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회 칼럼니스트
허정회 칼럼니스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널리 퍼져 있어 공사(公私) 대부분의 만남을 자제하는 사회분위기다. 이런 날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제법 오래되다 보니 자유롭게 사람 만나 대화할 때가 참 좋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본성을 거슬러 비사회적이 되라고 하니 보통 갑갑한 일이 아니다. 평상시생활을 못하게 된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고 있고 날로 불안해한다. 그러나 만사는 양면이 있고 위기가 기회인 법.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를 두고 있는 요즘이 바로 책읽기에 가장 좋은 때가 아닌가 싶다.

봄을 맞아 얼마 전 양재동 꽃시장에 들렀을 때다. 이 가게 저 가게 돌아보고 있던 중 독서에 빠져 지나가는 손님에 전혀 눈길을 주지 않는 여사장이 있었다. 내가 가게에 들어가면서 먼저 인사할 정도였다. 각종 꽃에 파묻혀 책 읽는 아름다운 그 모습에 매료돼 그 가게에서 필요한 꽃을 샀다. 위 여사장 사례는 극히 예외로 우리나라 성인 대부분은 책과 담쌓고 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2019 국민 독서 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은 작년 연간 6.1권의 종이책을 읽었다. 두 달에 1권꼴이니 거의 책을 읽지 않는다는 얘기다. 서양 사람한테 가장 부러운 건 그들의 독서문화다. 그들은 지하철을 타든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하든 심지어 휴양지에서 조차 책을 끼고 산다. 부러우면 진다는데 독서 면에서는 일단 그들에게 한 수 접히고 들어가는 게 사실이다.

우리 국민은 왜 이렇게 책을 읽지 않을까? 책값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책값은 다른 물가에 비해 저렴하다. 비싼 음식을 먹는 여유 있는 사람도 마음의 양식인 책 사는 데는 인색하다. 배만 채우지 머리는 안 채우는 격이다. 나는 고급식당에서 음식 먹는 데는 보수적이지만 책 사는 데에는 아끼지 않는다. 특히 요즘에는 책 사기에 너무 편한 세상이 됐다. 오늘 새벽에도 유튜브에서 소개한 책을 즉석에서 온라인으로 주문했다. 이 책은 이르면 오늘 늦어도 내일 집 앞 현관에 놓여있을 것이다. 나는 책 주문 후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그 책에 대한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찬다. 어떻게 생겼을까. 무슨 내용이 담겼을까. 하루빨리 받아보고 읽고픈 생각에 그 책을 만날 때까지 내내 기분이 좋다.

어느 책이든 저자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있고 세상사는 지혜가 담겨있다. 우리가 살면서 저명인사는 만나기 힘들어도 그들이 쓴 책은 얼마든지 구해 그의 삶을 배울 수 있다. 책만큼 가성비 높은 재화를 찾기 쉽지 않은 이유다. 책 살 돈이 없으면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있다. 동네마다 ‘작은 도서관’이 있어 얼마든지 공짜로 읽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위 문체부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독서량이 적은 이유로 가장 많이 꼽은 것은 ‘책 이외 다른 콘텐츠 이용’이 29%였다. 인터넷, 유튜브 등 다양한 매체가 종이책을 밀어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 탓을 우리 국민이 독서 습관이 안 돼 있는 데 있다고 본다. 옛날에는 9월이면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포스터를 곳곳에 요란하게 붙여놓고 독서를 권장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캠페인도 별로 안 보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버스나 지하철에서 가끔 책이나 신문 읽는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거북목을 하고 스마트폰에 몰입해 있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 습관을 길들이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절실하다.

책과 친해지려면 편의점 들리듯 가벼운 마음으로 책방에 가야 한다. 시간 날 때마다 서점에 들러 요즘 무슨 책이 나와 있는지 둘러볼 것을 권한다. 책 제목만 훑어봐도 지금 세상 돌아가는 추세가 보인다. 그러다 관심 있는 책이 눈에 띄면 한두 권 사들고 나오면 된다. 자기 돈으로 구입한 책이기에 어떻게든 읽게 된다. 이런 한두 번 경험이 쌓이면 좋은 습관이 되고, 이것이 곧 내 취미로 이어져 꾸준하게 책을 읽게 된다.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요사이, 혼자 책 읽고 공부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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