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니스트
허정회 칼럼니스트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2016년 11월 중앙일보 마라톤대회 이후 손을 놓았으니 무려 6년 만이다. 그 대회에서 101번째 풀코스를 힘들게 완주하고 나니 무슨 한계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2002년 달리기에 입문해 15년 동안 풀코스 101회, 하프코스 약 30회 등을 달렸다. 달리기 시작할 때 딱히 무슨 목표 같은 것은 없었다. 하지만 50회 정도 풀코스를 완주했을 때 이왕 시작했으니 100회는 채워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2016년 10월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서 100회째를 달렸다. 그 후 어느 것보다 강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운동이 마라톤인데 목표를 달성했다는 생각에 동기부여 요인이 없어진 것이다.

약 20일 전 일이었다. 매일 그러하듯 그날도 새벽 5시 한강공원 산책길에 나섰다. 유튜브 를 들으면서 걷는데 웬 나이든 어르신이 내 앞을 달리면서 지나갔다. 얼핏 봐도 나보다 열 살은 위로 보였다. 그때 내 머릿속을 불현듯 스치고 지나가는 그 무엇이 있었다. 아! 저런 분도 달리는데 나는 걷고 있는가. 그길로 그를 따라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가 나를 따돌리고 멀리 사라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날 정말 간만에 한 40분을 내 몸에 맞춰 쉬지 않고 달렸다. 달리고 나서도 어디 한 군데 불편한 데가 없었다. 앞으로 천천히 달릴 수 있겠구나 생각하니 너무 기분이 좋았다.

매일 걷던 길을 요즘 달리니 모든 게 달라 보인다. 늘 마주하는 사람, 나무, 꽃, 새들이지만 속도에 따라 그 느낌이 새롭다. 아침부터 땀을 흠뻑 흘리니 몸이 가볍다. 그간 체중도 약 1kg 줄었다. 체중이 줄어들면 혈압도 절로 떨어진다. 내 건강에 더욱 자신감이 생기니 하루 또한 이전보다 훨씬 활기차다. 약 4년 전 고생하던 고관절염으로 달릴 엄두를 못 내고 있었는데 우연한 일이 계기가 돼 다시 달리고 있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간 매일 걷고 근력도 단련해 왔다. 새삼 준비된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이 생각난다. 기회는 기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게 아니라 우연히 우리 앞을 지나기 때문이다.

한창 달릴 때인 10년 전 쯤 일이다. 한강공원에서 주말 20km 정도 장거리 달릴 때면 만나던 분이 있었다. 나보다 열 살 남짓 위로 기억된다. 당시 그분은 연세가 있어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주말이면 약 30km를 달렸다. 주로에서 만날 때면 저도 앞으로 10년 후 선배님처럼 달리고 싶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노화는 지극히 당연한 우리 생애 한 과정이지만 각자 하기에 따라 삶의 질은 달라진다. 물론 무리는 금물이다. 하지만 자기 능력치의 70% 선까지는 무방하다고 본다. 70세가 넘어도 젊은이 못지않게 풀코스를 완주하는 사람이 있다. 내 선배 중에는 80인데도 암벽 등반을 즐긴다.

가끔 글에서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표현을 본다. 하지만 자기가 직접 마라톤을 달려보지 않고 이를 인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단 한 번이라도 달려본 사람만이 쓸 수 있다. 그렇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사람이 쓴 글은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게 아니기에 설득력이 없다. 인생과 마라톤을 비교하는 건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마라톤이 힘든 것처럼 인생도 힘든 거라고 할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고생 끝에 낙이 있다며 마라톤이 비록 힘들지만 그것을 이겨내면 그 어떤 것보다 성취감이 크고 행복하다고 느낄 것이다.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나는 달릴 때 행복하다. 만사 다 잊고 자연을 벗 삼아 달리기에만 몰입하기 때문이다. 그 마력(魔力)에 빠져 101번이나 마라톤을 완주했다. 달리면서 배웠다. 달리기 승자는 빨리 달린 사람도 많이 달린 사람도 아니다. 오늘도 즐겁게 달리고 있는 사람이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 승자는 높게 출세한 사람도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아니다. 지금도 꾸준하게 배우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정진하는 사람이다.” 내가 평소 생각하는 인생관이다. 간만에 다시 달리면서 요즘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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