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니스트
허정회 칼럼니스트

  최근 사람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영화 「미나리」를 봤다. 이 영화는 1980년대 아메리칸드림을 열망하며 미국에서 변방이라 할 수 있는 아칸소 주로 이민 간 한 한인 가족의 눈물겨운 정착기다. 이 영화는 고희를 넘긴 배우 윤여정이 열연한 여우조연상을 비롯해 6개 부문이 올해 아카데미(오스카)상 후보에 올랐다. 윤여정은 이 영화로 이미 미국배우조합(SAG)상에 이어 영국 아카데미상까지 거머쥠으로써 오스카상 수상도 가시권에 있다.

영화 「미나리」를 본 관객은 저마다 느낀 감흥이 다 달랐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딸네 가족을 돕기 위해 말도 안 통하는 이역만리 미국으로 날아온 할머니로부터 자식, 손자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던 자기 할머니를 떠올렸을 것이다. 또 어떤 이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분투하는 가장의 책임감을 높이 샀을 것이다. 또 다른 관객은 행복하게 살게 해주겠다는 남편 말 믿고 낯설고 물선 미국 땅에 온 아내가 느꼈을 외로움과 향수에 동감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떤 사람은 한국 얼굴이지만 한국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는 아이들 모습에서 이민 2세가 공통으로 겪는 정체성 문제에 대해 공감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영화를 감상하면서 비슷한 시기 남미 콜롬비아로 아내와 함께 유학길에 올랐던 기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콜롬비아는 우리나라와는 거의 지구 반대편에 있는 먼 나라다. 그곳에 지금부터 40년 전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생소한 스페인어를 공부하러 갔다. 우리부부는 「미나리」의 할머니처럼 ‘이민가방’ 몇 개를 들고 로스엔젤리스를 경유해 수도 보고타에 내렸다. 보고타는 해발고도 약 2500미터 고원에 형성된 도시다. 산소가 저지대의 70% 수준이다 보니 호흡도 편치 않고 매연 또한 심하다. 주 콜롬비아 한국대사관과 코트라에서 부업 하면서 국립사범대학을 졸업했다. 아내는 한글학교에서 한국아이들을 가르쳤다. 남매를 낳고 기르면서 몇 번을 이사 다녔는지 모를 정도로 고생도 많이 했다. 큰 아이가 자기가 콜롬비아 친구들과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될 6세 무렵 9년간의 콜롬비아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콜롬비아에서 인생 황금기라 할 수 있는 30대를 보냈으니 필자에게 콜롬비아는 제2의 고향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귀국 후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언젠가는 꼭 다시 한 번 가고 싶은 나라다. 젊은 나이에 외국 생활을 오래 하면서 다양하고 폭넓은 세계관을 갖게 된 것은 큰 수확이다. 콜롬비아는 한국보다 15배나 큰 나라다. 석유, 석탄을 비롯해 없는 자원이 없을 정도다. 에메랄드와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질이 좋기로 이름 나있다. 사람들은 순박하고 낙천적이며 여느 남미국가와 달리 인종차별도 없다.

콜롬비아는 경제적으로는 우리보다 못 살지 몰라도 국민 행복지수는 세계 상위권에 있다. 행복은 경제 순이 아닌 것이다. 우리 경제발전을 세계인들이 ‘한강의 기적’이라고 칭송하지만 물질적으로 잘 산다고 그에 비례해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우리는 너무나 짧은 기간에 많은 것을 이뤄 그로 인한 폐해 또한 만만치 않다. 그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우리 국민의 물질주의적 성향이다. 인생의 목적을 돈 버는데 두면 영원히 행복하지 않다. 왜냐하면 돈은 아무리 벌어도 제1 부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아야 하지만 그 목표가 돈이 돼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저온을 거쳐야만 꽃이 피는 것을 춘화(春化)현상이라고 한다. 개나리, 철쭉, 진달래 등은 겨울이 없는 나라에서는 꽃이 안 핀다. 혹한을 거쳐야만 봄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고 했다. 겨울처럼 어려운 시기를 겪어야만 인생이 더욱 풍요롭고 견실해진다. 이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코로나 시기가 끝나면 바깥으로 나가 더 큰 세상을 만나볼 것을 권하고 싶다. 영화 「미나리」를 보고 느낀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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