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군 교수
전성군 교수

  농사는 세월과의 싸움이며, 절대 왕도는 없다. 그래서 농업은 ‘타이밍의 예술’이다. 비 내리기 전 한발 앞서 김매고 씨 뿌리면 작물이 알아서 자란다.

사람이 심고 하늘이 비를 내린다. 이럴 때 농사는 자연이 짓는 것이고, 사람은 단지 자기 몫을 할 뿐이다. 농사는 자연에 순응할 때 심은 만큼 거둔다는 걸 새삼 깨닫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과 문학은 닮은꼴이다.

자연을 살펴보자. 자연은 있는 그대로가 가장 정직한 것이다. 누군가가 손을 대서 더 보기 좋게 변화를 줬다면 ‘인조’라는 딱지를 붙이게 된다.

따라서 자연이 처음 그 모습을 잃어버리면 자연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듯 문학도 작가의 순수함을 잃어버리면 작품의 가치를 잃어버린다.

만일 작가가 글을 쓸 때 삶에서 배어나오는 순수함을 잃어버린 글이라면 그 글은 이미 생명력을 상실했다고 볼 수 있다. 순수문학을 주장하고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하지만 이런 문학을 가르치는 국문학과가 사라지고 있다. 서울 모 대학 캠퍼스에는 인문학부가 있는데 그 안에는 문화콘텐츠와 국어국문학, 문화인류학 등 3개 전공이 있다.

그런데 전공을 가르는 과정에서 성적우수자 모두가 문화컨텐츠 전공을 신청했고, 나머지 탈락자들이 국어국문학이나 문화인류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우리 땅에서조차 우리 글과 문학이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있다.

국어국문학과 그 자체도 형태가 변질되고 있다. 첫번째 형태는 일부 교수진이 본류에서 이탈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는 경우이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교수들이 다른 인기 있는 전공을 만들어 그 곳에 몸을 숨기는 것이다. 문화컨텐츠가 인기라면 문화컨텐츠 전공으로 자리를 옮긴다.

둘째, 학과 이름을 바꾸는 경우다. 교양학부나 한국학부 속에 국어국문학을 끼워넣고 있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예 국어국문학과를 신설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과거 국어과목은 대학에서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할 수 없는 교양 필수과목이었다. 그래서 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들도 가장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들이 졸지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되고 있다.

셋째, 학부과정은 그대로 유지하지만, 대학원 과정에서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운영하는 경우다. 우리 고유의 국어나 국문학들이 연구의 대상에서 멀어지고 있는 것이다.

국문학을 전공해 봤댔자 일자리가 좁아지고 학문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에 국문학이 철저하게 시장에서 소외받고 있는 것이다.

개별 가정들을 들여다보면 인문학의 외면 현상은 더 심각하다. 가족 모두가 바빠서 서로 얼굴 보기가 어렵다. 연락이 필요할 때면 문자를 주고받는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 있으면 익숙하지 않고 어색하다. 모처럼의 기회인만큼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다. 좋은 얘기지만 아이들은 듣기에 편하지 않고 잔소리로 들릴지 모른다.

아이들은 부모의 목소리를 듣는 시늉하다가 스마트 폰만 만지작거리다가 적당한 때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하지만 농장에서의 부모 자식간의 대화를 들어보면 대화의 내용이 사뭇 다르다. 가벼운 소재로 대화를 이어가지만, 어색한 분위기가 전혀 없다.

왜 그럴까. 농장에서의 대화는 무겁고 부담스런 내용보다 알맹이 없는 가벼운 이야기로 소통을 한다. 이런 알맹이 없는 가벼운 이야기를 스몰토크(Small Talk)라 한다.

집안에서는 서로 얼굴보기도 어렵고 대화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유일한 네트워크 수단인 스마트 폰도 식구들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문자가 대부분이다.

소통이 잘되는 건강한 가정이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하다. 이런 때일수록 가까운 주말농장이라도 가져보자. 도시 습관을 온전하게 내려놓지는 못하겠지만, 진정한 자연인=전원인은 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온전한 자연인=문학인 되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 하지만 전원이란 땅에 내리는 문학의 뿌리는 차츰 깊어지고 소통을 탄탄하게 하고 있음을 느낀다.

한걸음 한걸음 걷고 또 걷다보면 온전히 자연 속에 머물며 환하게 웃고 있는 나와 가족, 그리고 이웃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자연과 인문학의 만남은 서로 시너지를 내는 환경경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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