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시 특집/ 대법륜사 주지 회주스님

 

끝없이 불사하고, 기도하며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삶

대법륜사 주지 회주 스님

 

- 대중 감화시키고 포교하는데 앞장서

- 자급자족하는 불교, 사회적 역할 하는 불교 필요해

- 김해시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대법륜사

 

 

 

 

 

 

세계적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를 조사하니 어머니, 열정, 그리고 웃음이 상위 에 랭크되었다고 한다. 대법륜사를 이끌고 계신 회주스님과과 인터뷰는 그 중에서도 ‘열정’과 ‘웃음’을 가득 접할 수 있는 소중한 만남이었다.

“나이는 많지만 한 순간도 쉬지 않는다. 끝없이 불사하고, 기도하며 열정적으로 살 것이다.”라며 일흔을 넘긴 나이에도 불교 포교를 위해 다양한 일을 시도하고, 도전하는 회주스님의 모습에서 넘치는 열정과 긍정적 에너지를 느낄 수 있었다. 또 “웃으면 복이 온다고 했다. 부처님의 트레이드마크는 웃음이지 않은가. 스님은 웃어주는 것만으로도 포교다. 대법륜사에는 불상이 만 개가 넘는다. 혹자는 부처님이 그리 많을 이유가 있냐고 하지만 부처님의 웃음을 어디서든 볼 수 있게 하려는 마음이다.”라는 회주스님의 말씀을 듣다 보니 절로 흐뭇한 미소가 지어지기도 했따.

 

 

 

끊이지 않는 열정으로 배움 멈추지 않아

회주스님은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통도사에 계시던 친삼촌의 권유로 출가를 하게 됐다. “6.25를 겪던 해에 삼천포에서 태어났다. 온 나라가 배고픔을 해결하기만도 급급했던 시절이었다. 가난에 허덕이던 때였기 때문에 장손인 내가 절에 오면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친 삼촌이 제안하신 것을 계기로 출가 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후 검정고시를 치르고 동아대학교 국문과에 진학 했다. 스님은 학벌을 중요시 여기지 않던, 산 중에서 불교 공부만 한다고 알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스님께서는 학문도 게을리 하지 않은 것이다. 회주스님은 “60년대 후반 즈음 주지스님께서 부산의 동네 포교당에서 중고등학교 학생을 가르치라 하셨다. 어린 마음에 초등학교만 나온 나보다 다른 학생들이 더 똑똑한 것처럼 느껴져 부끄럽기도 했다. 사회인을 가르치려면 절 공부뿐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사회인보다 앞서야겠다는 생각에 공부를 멈출 수 없었다.”고 전했다. 회주스님은 지금까지도 학문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고 계신다. “내 수준이 올라가지 않으면 신도들도 찾지 않는다. 스스로 끊임없이 공부 해야 한다.”는 것이 지론이기 때문이다.

 

 

 

 

 

대중 감화시키고 포교하며 이 땅을 불국토로 만들 것

회주스님은 적극적으로 포교에 힘쓰는 스님 중 한 분이다. 불교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포교라고 보기 때문이다. “스님이 꼭 선방에 틀어박혀 홀로 참선만 해야 큰 스님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스님의 능력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 참선을 주로 하는 스님, 염불과 불공을 잘 하는 스님, 또 대중을 감화시키고 포교하는 데 소질이 있는 스님이 있다. 나는 학문적으로 포교하는 데 소질이 있다고 생각했다.”며 “한국인이 가장 위대한 고승으로 꼽는 원효대사 역시 포교에 앞장섰던 분이다. 누구든지 ‘나무아미타불’만 부르면 희망이 이루어질 수 있고 극락에 갈 수 있다는 것을 민중들에게 가르쳐 주셨다. 홀로 참선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 전체를 불국토로 만드는 것이 부처님의 일이기에 열심히 임해 보여주고자 한다.”고 포부를 밝혔다.

 

납골 사업 진행

극락왕생할 수 있게 축원해 주기에 위패 모시는 이들 많아

특히 대법륜사는 현재 납골 사업을 진행 중이다. 위패를 모시게 되면 평생 제사를 모셔드린다. 조석으로 지장보살님께 기도를 올려드리며 영가들이 정토에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축원해 드리기 때문에 인기가 높다. 후손들이 마음 편히 모실 수 있는 영혼의 안식처가 되어 주고 있는 것이다. 극락세계는 황금으로 되어 있고 부처님이 되면 금색신이 되기 때문에 대법륜사 극락전 봉안당은 내부 장식을 대부분 황금색으로 장식했다. 위로는 하늘의 천기를 받고 뒤로는 함박산 정기를, 앞으로는 불모산 정기와 주촌 평야의 정기를 받아 날마다 스님들의 청아한 염불소리가 어우러지니 글자 그대로 천지인이 모두 모인 형국이다.

 

 

 

납골당사업은 불교도 자급자족해야 한다고 보시는 회주스님의 큰 뜻이 바탕이 되어 시작된 사업이다. 회주스님은 “지금까지 불교는 신도들이 가져다주는 시주에만 의존했다. 하지만 불교가 사회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받기만 하는 불교가 아니라 주는 불교가 되려면 자급자족해야 한다. 일본 등 동남아 국가의 사찰은 모두 납골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착안해 2016년에 직접 시에 찾아가 납골당 허가를 받았다. 현재 대법륜사의 경제적 의존도는 70%가 납골당이라 할 정도로 사업이 잘 되고 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가치는 힐링과 평화다. 많은 사람들이 절에 위패를 안치하고 찾아오면서 힐링을 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이 곳에 와서 기도 하면 마음 편안해 진다. 이득은 다시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자체 사업을 통해 떳떳하게 번 수익금을 기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에 좋은 일을 할 때도 더 당당하다.”고 설명했다.

회주스님은 앞으로 카페도 운영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바리스타 스님이 커피협회도 가입하고 근처 카페 주인들과도 만나 함께 활동을 하고 공감을 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불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 줄 수 있다. 이것이 사회와 소통하고 불교로 향하는 길잡이로서 행하는 길이 될 것이다.”

 

김해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대법륜사

회주스님은 스스로를 ‘일조 불사’할 스님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절 그 자체가 부처님의 나라라고 보기 때문이다. “혹자는 절을 안 짓는다고 절이 없느냐. 절이 없어서 불공을 못 하는가 하며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중국이 아무리 땅이 넓어도 더 많은 땅을 원하듯이 땅이 많다는 것과 인구가 많다는 것이 국력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절이 초라하면 일반인들은 그 절을 보고 불교를 평가한다. 외부에서 볼 때 절이 넓다면 스님, 절의 기운, 불교도 달라 보이는 것이다. 절이 꾀죄죄하다면 부처님도 꾀죄죄해 보인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 꿈은 차츰 이뤄져가고 있다.

대법륜사 앞으로는 6차선 도로가 생기고 주변에 경희의료원도 들어오면서 대륜법사는 이미 김해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6차선 교차로도 대법륜사가 교처로로 확정되었고. 대법륜서가 정류소 명칭으로 사용될 정도다. 경상남도의 수천 개가 넘는 사찰 중에 사찰 이름만으로도 브랜드적 가치를 가진 곳은 이 대법륜사가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대법륜사로 들어서는 길목에 자리한 큰 불상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회주스님은 “요즘 바쁜 현대인들은 절을 찾을 시간이 없다. 절에 와야만 부처님을 만날 수 있는데 절에 오지 않으니 부처님을 만나볼 수도 없는 것이다. 대륜법사 앞 도로에 하루 만 대 이상의 차량이 지나가는데 지나가면서라도 불상을 한 번 보게 하고 싶었다. 신도들은 마음을 정화하고, 종교에 관계없이도 부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기 위해 크게 불상을 세웠다.”는 것이다.

 

매주 한 번씩 영혼 달래는 천도제 지내

지금까지 1200회에 달해

회주스님은 지금까지 매주 1주일에 한 번씩 죽은 영혼들을 위한 천도제를 지어오고 있다. 25년간 이어온 결과 그 횟수가 1200회에 달한다. 마음먹은 대로 불사가 이뤄지지 않아 덕과 복을 쌓기 위해 찾은 방법이었다. “20년 전에 터를 마련한 이후로 한 평도 부지를 넓힐 수 없었다. 내가 복이 부족하구나 싶어 성공한 사람들의 수기를 찾아 읽어 보았다. 그러던 중 수많은 묘지를 찾아 무료로 천도제를 드려주는 스님의 이야기를 보게 됐다. 그래서 전국 공동묘지를 찾아 천도제를 지냈다. 살아있는 사람의 대중공양을 올리려면 자금이 많이 들지만 영혼들을 위해서는 그리 많은 돈도 필요하지 않는다. 산 사람은 나를 아는 사람이 얼마 안 된다 해도 죽은 귀신 중에 나를 아는 귀신은 수백만 명이 될 것이다. 귀신이 나를 모른다면 귀신 축에 못 든다 자신할 정도로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했다.”

“박삼중 스님께서 임진왜란 때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수륙제를 지내시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300명 정도를 데리고 일본을 3~4번 다니며 천도제를 지냈다. 베트남에도 가서 월남전 참전 영혼을 위해 수륙제를 지내주었다. 그래도 부족할까봐 1주일에 한 번씩 우리 절에서 천도제를 지내자 다짐했다. 그렇게 부산에서 13년, 김해에서 12년 동안 매주 천도제를 지냈다. 지금까지 횟수로 치자면 1200번에 달한다.”

간절함과 열정에 역시 하늘도 감복했을까. 천 번의 천도제를 지냈을 즈음, 어느 날 갑자기 주변에 땅을 가진 주인이 부지를 사찰에 팔고 싶다는 의지를 표했다. 그 자리에 골프연습장이 들어선다는 소문들이 나돌며 걱정하던 찰나였다. “2016년 까지는 부지를 한 평도 더 넓힐 수 없었다.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매번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주변에 만 2천평 땅을 가진 분과 의논해서 부지를 구입하게 됐다. 우선 계약금 중도금만 치르고 돈이 급히 필요한 것도 아니니 잔금은 나중에 갚으라 했다. 그렇게 한 번에 만 오천평의 부지를 갖게 되었다. 이후 자금도 일사천리도 해결되어 잔금까지도 모두 해결한 상황이다.” 그렇게 대법륜사는 넓은 부지에 불사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대법륜사에서 기도 통해 평화 얻기를

이 곳이 곧 부처님 세계라

끝으로 코로나로 지친 중생들에게는 들려줄 말을 청해 보았다.“우리 삶에는 항상 괴로움이 있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이라 생각하겠지만 코로나가 지나가도 삶은 괴롭다. 이것을 멸하려면 도를 닦아야 한다. 정신을 모으는 모든 것은 도를 닦는 것이다. 코로나를 이겨내기 위해 백신을 맞듯이 수많은 사람이 마음이 괴롭고 힘들고 꼭 이루고 싶은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절에 오면 된다. 이 도량에 오면 갈등을 풀고 응어리를 풀고 기도를 통해 평화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은 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닦는 종교다. 극락도 마음에 있는 것이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살고 있지만 수행하고 기도하고 공부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무게를 떨치고 훨훨 날아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 참선하고 있으면 내가 가장 행복한 것만 같다. 누구든 법문 듣고 기도하면 행복해 질 수 있다. 그래서 불교와 우리 대법륜사 절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 자치로 ‘부처님의 세계다’ 느끼는 세계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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