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성군 교수
전성군 교수

  경기도 수원이 정조대왕의 사부곡(思父曲)의 땅이라면, 경기 파주는 영조대왕의 사모곡의 땅, 즉 어머니의 땅이다. 이 어머니의 땅인 파주 임진강 너머 DMZ 부근에 허 준 선생의 무덤이 있다.   
허 준 선생은 양천 허씨로서 지금의 서울시 양천구 가양동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양반의 적자가 아니다 보니 당시에 차별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철저한 신분사회인 조선에서 신분의 한계를 뛰어넘는 탁월한 의료인이 되었다. 
그의 <동의보감>은 현재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최고의 의서로 후세에 와서 그 진가를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의 편찬은 작은 병에도 불구하고 의료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는 일반 민중들을 위한 것이다. 이 책이 지향하는 것은 단순히 질병 치료가 아니다. 
예컨대  의사의 생각보다는 오히려 환자 자신의 생각을 중요시 여기고 있다. 이처럼 <동의보감>은 단순한 의료서로만 보기보다는, 인간의 몸을 통해서 우주와의 조화와 합일을 이룩하는 양생(養生) 수신(修身)의 책이다.   
최고의 처방은‘마음을 다스리는 것’이며, ‘도(道)로써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천기(天機)와 부합’할 때 비로소 인간의 몸은 최고의 조화로움을 얻는다. 이 순간이 바로 허준이 <동의보감>을 통해 꿈꾸었던 세계, 즉 의서(醫書)가 필요 없는 세상이 실현되는 때라는 것이다. 
요즘 우리 농촌에는 산업화, 도시화에 따른 이농현상의 심화로 점점 사회경제적 활력을 상실하고 있다. 반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농사를 지어 억대 매출을 올리고 있는‘옹골진 농사꾼'도 있다. 쌀의 경우, 규모화 경영을 실천함으로써 친환경농법, 천연비료 사용, 못자리 대신 실내 못판 사용 등 신지식 농업인답게 수도작도 품질로 승부하면, 농업도 지속불가능한 산업이 아니라는 것임을 조목조목 짚어주고 있다. 물론 세계는 이미 식량을 무기로 한 전쟁이 시작되었고, 농민공동체 해체현상이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세계적 흐름이 우리 농업분야에는 분명 디스토피아로 작용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부인하지 못한다. 왜냐면 우리 농업, 농촌, 농업인 문제가 주로 GNP나 산업차원에서만 접근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 세 분야를 하나로 보는 설계가 필요하다. 즉 농업, 농촌, 농업인 문제를 국민 모두의 문제로 보는 발상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바로 허 준이 <동의보감>에서 꿈꾸었던 세계, 즉 의서(醫書)가 필요 없는 농촌 세상의 실현을 위해 농업인의 마음을 잘 추스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7가지 씨앗의 법칙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먼저 뿌리고 나중에 거둔다. 거두려면 먼저 씨를 뿌려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먼저 주어야 한다. 
둘째, 뿌리기 전에 밭을 갈아야 한다. 씨가 뿌리를 내리려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상대에게 필요한 것과 제공시기 및 방법을 파악하라. 
셋째, 시간이 지나야 거둘 수 있다. 어떤 씨앗도 뿌린 후 곧바로 거둘 수는 없다. 제공했다고 해서 즉각 그 결과가 있기를 기대하지 마라. 
넷째, 뿌린 씨, 전부 열매가 될 수는 없다. 100개를 뿌렸다고 100개 모두에서 수확은 할 수 없다. 모든 일에 반대급부를 기대하지 마라. 
다섯째, 뿌린 것보다는 더 많이 거둔다. 모든 씨앗에서 수확을 못해도 결국 뿌린 것보다는 많이 거둔다. 너무 이해타산에 급급하지 마라. 
여섯째, 콩 심은 데 콩나고, 팥 심은 데 팥난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면 손해를, 이익을 주면 이익을 얻는다. 즉 심은 대로 거둔다. 
일곱째, 종자는 남겨두어야 한다. 수확한 씨앗 중 일부는 다시 뿌릴 수 있게 종자로 남겨 두어야 한다. 
우리 농촌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더할 수 없이 위대한 낙원이다. 이곳은 한국의 농업인들의 위대한 지혜와 창의력, 강인한 의지가 만든 놀라운 곳이다. 이곳은 열정과 감성, 오감의 연결 장이다. 
또한 자연의 짝꿍들이 서로 모여 있는 자원의 곳간이며, 우리 세대는 물론 후손들의 생존을 위한 담보물이다. 이제 농촌은 농업인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의 공적 자산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품질 디자인과 친환경 어메니티로 농촌을 되살려야 한다. 여기에 허 준 선생을 닮은 옹골진 농사꾼과 7가지 씨앗의 법칙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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