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니스트
허정회 칼럼니스트

  실로 간만에 걷기여행에 나섰다. 그간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옴짝달싹 못하다가 5월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가 풀린 덕이다. 필자는 2012년 5월부터 2019년 6월까지 친구들과 함께 강원도 고성에서 시작해 부산 오륙도까지 이어지는 약 770km의 해파랑길을 걸었다. 매해 한두 번씩, 한 번에 4박5일 간, 모두 13회에 걸쳐 마쳤다.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대장정을 무사히 마무리 했을 때는 마치 이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었다. 동해안에 이어 이듬해부터 남해안을 걸을 계획이었으나 그만 코로나19로 발이 묶이고 말았다. 

  우리나라 동-남-서해안을 잇는 둘레길은 약 4000km에 달한다. 동해안(해파랑길) 770km, 남해안(남파랑길) 1470km, 서해안(서해랑길) 1800km다. 서울~부산의 약 10배,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의 약 5배다. 우리 해안 둘레길은 비단 거리뿐만 아니라 빼어난 풍치 면에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감히 얘기할 수 있다. 게다가 우리 역사가 유구한 만큼 어디에 가도 그곳의 자랑스러운 인물, 유적 등 이야기 거리가 넘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정하고 이 해안길 걷기에 나서는 사람은 드물다. 

  남해안 분위기는 동해안과는 사뭇 달랐다. 굳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남성과 여성으로 비교할 수 있겠다. 동해안은 광활한 바다와 세찬 파도가 가히 남성적이다. 이에 비해 남해안은 여러 섬이 아름답게 수를 놓고 있고 파도도 비교적 잔잔해 여성적이다. 근래 각 지자체는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관광수입을 올리기 위해 이러한 자연환경을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옛날 같으면 경치는 좋으나 건설비 때문에 감히 접근하지 못했던 곳도 데크로 연결해 쉽게 통행할 수 있게 했다.

  이번 첫 남파랑길 여행은 사천시 주변을 걸었다. 사천시는 일반적으로 삼천포로 더 널리 알려진 도시다. 남해안은 이순신 장군과 관련한 유적이 많다. 선진리성(船津里城)은 사천만 지형을 이용해 구축한 토성으로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물리친 격전지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이 왜성으로 개축한 나머지 일본 히메지성을 본 따 지은 성문이 독특했다. 대방진굴항은 조선시대 때 건설한 인공 항구다. 충무공이 이곳에 거북선을 숨겨두고 병선에 굴이 달라붙지 않도록 민물을 채웠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순신 장군이 승전을 위해 짜낸 고도의 책략이 돋보이는 곳이다. 

  사천시에 있는 박재삼(朴在森)문학관을 둘러본 것은 이번 여행 중 얻은 큰 수확이었다. 박재삼은 1933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으나 세 살 때 어머니를 따라 귀국해 삼천포시에서 성장했다. 박재삼은 남해가 낳은 대표적인 서정 시인이다. 세상만사에 깃들어 있는 진선미를 찾아내 아름다운 시어(詩語)를 통해 그 가치를 우리들 삶에 일깨워 주었다. 특이한 것은  잠시 월간『바둑』편집장을 지낸 그의 이력이다. 그는 우리 바둑계 원로 조남철 국수와 조훈현 국수와도 교분을 맺을 정도로 바둑에 심취했다. 

  걷기야말로 어느 운동보다 경제적이고 쉽게 건강을 도모할 수 있는 운동이다. 걸으면 모든 병을 이길 수 있다 한다. 최근 만난 한 친구는 매일 약 20km씩 걸어 고질이었던 당뇨병을 고쳤다. 그의 인내와 의지가 대단하다. 하지만 매사 그렇듯 걷기에도 그 방법이 중요하다. 산책 하듯 천천히 걸으면 운동 효과가 덜하다고 한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조금 빨리 걸어서 체온을 상승케 해 체내 생리적 반응이 일어나야만 건강 증진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이를 위해 평소 걷는 보폭보다 10cm 넓혀서 걸으라고 권한다. 걷기는 몸은 물론 마음도 건강하게 한다. “우리의 비밀은 자연이다. 다른 사람이 병원으로 갈 때, 우리는 숲속으로 향한다.” 세계 행복 1위 국가 핀란드 국민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비결이다. 그간 코로나19로 답답했던 몸과 마음을 걷기로 달래보면 어떨까.

저작권자 © 엔디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