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니스트
허정회 칼럼니스트

  얼마 전 우거(寓居)를 옮겼다. 그러면서 여러 사람한테 신세를 졌다. 그 중 집 청소를 하고 이삿짐을 운반한 분들의 노고를 잊을 수 없다. 생활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던 집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새집이 됐다. 역시 전문가는 달랐다. 중간 중간 청소전과 후의 달라진 모습을 사진을 찍어 문자로 전송하는 서비스까지 했다. 청소하면서 간단하게 고칠 수 있는 건 손을 봐 사용하기 편하게 했다. 청소를 다 마친 후에는 집 전체 소독까지 했다.

청소 다음 날 이사를 했다. 얼마 안돼 보이던 살림이 풀어놓으니 꽤 됐다. 그 많은 짐을 단 세 시간 만에 포장하고 운반해 트럭에 실었다. 남자 네 명, 여자 한 명으로 구성된 그들은 그야말로 ‘원 팀’이었다. 그들 중에는 리더인 팀장이 있었고, 그 팀장 지휘 하에 힘든 일을 별 말없이 척척 해냈다. 여자를 제외하고 사람마다 특별한 보직이 있는 건 아니었다. 오늘 이일을 하다가도 내일은 다른 일을 한다했다. 그렇게 해야만 공정할 거 같았다.

필자는 이 과정에서 그들이 흘린 땀의 가치를 생각해봤다. 그 대가로 비용을 치루지만 그 땀에 대한 보상으로는 턱없이 모자라는 거 같았다. 그만큼 그들은 마치 자기 집 일 인양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들을 대하면서 노동의 존귀함을 새삼 느꼈다.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 불로소득이 판치고 있는가.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땀 안 흘리는 사회’가 되었다. 정치권이 앞장서 이를 부추기고 있다.

아무리 코로나19 재난상황이라지만 국민 88%에게 재난지원금을 주는 게 정상인가. 일반적으로 상-중-하 세 등급은 30%-40%-30%로 분류한다. 이에 따르면 71% 이상 88% 이하 집단은 상위에 속한다. 이들을 어찌 ‘하위 88%’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는가. 상식 밖의 일이다. 올 추석 후 지급될 재난지원금은 전 국민에게 주든가 아니면 실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수 국민을 선별해 지급해야 했다. 상위 12%를 골라내는 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국민을 88:12로 편 갈라놓고, 이중 다수를 위한 포퓰리즘이라 아니할 수 없다.

대체공휴일 확대 정책도 마찬가지다. 그동안 설날, 추석, 어린이날로 한정되었던 대체공휴일을 앞으로 3․1절, 광복절, 개천절, 한글날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올해만 앞으로 3일의 공휴일이 더 생기는 것이다. 옛말에 “오이 밭에서 신 고쳐 신지 말고, 오얏나무 아래서 갓 고쳐 쓰지 말라”고 했다. 의심받을 만한 일을 하지 말라는 말이다. 대체공휴일제를 확대하려면 계획성 있게 진작 했어야지 왜 하필 이때 하나. 일은 언제 하려는지 알 수 없다.

이러한 선심성 행위는 중앙정부가 시행하는 재난지원금이나 대체공휴일제 뿐만이 아니다. 지자체 차원에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전에 살던 집 근처 야트막한 산 주변에 각종 운동기구가 비치돼 있고, 걷기 편하게 나무 덱으로 조성된 공원이 있다. 필자 눈에는 아직 멀쩡한데도 최근 모든 운동기구와 덱을 교체했다. 과연 누구를 위해 이런 엄청난 주민 혈세가 들어가는 공사를 했는지 모르겠다.

이사 와서는 매일 새벽 한강공원을 걷는다.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 운동하기에 쾌적하다. 그래선지 이른 시간이지만 기구로 운동하는 사람, 걷거나 달리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으로 활기가 넘친다. 이번 여름 관할 자치구는 한강공원 곳곳에 ‘샘물창고’라는 냉장고를 설치해 놓았다. 여름 2개월 간 한시적으로 운영하는 것으로 하루 600개 생수를 보충한다고 되어 있지만 필자는 구경도 못했다. 어떤 데는 서울시가 자랑하는 ‘아리수’ 수돗가 옆에도 있다. 운영 종료 후 냉장고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궁금하다. 도대체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냈는지 모르겠다. 내년 지자체장 선거를 앞둔 선심성 행정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과연 내 돈이라면 이렇게 허투루 쓰겠나. 나랏돈은 내 돈보다 훨씬 더 신중하게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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