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니스트
허정회 칼럼니스트

  얼마 전 주말에 있었던 일이다. “아빠 나 폰 AS 맡기고 인터넷 문자 사이트로 문자하는데 통화는 안 되고 문자만 가능해.”라는 메시지가 떴다. 필자는 털끝만큼도 의심하지 않고 부산에 사는 딸이 보낸 것이라 생각했다. 평소 딸의 어투와 같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즉각 “오케이!”라고 답했다. 한 시간 반 쯤 지났을까 다시 문자가 왔다. “아빠 지금 시간되면 잠깐 편의점 다녀올 수 있어?” 그렇다고 답한 필자는 왜냐고 물었다. “아무 편의점 가서 구글기프트카드 40만 원어치 구매해 줄 수 있어? 이따 폰 수리되면 아빠한테 입금해 줄게. 구매 후 뒷면 라벨 부드럽게 긁으면 코드번호 나와. 그 번호 여기 문자로 보내 줘. 부탁할게.” 구글플레이카드가 금시초문이었던 필자는 그게 뭐며 아무 편의점에나 있냐고 물었다. ‘딸’의 다급한 간청에 못이긴 필자는 지금 가보겠다는 답을 보냈다. 그러자 “응, 고마워. 아빠, 편의점 알바가 누가 사용하는지 물어보면 아빠가 사용한다고 그래.”라고 필자가 물어보지도 않은 것에 대해 알려줬다. 구글플레이카드가 뭔지 몰랐던 필자는 뭐하는데 사용한다고 할까라고 물었다. “아빠가 유튜브 볼 때 사용한다고 하면 될 거야” 이때까지도 이게 메신저 피싱이라고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필자는 집 근처 편의점에 가 직원에게 구글플레이카드 40만 원어치를 달라고 하니 필자를 힐끗 쳐다보면서 말을 건넸다. “손님께서 쓰시는 거 맞지요? 요즘 하도 피싱이 많아서요.” 필자는 ‘교육’ 받은 대로 답했다. 그러면서 직원이 가리킨 매대로 가 구글플레이카드라는 걸 처음 마주했다. 1만 원, 5만 원, 10만 원, 15만 원짜리 등 여러 종류가 있었다. 40만 원어치를 구매하려면 15만 원 2개, 10만 원 1개를 사도되느냐고 ‘딸’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응, 돼.”라는 답이 왔다. 계산대에서 이걸 지불하려 하니 현금만 가능하다고 했다. 당시 그만큼 현금이 없던 필자는 현금으로만 구입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러자 “현금으로만 구매할 수 있을 거야. 구매해 줘. 이번만 부탁할게.”라는 답이 왔다. 필자는 조금 귀찮았지만 ‘딸’ 부탁이니 마지못해 현금 찾으러 가는 도중 아까 편의점 알바생이 하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그때서야 이상하다는 감이 들어 딸과 사위에게 전화하니 아무도 안 받았다. 분명히 전화가 고장 난 게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던 차 딸로부터 전화가 왔다. 메신저피싱이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최근 필자가 맞닥뜨린 해프닝을 이렇게 장황하게 소개한 건 말도 안 되는 일도 자기가 직접 당하면 무언가에 씌어 그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걸 공유하고 싶어서다. 평소 필자도 보이스피싱 사례에 대해 많이 듣고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반문하곤 했다. 하지만 그게 내 가족과 관련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0년 보이스피싱 발생 건수는 총 3만1681건으로, 피해액만 7000억 원에 달했다. 2016년 발생건수 1만7040건, 피해액 1468억 원과 비교하면 발생건수는 86% 늘어났지만 피해액은 거의 5배 증가했다. 금융감독원은 메신저피싱 사기 대처법으로 실제 가족과 지인이 맞는지 반드시 직접 전화통화로 확인할 것, 긴급한 상황을 연출하더라도 전화 확인 전에는 절대 송금하지 말 것, 타인 계좌로 송금 요청 시 일단 의심할 것 등을 당부하고 있다.

코로나로 경제가 어려워진 탓에 사기수법이 날로 진화하고 있다. 한 때 보이스피싱이 큰 사회문제가 되더니 이젠 메신저피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내가 당할 뻔했던 수법은 가장 전형적인 거였다. 이들이 만약 사전에 현금으로만 구입할 수 있다는 ‘지침’만 제대로 줬다면 사전에 현금을 준비했을 테고 그대로 당하는 바보가 될 뻔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최근 거의 같은 메시지가 왔다. 이렇게 답했다. “알았다. 지금 파출소에 신고하러 가는 중이다.” 더 이상 문자가 안 날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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