자고 있다. 서비스산업은 내수기반 확충과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견인하여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할 핵심 산업 분야이다.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은 주요 선진국이나 국내 제조업에 비하여 낮은 수준인바,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와 생산성 향상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서비스산업 연구개발 투자 확대를 위한 지원 시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제는 중국의 대한 수출 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 중국을 대체할 수출 시장을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유럽, 북미등으로 다변화하는 노력에 이어 먹거리 발굴 등 중장기적으로 철저한 대비가 시급하다. 경제주체인 정부‧기업‧가계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국익이 우선되도록 최선의 해법을 찾는데 힘과 역량을 모아야 할 때이다.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정치권의 재정지출 요구는 거세질 것이다. 포퓰리즘의 유혹을 떨치고 재정건전성을 지키겠다는 비상한 각오가 필요하다. 국가채무를 증가시키는 것은 나라를 수렁에 빠지게 하고, 미래 세대에게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이다.

정부는 효율적이고 성과 지향적이며 투명한 재정운용을 위해서는 선진국처럼 국가 부채·재정 적자를 일정 수준 이하로 강제적으로 관리하는 ‘재정 준칙’을 조속히 법제화해야 한다. 정부의 예산편성권을 침범하는 국회의 반헌법적 예산심의 적폐도 청산할 때다. 2024년 예산 정부안 관철로 건전재정의 원년으로 삼고, 내실 있는 정부로 국가경쟁력 강화에 앞장서 국가신인도를 높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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