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니스트
허정회 칼럼니스트

  한 달 간 지구촌을 흥분의 도가니에 빠뜨렸던 카타르 월드컵이 끝나간다. 본선 참가 32개 국 중 이제 프랑스, 아르헨티나, 크로아티아, 모로코 등 4강만 남았다. 이 중 크로아티아와 모로코가 4강에 오르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내가 꼽은 16강 예상 진출 팀도 무려 5개국이나 16강에서 탈락했다. 그만큼 이번 월드컵에서는 이변과 기적이 속출했다. 이 글이 활자화 될 즈음이면 이미 우승국은 샴페인을 터트렸고, 전 세계 축구팬들은 4년 후 북미 대륙에서 열리는 월드컵을 손꼽아 기다릴 것이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은 16강이라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었다. 피파(FIFA) 랭킹 28위 팀이 12계단이나 뛰어올랐으니 대단한 성취다. 고백컨대 나는 우리가 16강에 올라가지 못할 거로 예상했다. 포르투갈(9위), 우루과이(14위), 가나(61위)와 조별 리그를 벌여 2위 안에 들어야 하니 객관적으로 보면 내 추측이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 판단은 틀렸다. 경기 외적 요소라 할 수 있는 강한 정신력을 감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거의 모든 경기를 실시간으로 시청했다. 1무1패를 안고 뛴 포르투갈과의 예선 3차전이 압권이었다. 1:1로 동점이던 후반 추가시간에 손흥민의 도움과 황희찬의 환상골로 이어진 역전승은 평생 잊지 못할 ‘인생 축구경기’가 될 거 같다. 가까스로 1승을 보탰지만 16강이 되기 위해서는 같은 시간에 열렸던 우루과이와 가나 전 결과를 지켜보아야만 했다. 우리 경기 끝난 후 마음 졸였던 7분간은 마치 7시간처럼 길었다. 결국 우루과이가 가나를 세 골 이상으로 이기지 못해 대한민국 호는 16강에 승선하게 되었다.

  나는 대한민국 팀의 쾌거 요인으로 단연 벤투 감독의 리더십을 꼽고 싶다. 그는 4년 여 전 대표팀 지휘봉을 잡으면서부터 줄곧 후방부터 공격을 전개하는 ‘빌드업’ 축구를 집요하게 추구했다. 빌드업 축구는 그 이전까지 우리에게는 생소한 전술이었다. 개인기와 패스 능력이 좋은 유럽 국가들이 주로 사용했던 선진형 공격 방식이었기에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벤투 감독 부임 초기 우리 선수들은 이에 적응하느라 많이 애먹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결국 이번 월드컵에서 좋은 결실을 맺었다.

  나는 축구와 야구 중 후자를 훨씬 더 좋아한다. 아마도 어렸을 때 축구공보다 야구글러브를 더 많이 가지고 놀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야구 글러브가 귀했던 1960년대 초 축구공 하나면 동네 친구 열댓 명이 우르르 어울려 놀 수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선친이 일본에서 사 오신 글러브로 친구들과 캐치볼과 배트를 휘두르는 게 너무 재미있었다. 그러다보니 청소년 시절 야구에 미쳤고, 급기야 첫 직장에서는 내가 주축이 돼 직장 야구팀을 결성해 주말마다 서울 교외 야구장을 찾아 경기를 하곤 했다. 지금도 프로야구 한 팀을 골라 열심히 응원하면서 야구를 즐기고 있다.

  그에 비해 축구는 문외한이다. 국가 대표 팀 간 경기나 월드컵에만 관심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프로축구는 프로야구에 비해 관중이 훨씬 적다. 모든 스포츠가 다 인기 있을 순 없지만 우리들의 ‘축구 홀대’는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이번 월드컵이 우리 국민이 앞으로 축구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그러려면 축구를 잘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축구 행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누가 대표 팀 선장이 되느냐가 관건이다. 이번 월드컵을 마지막으로 벤투 감독은 물러났다. 지금 후임 감독을 물색 중이다. 벌써부터 항간에는 한국인 감독이 물망에 오르내리고 있다. 나는 공정성 담보와 경기력 향상을 위해 당분간 감독만큼은 외국인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를 중심으로 코치진을 꾸려 엄청나게 진화하고 있는 선진 축구 전술을 전수 받아야 한다. 조직에 있어 리더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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