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니스트
허정회 칼럼니스트

  최근 구십 노모께서 평생 처음 큰 수술을 받았다. 3시간 예정이던 수술이 5시간이 지나도록 끝날 기미가 없었다. 혹시 무슨 변고라도 있는 건 아닌 지 가족의 애간장이 타들어갔다. 6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수술실 문이 열렸다. 그길로 곧장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수술 경과가 좋았다는 집도의 설명을 듣고서야 안도가 되었다. 다음날부터 일반병실에서 치료를 받았고 입원한 지 2주 만에 퇴원했다. 입원실에서는 간병인이 24시간 항상 붙어 있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족이 면회하기 위해서는 간병인과 맞교대 해야만 할 정도로 엄격하게 관리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앞으로 병원 문병 문화가 바뀌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집으로 돌아온 후가 더 문제였다. 병원에 계실 때는 옆에 의사, 간호사가 있어 아무 걱정이 안 됐다. 그러나 집에서는 상시 가족과 요양보호사가 있어도 전문 의료인이 아니기에 좌불안석이다. 하루는 고열에 의식이 별로 없어 119를 불렀으나 병원에 안 가시겠다고 해서 그냥 돌려보낸 적도 있다. 특히 섬망(譫妄) 증상이 심각하다. 섬망은 의식이 흐려져 착각과 망상을 일으켜 헛소리 하는 것을 일컫는다. 수술시 전신마취로 인해 뇌신경에 일시 이상이 생겨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아무리 일반적이라고는 하지만 정신이 너무 좋으셨던 어머니였기에 가족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정상적으로 돌아오기까지 한 달에서 석 달 정도 걸린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는 용변 처리가 큰 과제다. 밤새 환자 옆에 누군가 붙어 있어 보살펴야 하는데 가족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일이다. 온갖 궂은일을 마다 않고 가족 이상으로 잘 보살피고 있는 간병인을 만난 건 행운이다.

집에 이런 우환이 있다 보니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연세 드신 부모님 모시는 문제가 없는 집이 거의 없었다. 이쯤 되면 이는 개인이 아니라 사회문제인 것이다. 사회적으로 돌봐야 하는데 그 방법이 묘연하다. 현재는 노인 장기요양 등급이 있으면 요양원에서, 그렇지 않으면 요양병원 등 시설에서 모시고 있다. 하지만 최근 시설에서 과다 약물 투여, 인권 침해, 집단 감염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이 발생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탈 시설’을 해야 한다며 현재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통합 돌봄) 시범사업을 벌이고 있다. 인구구조의 변화로 고령자가 급속하게 증가하면서 돌봄 문제가 보편화 됐고, 당사자의 삶의 질과 선택권 보장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고령화에 따라 급증하는 사회보험 지출 예산으로 인해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원인이다. 즉 개인이 살아 왔던 지역에서 주민들과 어울려 살 수 있게 의료, 주거, 돌봄과 같은 종합적인 서비스를 연계하고 지원하는 것이 지역사회 통합 돌봄 서비스이다.

당위성은 있지만 현실이 뒷받침 되지 못하면 결국 ‘책상 위 정책’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아직 커뮤니티케어를 할 기반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 커뮤니티케어를 하기 위해서는 읍면동 사무소가 통합창구가 돼 병원, 보건소, 복지서비스 시설 및 기관 등과 일사불란한 연계 협력체계를 갖춰야 한다. 커뮤니티케어를 하면 복지비용 지출이 절감될 것이라 하는데 ‘규모의 경제성’이 없어 오히려 예산은 더 많이 수반될 것이다. 우리 모두가 정원이 딸린 개인주택에 사는 것을 선호하지만 관리비용 등으로 아파트라는 공동주택에 사는 것과 매한가지 이치다.

국민의식도 문제다. 우리 사회가 핵가족화가 되면서 그간 미풍양속이었던 상부상조 개념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에 더해, '우리'보다는 '나'를 중시하는 이기주의적인 사고가 만연돼 있다. 커뮤니티케어를 하려면 국민의식 구조를 개선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 스웨덴, 영국, 일본 등 현재 커뮤니티케어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가 이를 위해 얼마만큼의 노력과 시간을 들였는지 깊이 연구해 볼 필요가 있다. 날로 심각해져가는 노인 돌봄 문제를 시설에서도, 그렇다고 집에서도 하기 어려운 딜레마에 빠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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