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니스트
허정회 칼럼니스트

  최근 국내 언론매체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어구(語句)가 있다. 바로 ‘심심한 사과’다. 한 업체가 당초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된 데 대해 고객에게 용서를 구하는 표현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된 것은 ‘심심(甚深)하다’였다. ‘마음 속 깊이’라는 의미로 쓴 것인데 이를 ‘지루하고 재미없다’로 오해한 데서 나온 해프닝이었다. 이걸 두고 사람들은 ‘문해력 부족’이니, ‘한자교육 부재’니, ‘독서량 부족’이니 원인 분석이 구구하다. 나는 여기에 ‘게으름’ 하나를 덧붙이고 싶다.

  요즘처럼 내 손에 사전을 항상 지니고 다니는 세상이 올지 어떻게 알았나. 옛날에는 어휘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을 일컬어 ‘걸어 다니는 사전’(walking dictionary)이라고 했다. 이렇게 되려면 2천 쪽이 훨씬 넘는 사전을 몇 권정도 개비(改備)해야 한다고 했다. 이제는 휴대폰 덕분에 그럴 필요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단지 의미를 잘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내 손 사전’을 찾아보면 된다. 거기에는 그 단어의 뜻과 예문은 물론 유의어와 반의어까지 보기 쉽게 정리돼 있다.

  국어는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가 말하는 소리를 기호로 나타낸 표음문자이기에 그렇다. 반면, 한자와 같이 글자 자체가 ‘뜻’을 지니고 있는 문자는 이해하기는 쉽지만 익히기가 쉽지 않다. 이래저래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문장을 이해하는 능력을 문해력이라 한다. 이를 높이기 위해서는 결국 사전과 친해지는 게 지름길이다. 국제성인역량조사(PIAAC)에 의하면 문해력이 높을수록 양질의 일자리를 얻고, 건강 상태가 좋고, 사회활동이 활발하다고 한다. 문해력이 삶의 질을 좌우하는 척도인 셈이다.

  국어는 쓰기도 어렵다. 다음 예 중 어떤 것이 맞을까: ‘밤을 새다’ ‘밤을 새우다’/ ‘뗄래야 뗄 수 없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내일 뵈요’ ‘내일 봬요’/ ‘덩쿨째 굴러 들어오다’ ‘덩굴째 굴러 들어오다’/ ‘푹 고은 삼계탕’ ‘푹 곤 삼계탕’/ ‘배(腹)가 땡기다’ ‘배가 땅기다’/ ‘차를 배(船)에 실고 갔다’ ‘차를 배에 싣고 갔다’/ ‘외환 보유고’ ‘외환 보유액’/ ‘지난 여름’ ‘지난여름’/ ‘개나리봇짐’ ‘괴나리봇짐’. 나는 위 10개 중 몇 개나 맞힐 수 있을까. 위 예의 정답은 모두 후자다. 이런 것도 ‘맞춤법 검사기’를 통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나는 글 쓸 때 세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첫째 ‘쉽게 쓴다.’이다. 글쓰기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다음은 이 중 필자가 가장 공감한 정의다. “글쓰기는 나만의 언어를 우리 언어로 옮기는 과정이다.” 내 머리 속에 있는 생각을 우리가 공유하려면 가급적 쉽게 표현해야 한다. ‘심심하다’는 다의어(多義語)이기도 하거니와 요즘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이기에 사달이 난 것이다. 두 번째는 ‘짧게 쓴다.’이다. 나는 한 문장을 띄어쓰기 기준으로 열 개를 넘기지 않으려 애쓴다. 글쓰기 교과서에는 15개 정도 내에서 쓰라고 돼있다. 하지만 그 정도 문장은 한 번에 읽히지 않아 이해하기 어렵다. 세 번째는 ‘리듬감 있게 쓴다.’이다. 이를 위해서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적, ~의, ~것, ~들’과 중복 어휘를 가급적 삼가야 한다. 이들이 들어가 있는 문장은 읽기에 불편하다. 우리가 시(詩), 시조(時調), 노래 가사를 오래도록 기억하는 것은 바로 문장의 리듬감 덕분이다.

  어떤 일이든 왕도(王道)는 없다. 굳이 ‘1만 시간의 법칙’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글쓰기와 읽기도 매한가지다. 날 때부터 금수저는 있어도 금만년필은 없다. 글 쓰는 연습도 하지 않고 사람들은 글 쓰는 게 어렵다고 푸념한다. 세계적인 대문호 헤밍웨이도 “글 쓰는 데에는 죽치고 앉아 쓰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잘 쓰려면 연습에 더해 많은 글을 읽어야 한다. 그럴 때 모르는 단어나 표현이 나오면 지체 없이 사전을 찾아봐야 한다. 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내 손 안에 있는 사전을 찾아보는 노력쯤은 흔쾌히 해야 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엔디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