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니스트
허정회 칼럼니스트

  지난 6월 첫 토요일, 고교동창 등산모임에서 오랫동안 닫혔다가 최근에야 비로소 개방돼 많은 사람이 찾는다는 북악산(342m)을 올랐다. 하지만 정상 불과 200여 미터 남은 오르막 계단에서 그만 우리 친구가 정신을 잃고 실신했다. 119의 안내와 때마침 지나던 의사 덕분에 응급처치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사고 주변에 많은 등산객이 오르내렸기 때문에 119 구조대가 올 때까지 힘든 심폐소생술도 여러 사람이 번갈아 할 수 있었다. 사고 후 약 40분 만에 구조대가 도착했고, 그 후 20분 정도 지나 헬기로 이송됐다.

우리는 119를 접촉해 후송병원을 알아낸 후 그 병원 응급실로 발을 옮겼다. 그러나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응급실 접근은 불가능 했다. 간신히 지인을 통해 환자 상태를 알아봤으나 심근경색으로 이미 사망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을 뿐이다. 우리는 병원에 달려온 가족에게 사고 경위를 자세하게 설명했다. 친구는 일주일 전 코로나 4차 백신을 맞고 몸 상태가 조금 안 좋았다 했다. 가족은 이번 주 운동을 삼가고 좀 쉴 것을 권했다고 했다. 나는 사고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던 한 친구와 관할 경찰서에서 사고 관련 조사를 받았다.

친구는 오랫동안 당뇨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이를 운동으로 거의 극복한 상태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네댓 시간씩 한강공원을 걸었다.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가히 초인적이었다. 체중도 많이 줄여 군더더기 하나 없는 몸을 만들었다. 우리 친구들 중 어느 누구보다도 건강해 보였다. 그를 진료해왔던 친구의사는 그는 평소 저혈당의 위험성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그 조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준비했을 거라 했다. 하지만 당뇨로 인해 혈관이 약해져 있었기에 평소 안하던 운동을 갑자기 하면 심근경색이 일어날 수 있다고 했다. 어느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게 우리 건강이 아닌가 싶다.

응급처치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꼈다. 특히 기도(氣道)를 확보하고 구강을 통해 인공호흡을 하던 의사와, 전 과정을 지휘하던 한 젊은 여성이 인상 깊었다. 또 지나가다 사고현장을 목격하자 심폐소생술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수많은 젊은이들이 생각난다. 이들 모두 자기 가족, 친구 이상으로 우리 친구를 돌봤다. 비록 친구는 잃었지만 나는 우리 사회의 따뜻한 단면을 보았다. 우리들에게는 어려울 때 이웃을 돕는 유전자가 있음을 확인했다. 119 구조대와 헬기가 도착해 우리가 현장을 떠날 때 그들에게 감사 인사 하나 제대로 못한 게 못내 후회스럽다.

다음 날 고인의 빈소를 찾았다. 바로 어제 오전만 하더라도 우리와 함께 이 얘기 저 얘기 나누던 친구가 영정사진으로 모셔져 있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그냥 악몽을 꾸고 있는 거 같았다. 장례식장 중앙에 친구 사진과 함께 “친구여! 사랑한다! 고마웠다! 잘 가시게!”라는 플래카드가 조문객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나는 친구가 매일 걸었다는 한강공원 코스를 친구와 함께 했던 추억을 되새기며 걸었다. 하늘도 이를 아는 양 슬픔을 달래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발인 예배는 죽마고우였던 친구목사가 집전했다. 평소 친구는 그리 여유가 있지는 않았지만 매월 교회, 중국 선교, 해외 불우아동을 위해 봉투 세 개를 베풀었다고 했다.

영국 출신 신학자인 존 웨슬리는 『저널』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좋은 일이면/ 무엇이든 행하길/ 어떤 수단으로든, 어떤 방법으로든/ 어디서든, 언제든/ 누구에게든/ 할 수 있는 한 오래도록.”이라고 했다. 또 미국 언론인이자 교육자였던 밀턴 메이어는 『죽음에 관하여』에서 “사람은 죽음의 고통을 겪으면서 쓸모 있는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배움의 길에 더 오래 머물수록 살아가는 방법과 죽음을 맞는 방법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내게도 큰 가르침을 주었다. 비록 친구는 갔지만 그는 우리들에게 귀한 선물을 많이 남겼다. 친구여, 잠시 후 우리 그곳에서 함께 만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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