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수 교수
김동수 교수

  양곡관리법은 지난 3월 23일 국회 본회의에서 야당 단독으로 가결되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4월4일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국회로 돌려보내는 재의요구권, 즉 거부권을 행사했다. 불가피한 일이 아닌가. 농민과 농업발전을 물론, 국가재정과 식량안보를 위해서도 애초에 통과되지 말았어야 했다.

양곡관리법은 처리 절차와 내용 모두 문제가 큰 법안이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위안부 재단 관련 비리로 출당된 무소속 윤미향 의원을 상임위원회 안건조정위에 넣는 꼼수까지 부렸다. 법사위원회에서 제동이 걸리자 다시 윤 의원을 이용해 본회의에 직접 회부했다. 이렇게 여야 간 제대로 된 토론조차 없었지만, 법 내용도 불합리하고 반시장적이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이자, 2016년 5월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약 7년 만이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자,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거부권 행사의 배경을 설명했다. 개정안 처리를 밀어붙인 더불어민주당의 반발로 정국이 경색되고 일부 농민들의 마음이 동요되지만, 거부권 행사는 불가피한 수순이다.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쌀 수요 대비 초과 생산량이 3~5%를 넘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 전부를 의무적으로 매입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매년 1조원 이상의 국가예산을 투입해야하고 농업 경쟁력을 격하시킨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퍼주기’ 입법이다. 쌀 소비가 계속 줄어들고 밀, 콩 소비는 늘어나는 현실에서 어떻게 수매 의무화가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는가. “식량안보” 가지고 이러 쿵 저러쿵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국회 처리 과정에서 공정성‧신뢰성과 투명성이 상실된 법안이다. 민주당은 상임위원회의 안건조정위를 꼼수로 무력화시킨 것도 모자라 법사위원회를 패싱하고 본회의에 직접회부 하는 등 무리수를 남발한 것이다. 재정 낭비보다 더 심각한 폐해는 식량안보에 미칠 악영향이다.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역대 최저인 20%까지 추락했다. 매년 20만t이 남는 쌀을 제외하면 밀(0.8%) 콩(6%) 옥수수(0.7%) 등 필수 식량작물의 자급률이 턱없이 낮다. 곡물 수요의 70~8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보다 곡물자급률이 낮았던 일본의 식량안보지수가 지난해 세계 8위로 올라선 반면, 우리는 해마다 추락해 세계 32위로 하락했다. 과잉 생산되는 쌀 재배를 다른 필수작물로 교체하여 수입을 줄이고 자급률을 높이도록 농업구조를 하루발리 개선해야 하는데, 개정안은 이를 정면으로 가로막고 있다. 쌀값이 오히려 떨어질 거란 우려에 40여 개 농민 단체가 반대했다. 빵·면류·육류 소비가 급증하는 속에서 쌀 경작 면적을 오히려 줄여나가야 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본다.

이제 공은 국회본회의에서 개정안 처리를 주도했던 민주당에 다시 돌아오게 됐다. 재의 요구된 법안은 국회에서 재적 과반 출석에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가결되기 때문에 현재 의석 구조상 폐기가 확실시된다. 이에 민주당 내 일각에서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대체할 새로운 법안을 제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민주당은 ​노조의 파업으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사측의 무분별한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은 법안인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공영방송 이사와 사장을 쉽게 바꾸지 못하게 하는 방송법 개정안, 의료인 면허취소법과 간호법 등 다른 법안도 당력을 가속화해 줄줄이 밀어붙일 태세다.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유도해 ‘독선·불통’, ‘의회무시’ 이미지를 부각하고, 자신들은 생색만 내려는 전략이다. 민주당 마음대로 본회의 직접회부가 가능한 상임위원회가 6개나 돼 얼마나 더 많은 법안이 일방적으로 처리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반시장적 포퓰리즘 입법을 고집하는 것은 제1당의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국정 발목잡기라는 이미지가 쌓여 중도·무당 층이 민주당에 등을 돌리는 계기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거야가 끝내 포퓰리즘 입법 폭주를 멈추지 않는다면 윤 대통령도 잇따라 거부권을 행사할 텐데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내년 4월 총선까지 이런 일이 몇 번이나 더 있을지 알 수가 없다. 몰염치한 국회 다수당이 두려워하는 것은 대통령 거부권이 아니라 국민의 거부권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거야의 입법독주, 대통령 거부권 행사의 악순환은 양곡관리법 하나로 족하다. 여야 간 큰 이견이 없고 당장에 시급한 민생 법안부터 처리해 나가는 것이 국회가 할 일이며 국민을 위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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