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니스트
허정회 칼럼니스트

  스포츠 스타들의 과거 학교폭력으로 인한 ‘학투’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여자프로배구 쌍둥이 자매 선수로 인해 촉발된 학투는 각종 스포츠는 물론 연예계 등으로 번지고 있다. 대부분 10여 년 지난 일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터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 전 일이고 당사자가 잘못을 사과하고 있다고 해도 폭력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폭력 근절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사회로 나아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직후 태생인 필자가 자랄 때에는 우리 사회 곳곳에 폭력이 만연해 있었다. 중고등학교는 물론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때에도 선생님들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을 때리곤 했다. 하기야 70~80명 되는 한 학급 아이들을 통솔하려면 매만큼 좋은 도구는 없었으리라. 그 당시 상황이 이해는 가지만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지성의 전당이라는 대학 캠퍼스에서도 폭력은 여전했다. 주로 같은 고등학교 동창이나 동아리 선후배간에 기강을 잡는다고 매를 들었다.

군대는 더 말할 나위 없었다. 필자는 1970년대 중반 후방에서 군 복무를 했다. 폭력은 논산훈련소부터 자대(自隊)까지 시와 때도 없이 횡행했다. 부대를 지휘하는 장교부터 내무반 고참병까지 소위 군기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폭력을 했다. 오죽하면 제대하고 한참 지난 후까지도 상급자로부터 ‘집합’ 당해 몽둥이로 맞는 꿈을 꿨을까. 지금 군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그 당시는 너무나도 당연했다. 이러한 폭력문화는 사회에서도 다반사로 있었다. 길 걷다가 상대방 어깨를 치고 지나갔다고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지곤 했다. 술집에서도 옆 자리 손님과 사소한 일로 말다툼을 벌여 큰 싸움으로 번지는 일이 흔했다. 심지어는 내로라하는 회사에서도 상사가 부하 직원을 구타하는 일도 비일비재 했다.

필자는 이러한 폭력문화의 상당 부분은 한국전쟁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동족 간 3년간 전쟁을 치루고 나니 우리 사회는 너무 궁핍했다. 모든 게 부족해 제대로 먹고 살 수 없었다. 자원이 넉넉지 못하니 이를 차지하려면 남을 폭력으로 눌러 싸워 이겨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폭력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가 됐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학교폭력도 싹튼 것이다. 하지만 현재처럼 잘 사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학교폭력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이것이 다가 아니고 빙산의 일각일 거라는 점이 안타깝다.

이번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학교폭력을 근절하는 계기로 삼자. 어제오늘 일이 아닌 뿌리 깊은 폭력문화를 단번에 뽑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벌백계해야 한다. 아무리 철없던 학창시절 일이었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번에도 흐지부지 처벌한다면 학교폭력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잘못된 행동에는 반드시 책임이 뒤따른다는 인식을 우리 국민 누구나 갖게 하는 게 중요하다.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인 인성교육 함양은 필수다. 스포츠는 협동심과 리더십을 배우는 청소년 교육에 있어 매우 중요한 도구다. 이를 위해 선진국처럼 체육교육의 우선순위를 높여 커리큘럼을 짜자. 현재 지․덕․체 순으로 되어 있는 인식을 덕․체․지가 되도록 국민운동을 펼치자. 운동선수에게 좋은 성적만을 강요할 게 아니라 인간됨을 가르치자. 자연스레 학교폭력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은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삶의 질과 인권 향상을 위해 여러 제도와 규범을 개선해 왔다. 약자에 대한 폭력을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 국가․사회적인 악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도 교육부, 학교 당국, 학부모를 비롯해 우리 사회 전체가 학교폭력에 관심을 갖고 제도 개선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학투’에 우리 사회 전체가 자유로울 수 없음을 통감하고 반성해야 한다. 학교폭력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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