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교수
김동수 교수

  여야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규모 재정사업 추진 시 필요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기준 문턱을 대폭 낮추기로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경제재정소위를 열고 사회간접자본(SOC)과 연구개발(R&D) 사업의 예비타당성(예타) 조사 면제 금액기준을 총사업비 500억 원 이상, 국비지원 300억 원 이상에서 각각 1,000억 원 이상, 500억 원 이상으로 조정하는 등 국가재정법 일부 개정안을 의결했다. 아마도 이달 중 본회의 통과가 확실시 된다.

반면 국가채무와 재정적자를 적정 수준으로 억제하는 재정준칙 법제화는 여야 합의 실패로 다음 달 임시국회로 연기했다. 여야가 나라살림 사정은 외면한 채 선심성 사업에 필요한 입법 처리에만 속도를 내고 있다. 재정수지 적자 폭은 국내총생산(GDP)의 3% 이내로 관리하는 재정준칙 마련은 최소한의 안전장치이다.

재정준칙 법제화부터 서둘러 처리해야 한다. 진흙탕 싸움을 벌이다가 미래세대에 경제적 부담을 떠넘겨서는 안 된다.

만약에 국가재정법이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 사업비 1000억 원 미만인 도로·철도·항만 등의 SOC 사업은 기획재정부의 예타 심사를 받지 않고도 일사천리로 추진할 수 있는 것이다. 예타 면제 기준이 바뀌는 것은 관련 제도가 도입된 1999년 이후 24년 만이다. 여야가 예타를 사실상 무력화한 건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인기영합주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매번 으르렁대던 여야가 개정안에는 모처럼 한목소리를 냈다.

표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에는 ‘한통속’이라는 생각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격이다.

2018년 약 680조원이던 국가채무는 지난해 1,068조원으로 급증, 4년 만에 400조원이 늘었다. 국가채무는 1분에 1억 원씩 늘어나고 향후 4년간 채무 이자만 100조원에 달한다고 한다. 여기에다 올 초 세수가 급격히 줄면서 올해 약 20조원의 세수 결손이 예상되고 있다. 국민 살림에 쓸 돈도 부족한데 각종 대규모 사업을 벌이면 국가재정은 어떻게 되겠나.

지역구 민원으로 우후죽순으로 설립된 지방 공항들은 대부분 적자 신세다. 하지만 가덕도 신공항에 이어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과 광주 군 공항 이전사업도 가시화되고 있다.

모두 여야 야합으로 특별법을 통해 예타를 면제키로 했다. 다른 지역 의원들이 가만히 보고 있을 리 없다. 개정안에 힘입어 1,000억 원 미만 사업 추진에 팔을 걷어붙일 것이다. 예타 기준 완화의 부작용이 예상됨에도 재정준칙에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국가균형 발전이나 지역특성 등을 감안해 신속히 추진해야 할 사업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 일이라면 여야가 힘을 모으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지고 시급하지도 않은 사업이 나라 살림을 축내는 것을 조장한다면 그건 책임 있는 정치인의 자세가 아니다. 어떤 정치인도 국민 혈세를 허튼 곳에 써서는 안 된다.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길 바라며 여야의 대오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나라 살림살이를 걱정한다면 ‘국가재정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인 거부권을 행사해 ‘재정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치권에 경종을 울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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