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명 스님

동불암 보명스님의 예술혼이 담긴 금니사경(金泥寫經)

문화재로 등재해 국가차원에서 보존함이 마땅할 것

 

- 열네 살 때부터 지금까지, 베트남전 참전 당시에도 멈추지 않았던 사경

- 먹에 금가루 넣어 쓰는 금니사경으로 부처님 말씀 새기는 수행

- 2003년 북에 보낸 법화경 보고 김정일 국방위원장 깜짝 놀랐다고 들어

- 천일동안 매일 800자씩 써서 완성한 70만자의 화엄경, 세상 빛 봤으면

- 훈장 추진한 지인 말렸지만 작품 가치는 인정받고 보존되기를

대구 동불암의 보명 스님은 불교의 대표경전을 먹에 금가루를 넣어 쓰는 금니사경(金泥寫經)을 60년 넘게 이어오고 있다. 그 작품은 우리나라의 3보 사찰인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뿐만 아니라 직지사, 불국사 등 대사찰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등에도 기증했다. 특히 2003년에는 북한의 묘향산 보현사에도 전달했다. 그리하여 5박 6일 일정으로 북측의 초청을 받아 방북을 하기도 했었다. 보명스님을 직접 만나 상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60년 넘게 한 시도 중단하지 않고 사경 수행에 정진

보명 스님이 사경 수행을 평생의 업으로 삼은 것은 지난 1957년부터다. 14세 때 입산해 해안스님과 인연을 맺었는데 “금강경 천 번 쓰고 죽어봐라”라고 말씀 하셔 오늘날까지 붓을 잡고 있는 것. 그렇게 1999년이 되던 때에 금강경 천 번을 마스터했다고 하셨다.

 

보명 스님은 매일 아침 새벽예불을 마치고 6시 30분부터 오전 수행을 시작한다. 이것을 마친 10시 30분부터 12시까지는 기도를 올리고, 다시 1시부터 시작되는 오후 수행은 5시까지 이어진다. 이렇게 하루에 7시간씩 사경수행을 계속해 왔다.

 

사경수행에 정진하는 지난 세월동안 한시도 수행을 중단한 일이 없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을 때에도 사경은 멈추지 않았다. 종이가 있었겠는가 볼펜이 있었겠는가. 쉬는 시간마다 대검으로 흙바닥에 사경을 하다 보니 대검 끝은 2cm가 닳아져 있었다. 보명 스님은 “내가 죽고 사는 것은 인명제천이니 하늘에 맡기고 중의 몸이니 거기에서도 사경을 했었다. 이미 금강경은 천 번은 외워 봤으니 줄줄줄 나왔다. 그 때 소대장에게 걷어차여 지금도 상처가 있다.”고 회상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고 놀라 뒤로 벌렁 나자빠지다”

북에 보낸 7만자, 길이 13m의 대형 사경 병풍

보명 스님의 작품들은 이미 우리나라의 3보 사찰인 통도사, 해인사, 송광사뿐만 아니라 직지사, 불국사 등 대사찰을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등이 보관하고 있다. 특히 2003년에는 북한의 묘향산 보현사에도 전달되었다. 북에 전달한 병풍에는 통일의 염원을 담았다. 전달된 작품은 높이 2m 16폭에 총 길이가 13m에 달하는 대형 병풍이다. 6개월에 걸쳐 6만 9천 8백자를 담았다. 이를 계기로 보명스님은 5박 6일 일정으로 북측의 초청을 받아 방북을 하기도 했었다.

보명 스님은 “조선불교도연맹(조불연) 측에서 먼저 요청해 기증하게 됐다. 그 과정은 쉽지는 않았다. 지금은 세상을 뜬 법장스님이 정부의 승인을 받고 허가를 받기까지 2개월이 걸렸다. 안기부, 보안대, 청와대, 통일부의 허가를 모두 받아야 했다. 2003년 7월 23일자로 남포항에 도착했다고 들었다. 이에 북측에서 초대를 하여 VIP로 북한을 직접 가 볼 수 있었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당시 평양순안 공항에 도착하자 김영남 최고인민위원회의 상임위원이 의전을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님께서 작품을 보시고 너무나 멋져 뒤로 벌렁 자빠지셨습니다.”라는 평가를 전하기도 했다고 한다.

 

어디에 보관 중인지 소재파악 하고 싶은 소망 있어

스님은 정성을 들인 이 경전 마지막에 ‘묘향산 보현사 사리탑전 봉납’이라고 썼다고 한다. 보현사는 일제시대 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가 입적한 곳이다. 하지만 현재 북에 전달한 작품은 남북관계 악화 속에 어디에 보관되고 있는지 현황조차 파악하기 힘든 상태라 안타까움이 크다.

 

보명 스님은 “소재파악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청와대로 청원도 해 봤다. 결국 통일부 관계자가 전화를 걸어왔는데 현재는 소재 파악이 어렵다. 하지만 만약 북에 갈 일 있다면 스님을 모시고 가겠다는 답만 들은 상태다.”라고 전했다.

 

2003년 당시 수행을 했던 조불연의 임청담 위원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보고 이 정도로 감격한 작품이라면 김일성국제친선전람관에 들어가지 않겠는가라는 예측을 했었다고 한다. 김일성국제친선전람관은 각국 정당, 국가수반들, 사회계 인사들이 북에 보낸 진귀한 선물들이 대륙별로 나라별로 진열되어 있는 곳이다.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 곳 역시 관람해 보았다는 보명 스님은 “묘향산을 뚫어서 6만평 규모로 만들어 놓았는데 세계적으로 제일 좋지 않을까 할 정도로 눈부셨다. 김일성과 김정일 두 라인이 있는데 한국관에 가 보니 몇 작품 없이 초라했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보낸 조그마한 상 하나와 정주영씨가 소 501마리 몰고 갔을 때 출고 한 차 외에는 없었었다.”고 회상했다.

 

998일 만에 완성한 화엄경 70만자 작품,

세상의 빛을 보여주고 싶어

현재 동불암에는 길이가 2m, 폭이 1m 정도 되는 종이로 66장에 걸쳐 화엄경 약 70만자를 적은 것을 볼 수 있다. 하루에 800자 씩, 천 일 동안 쓰겠노라 마음먹고 998일 만에 완성한 작품이다. 실물을 직접 보니 그 웅장함과 정성, 섬세함에 보자마자 말문이 막혀왔다. 직접 손으로 반듯하게 적은 것을 보니 가히 대단하다는 감탄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인간이 했다 믿을 수 없는 경지에 오른 작품이었다.

 

보명 스님은 “고된 작업이었다. 얼마나 고되냐 하면 쓰는 동안 육신을 버려 버렸으면 하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다. 하지만 사경을 하는 동안 육신은 사라지고 붓만 한 자루 있는 광경을 보았다. 경전에 담긴 붓다의 진리와 글을 쓰고 있는 내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는 사경 삼매(三昧)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아직 세상의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원래 이 화엄경을 사경한 작품은 직지사에 기증할 계획이었다. 김천 직지사 조실 녹원 스님의 초빙을 받아 갔을 때 직지사 만덕전에 유치하기로 약조를 했던 것. 그런데 완성하고 갔더니 녹원스님이 치매로 당시 기억을 잃어버려 갈 곳을 잃게 되었다. 보명 스님은 “이런 작품을 그냥 여기에 놔두는 것이 너무 안타깝다. 경전에 담긴 부처님의 가르침을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보여주고 싶다”고 다시 한 번 안타까움을 전했다.

 

 

작품마다 상당한 비용 들어,

지금껏 모두 스스로 부담하셔

한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오랜 세월과 노력, 금으로 만드는 만큼 상당한 비용이 들지만 보명 주지스님 개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계신다. 먹물에 금가루를 타 경전을 쓰는 금니사경은 고역도 고역이거니와 경제적 부담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금값도 천정부지로 올라간 상황에 자비를 들여 수많은 글자들을 순금으로 입히다 보니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거기에 매일같이 글을 적어 내려가신 보명스님의 노고를 더한다면 감히 가격을 매길 수도 없으리라.

 

스님은 “2005년에 일본에 가서 전시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수익을 올린 돈으로 부담하고 있다. 나눔을 할 때는 오른손이 한 것을 왼 손이 모르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전했다.

 

정부 차원에서 감정하고 보존 할 수 있기를

곁에서 작업을 지켜 본 지인은 보명스님이야 말로 불교 포교와 부처님 정신을 전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음이 분명하다며 훈장을 받을 수 있도록 추천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보명 스님께서는 “나 개인적인 명예에 연연하지는 않았다. 추천서가 있기에 다 빼앗아 와버렸을 정도다. 다만 이 작품이 제대로 평가를 받고 후대에 길이 남기를 바란다. 그래서 문화체육관광부나 정부 차원에서 제대로 감정을 해 줄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 는 희망을 표하셨다.

 

 

보명 스님의 작품은 몇 번을 보아도 놀라울 정도였다. 그 자체로 아름다움과 섬세함, 정교함을 품고 있어 예술적으로도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부처님 정신이 그래도 녹아 있기에 불교적 의미도 깊다. 아마도 문화체육관광부나 문화재청 등에서 제대로 감정 평가를 내린다면 그 자체로 문화재가 되고 그야말로 보물이 되고 국보가 되지 않을까. 국가차원에서 보존하고 후세에 남겨 놓음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본 기자도 염원을 다해 이 작품들이 제대로 평가 받기 위해 돕고자 한다.

 

 

​ ‘사경’이란 필시 글자만 베껴 쓰는 것이 아니라 경전에 담긴 붓다의 가르침을 우리의 몸과 마음에 새기는 행위일 것이다. 즉 경전의 말씀을 한 자 한 자 정성껏 새기면서 붓다를 닮아가야겠다고 발원하는 성스러운 의식인 것이다. 평생을 붓다의 가르침을 새기고 삼매의 경지까지 이른 보명 스님의 작품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더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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