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삶을 닮아 있는 법상사 법미 주지 스님의 삶.

그 비범하고 특별한 기적적 삶을 되짚어 보다

법상사 법미주지스님

 

선몽으로 전생을 찾고 현세와 미래까지 내다보시다

 탁발 수행 통해 도를 닦고 불사를 이루다

너는 석가여래니라, 불쌍하고 가련한 중생을 구제해야하느니라’ 부처님 말씀 들어

 

 

 

 

세상에는 종종 눈을 의심케 하고, 이성적으로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흔히 우리가 ‘기적’이라 일컫는 일들이다. 법상사의 주지 법미 스님의 일생은 가히 기적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비범하고 특별했다. 두 차례에 걸쳐 장장 260분, 4시간 20분가량 진행된 인터뷰는 놀랍고 신비한 일화들의 연속이었다.

법미 스님께서는 속가에서는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기도를 하고부터 어마어마한 변화를 겪게 되었다고 한다. 스스로도 의아하다 하실 정도였다. 잇따른 선몽을 통해 부처님의 크신 뜻을 깨닫고, 전생을 찾았으며 미래까지도 알게 되었다. 이 곳 법상사의 터를 잡게 되었으며 단 돈 50만원 밖에 없던 상황에서 넓은 터에 불사를 이루고 산신각을 마련할 수 있었다. 기적은 법상사를 찾는 신도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다. 모두 부처님과 산신의 원력이 함께 해서이리라.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신비롭지만 결코 과장되지 않게 들려주신 법미 주지스님의 특별한 일생과 기적을 부족하나마 활자 속에 담아보고자 한다.

 

 

 

 

 

 

 

스물아홉, 출가를 결심하다

법미 주지스님이 출가를 결심하게 된 것은 스물아홉 되던 해에 아주 미미한 꿈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꿈속에 속가 아버지 모습으로 공중에 출연하셔 ‘내가 너에게 빚을 진 것이 있다’ 하시며 동그란 고리 2개와 돈 1만 4천원을 주신 것. 법미 주지스님께서는 “부처님께서 아버지 모습을 빌어 나타나신 것이었다. 1만 4천원이라는 돈 역시 의미가 있었다. 어떤 소원이라도 일사천리로 이루어지게 하시는 일사천리불 부처님이라 해석할 수 있다. 그 꿈을 꾼 이후로 길을 나섰다.”고 설명하셨다. 고향인 대구에서 가방 공장을 차리고 평범하게 살던 일상이었다. 결혼도 해 두 명의 아이도 있던 때였다. 하지만 둘째가 백일 될 무렵, 그렇게 무작정 출가를 결심하게 되었다.

절에 어떠한 인연도 없던 탓에 처음에는 모친이 인도하신 점사 보는 곳에서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법사 제자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하기에 시키는 대로 했지만 가면 갈수록 의구심이 생겼다. 사리사욕을 채우고 거짓말을 하는 모습들만 보였기 때문이다. 하루는 모시고 있다는 신발장을 가리키며 때려 부숴버리겠다 했다. 그제야 그 무속인은 기운이 너무 넘쳐흘러 자신은 감당을 하지 못하니 백일기도를 가 보라 했다. 그렇게 속리산 법주사에서 기도를 시작했지만 21일 만에 하산했다. 가정에 아이들이 너무 어려서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마침 부친이 불러 70만원을 전 재산이라며 주시기에 강원도로 가서 집을 한 채 사 직접 수리를 하고 보살님과 아이 둘을 데려다 놓고 다시 떠나고자 했다. 그 날도 꿈을 꾸는데 하늘에 길고 하얀 구름길이 천상까지 연결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속세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하고 설악산에 들어갔다. 그 때 신흥사 화주보살님께서 소개해 주신 절이 내원암이었다.

 

 

 

 

부처님의 아들임을 깨닫고 진정한 집을 찾다

내원암에 기거하게 된 것 역시 보통 인연은 아니었다. 당시 주지스님은 절에 잘 계시지 않던 분이었다. 전국을 다니시기에 내원암에는 아주 간혹 들르기만 했다. 그런데 법미 스님이 찾은 바로 그 날은 주지스님이 계셨다. 이것 역시 부처님 인연이 아닐 수 없었다. 머물 수 없나 물으니 방안에서 ‘어디서 왔는가’ 하시기에 ‘모친이 계신 묵호에서 왔습니다’ 하니 ‘묵어가게’하고 허락을 해 주셨다.

법미 스님은 “그 때 음성이 아직도 생생하다. 머무르라는 허락이 너무나 반가웠다. 그렇게 하룻밤을 머물고 설악산 정상을 보고 있다가 스스로 무르팍을 쳤다. 단 하루 머무른 것뿐인데 그렇게 마음이 편안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내 집이라는 것을 단 하루 만에 깨달은 것이다. 부처님이 우리 아버지다. 부자 아버지를 두고 속가에 살았던 것은 마치 고아원에 버려진 것과 같은 것이었다. 고아원을 버리고 내 집을 찾았다 싶었다. 그 사실을 알고 사정을 해서 백일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조상천도 위해 치성으로 100일 기도드려

법미 주지스님은 그렇게 ‘내원암’에 올라 기거하며 백일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올 때 차비만 가지고 나가지 않겠다는 각오로 들어왔던 길이었다. 지게도 지고 도량청소도 하고, 신도님들 안내하는 몸보시를 하며 절을 이익 되게 하기 위해 온갖 일을 다 했던 100일 이었다.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 모른다.

법미 주지스님은 “음력 2월에 기도를 들어가 100일 동안 매일 겨울에도 찬물로 목욕하며 기도했다. 하루에 3차례씩 기도하는데 시간을 단 1초도 어기지 않았다. 철야기도도 하고 천배도 했다. 당시 같이 기도하는 하는 분들이 가르쳐 주시는 대로, 시키는 대로 다 따라하다 보니 정법이었던 것이다. 속세와의 인연은 완전히 끊었다. 바깥 음식은 전혀 먹지 않았다. 절 밖에 나가면 물도 먹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 했다. 오로지 조상천도를 위해 일념으로, 일심으로 기도하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매일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뜨거운 것을 그 때 처음 겪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지극정성에 어느 누가 감복하지 않을 수 있으랴. 후에 법미 주지스님은 꿈속에서 천상에 나무 집을 지으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큰아버지 모습도 보였다. 조상님들을 모시기 위해 큰 집을 지으시는 모습이 보이니 너무 감사한 마음이 이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 법미 스님은 환희심이 일어나 절에 오시는 분들께 너무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대지혜를 준다. 불쌍하고 가련한 중생을 구제해야하느니라.’ 소리 들려와

그 백일기도를 하는 동안 비범한 꿈들이 계속 이어졌다. 법미 스님은 “하루는 새벽 기도를 마치고 거처하던 조그만 방에 가부좌를 틀고 누워 있는데 단전에서 음성이 들렸다. 머리 옆으로는 반달처럼 생긴 하얀 유골 2개가 보였다. 눈을 떠도 보이고 감아도 보였다. 어깨 위에서 두 팔이 생기더니 머리 위로 올라와 머리를 밀어 넣어주고는 팔이 제자리로 들어갔다. 엄청난 힘이었다. 그 때 말씀이 ‘대지혜를 준다’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천수천안 관자재보살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불쌍하고 가련한 중생을 구제해야하느니라.’하는 말씀도 이어졌다. 그 말을 듣고 속초 방향을 바라보았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제 마음에 중생들을 모두 구제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다.”고 전했다.

천상에 가서 천왕(천신의 왕)도 직면하고 왔다. 큰 불덩어리인데 눈이 하나 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처음 보니 두려웠지만 말씀을 하시기를 ‘나는 이제 여기 임기가 다 되어 다른 곳으로 가야하는데 그 곳에 서라’라는 것이었다. 아침에 깨어 생각해 보니 많은 분들이 얘기하는 성령을 본 것이었다. 백일기도 중에 도를 닦아 천왕님 계신 그 자리까지 간 것이었다.

백일만 기도하며 머무르려던 계획은 6개월까지 이어졌다. 백일기도를 마치고 하산을 하려니 당시 주지스님께서 ‘조금 더 있다 가시게’ 하시기에 계속 머무르며 기도하고, 도량을 관리하며 살았던 것.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하산하라’ 하셨는데 딱 6개월 되는 날이었다고 한다. 법미 스님은 “지금 돌이켜보면 부처님은 6년 고행하셨는데 나는 6개월로 줄여주신 것이었다. ‘나는 이리 고생했지만 너는 하지 말라’하며 지름길을 알려주신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사랑이고 자비심이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5년간의 탁발 수행,

반야심경 외우고 관세음보살만 외치며 전국 다녀

백일기도가 끝나고 머리를 깎고 출가하겠다는 마음을 먹을 수 있던 것도 이런 연이은 기적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역시 법미 스님은 예지몽을 통해 이미 보신 일이었다. “꿈속에서 내원암 앞마당 나무 의자 위에 하얀 가운을 덮고 앉아 있으니 부처님께서 주지스님의 모습으로 바리깡으로 머리를 깎이셨다. 그러시더니 제 눈을 바라보셨다. 나중에 알고 보니 ‘계’를 주고받는 것이라 했다. 그 다음 날부터 거울을 봤는데 이전의 흐릿하고 썩은 동태눈깔 같던 눈빛이 아니었다. 까만 동자가 정확하고 선명하게 자리했다. 부처님께서 제 머리를 깎여서 눈으로 바라봐 주시니 내가 부처님의 자식인 것을 그제야 알았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내원암을 찾아 진짜 머리를 깎았다.”

 

 

 

 

 

이후 법미 주지스님은 5년간 탁발수행에 나섰다. 내원암을 나서며 평평한 돌을 하나 딛으면서 ‘지금부터 나는 부처님께서 밟은 발자국을 그대로 밟는다’하고 혼자 부처님과의 약속을 하고 나선 길이었다. 인맥 하나 없이 무작정 떠난 탁발 수행이었다. 내원암 주지스님께서 일러주신 그대로 반야심경을 외우고 관세음보살만 외치며 전국을 다녔다.

법미 스님은 “욕도 받고 담배꽁초도 받고 손가락질도 받아봤다. 그러나 어마어마하게 받는 것이 있으니 그것이 사랑이었다. 사기꾼, 도둑놈이라고 해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떤 말이 오던 오로지 ‘관세음보살’만 외쳤다. 누가 무슨 이야기를 해도 반문하지 않았다. 참는 기도를 30년을 하는 것 같다. 30년 수행하면서 지금까지 누구하고도 다투지 않은 불도를 닦았다.”고 그 때를 회상했다.

탁발수행을 다니던 중에는 꿈속에서 부처님을 키워낸 부처님의 어머니인 대준제보살도 친견했다. 꿈 내용을 옮겨 본다. “어릴 때 뛰어놀던 골목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데 골목을 돌아가니 정중앙에 키가 크신 보살님 한 분 서 계셨다. 그 분을 향해 뛰어가면서 ‘칠구지불모대준제보살님’ 하고 외치고 품에 안겨 엉엉 울었다. 그 전까지는 천수경을 떼지 못한지라 책을 외우기에만 급급했었다. 누구신지 책을 뒤져보니 ‘칠구지불모대준제보살님’은 바로 부처님의 어머니인 대준제보살이었다. 초창기에 벌써 불모님을 만나버린 것이다.”

평범한 중생으로서 듣기에 가히 사람을 뛰어 넘은 경지에 오른 것만 같았다. 법미 스님 스스로도 “사람으로서는 중생 제도를 하지 못한다. 보살이 되어야 한다. 30년 세월이 도를 닦는 시간이었다. 부처님과의 맹세, 약속을 지키는 과정에 있었던 일일 뿐이다.”라고 전해 주셨다.

 

누구든 전생을 찾아라.

그래야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지 알 수 있다.

법미 주지스님은 모든 중생들이 자신의 ‘전생’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법미 주지스님은 전생에 자신이 용왕님 딸임을 찾았다. 꿈속에서는 수영을 해도 숨이 막히지 않는다고 한다. “꿈속에서 물 밑으로 헤엄쳐 들어갔는데 집 한 채가 보였다. 거기서부터는 걸어 들어갔다. 그 곳이 용왕궁이었다. 어머니 하면서 들어가서 그 분 품에 들어가 울었다. 엉엉 울다가 잠에서 깼다.”

 

 

 

 

 

 

 

 

법미 주지스님은 전생을 알기에 미래까지도 이미 알고 계셨다. “부처님으로 인해 전생도 찾고 현재도 찾고 미래도 찾았다. 나는 다음 생은 중국에 태어날 것이다. 미래에 중국에 가서 불교를 전파 하는 것이 소원이다. 지금 법상사의 부지 주인은 어머니처럼 모시고 있는데 다음 생에서도 어머니로 모시겠다고 했다. 현생에서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다. 그리고 태어나면 소림사에 버려 달라고 했다. 소림사로 돌아가서 달마님 은혜를 갚고 불교를 전파할 것이다. 인도까지 가는 것이 최종 목적이다. 몇 천 년 몇 만 년까지 미래를 보고 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나 불국토를 만들고자 한다.”

단지 눈앞에 닥친 현생의 안위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기에 법미 주지스님의 삶은 특별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스스로를 ‘살기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라 잘 죽기 위해 사는 사람이다.’라고 하시는 말씀 역시 예사롭지 않았다. 법상사 역시 도인을 만드는 공장으로 자신은 그저 좋은 일 많이 하고 선업 많이 남겨 놓고 가면 다음 세대들이 판단해 불도를 이어갈 곳이라 하셨다.

 

신도들에게 강조하는 것 역시 전생을 찾으라는 것이다. 그 방법은 결코 어렵지 않다. 기도를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이다. 법미 주지스님은 “누구든지 자기 전생을 찾아라. 그래야만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살지 열쇠를 찾을 수 있다. 네가 왜 이렇게 사는 지 찾아내라. 기도 통해 누구나 찾을 수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중생심으로 절에 다니는 것이 아니라 죽기로 기도하면 100일 기도 만에도 이뤄진다.”라고 말씀하신다.

 

아수라세계에 있던 전생을 깨닫게 된 신도회장님의 증언

법상사 이 자리에 와서 전생을 찾으신 신도들도 상당수다. 전생에 아수라 세계에 있었던 것을 알고 그 이후에는 완전히 달라진 분들도 계시다. 지금 신도회 회장을 하시는 분 역시 전생을 찾고 엄청난 기적을 겪은 장본인이다. 옆에 계시던 신도회 회장님의 증언 역시 옮겨 본다.

신도회장님은 이 곳 법상사에 와서 마음의 평온을 찾았다고 말한다. “항상 바쁘게 살았었던 인생이었다. 무언가 성취 하면 하기 싫어졌다. 남들은 저 좋은 곳을 왜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벌이는가 하는 생활을 이어왔다. 대기업도 다니다가 나와 버리고 한 달에 1억씩 벌던 사업도 싫증이 나서 남에게 넘겼다. ‘대체 왜 이렇게 남들은 갖지 못해 안달이고 올라오려 하는 삶을 포기하게 되는가. 나는 왜 올려놓고는 다시 내려오는가.’ 하는 의문에 수많은 절을 찾아다녔었다. 하지만 어느 절에 가도 되지 않았는데 법상사에서 답을 찾았다.”며 들려준 이야기 역시 기적과도 같았다.

혼자 지장기도를 시작해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98일째부터 전생을 보여주신 것. “98일 되던 날부터 과거에 살았던 세상과 나의 업을 선몽으로 보여주셨다. 누군가 옆에서 팔목을 딱 잡으시기에 누구세요? 했더니 지장보살님이 ‘전생 보고 싶다며’ 하시더라. 그러고 나서 보여 주신 것이 바둑판같은 세상이었다. 그렇게 세상이 많은데 오로지 전쟁터였다. 100일 째 되던 날에는 또 오셔서 손등을 잡고 제가 살았던 바로 이전 생을 보여주셨다. 아수라 세계였다. ‘너의 바로 전생이 아수라 세계였다.’하셨다. 자지 않고 먹지를 않고 쉬지 않는 세상, 오로지 전쟁 밖에 없는 세상이었다. 내가 상대방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에 내가 살기 위해 잔인하게 남을 죽이는 인생을 살고 있었다. 수도 없이 적들이 있었다. 어느 순간 팔을 스치니 피가 나는데 그렇게 만든 사람을 10토막을 내어 잔인하게 죽일 정도로 살았던 전생이더라.”

 

 

 

 

 

 

그렇게 전생을 알고 나자 크나큰 변화가 찾아온 것은 당연지사였다. “전생을 알고 나니 눈물이 났다. 얼마나 어리석고 나밖에 모르고 살았던 삶인가 반성하게 되었다. 과거의 업으로 인해 현세에 힘들게 살게 된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러고 나서부터 마음 씀씀이가 완전 달라졌다. 나를 괴롭히던 사람도 미워하고 증오했던 마음도 사라졌다. 내 잘못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하고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증언을 듣다 보니 왜 그리 전생을 찾아야 하는지 보다 명확해졌다. 전생을 알게 되면 앞으로 미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다 주셨어요. 어떤 목적으로 일을 해야 하는지. 죽는 그 날까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확신이 생깁니다. 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선몽을 다 받았습니다.” 라 말씀하신 신도회장님의 말이 강력한 증거였다.

신도회장 역시 선몽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천도하다

신도회장님은 꿈 이야기를 또 하나 들려주셨다. “꿈속에서 얘기를 하던 분이 컨베이어벨트로 빨려 들어가서 보니 사람을 조각내는 기계였다. 가파른 수직 계단을 겨우 올라가 보니 벨트가 끝나 떨어지는 곳에 박스가 있는데 머리만 있었다. 나머지 몸은 조각이 나서 박스 밑에 있었다. 이후에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이 사람을 잡으러 오더라. 모두 원한이 맺힌 사람들이었다. 이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는데, 후에 다른 보살님께 이야기를 하고 사진을 보자 예전 중앙정보부에 계셨던 김아무개였다. 실제로 유럽 축산 농가에서 기계 속에 몸을 넣어 죽임을 당한 분이었다. 한 번도 본 적도 없고 알지도 못했던 사람의 꿈이었는데 참으로 신기한 일이었다.”

그 범상치 않은 꿈을 꾸고 신도회장은 법미 스님께 말씀드려 천도제를 지내드렸다고 한다. “위패를 모시고 한참을 기도했다. 법상사의 다른 신도들도 함께 모여 천도제를 지냈다. 또 선몽에 하늘을 보는데 기러기가 쫙 오는데 삼각형 대형이 몇 줄이 거대하게 있었다. 그것을 보자마자 김아무개 선생님이 축생으로 계신다는 것을 바로 알게 되었다. 그러자 빛이 오더니 새들 전체를 한 순간에 소멸시켰다. 구제를 한 것이다. 보자마자 ‘부처님 감사합니다’ 소리가 절로 나왔다. 처음에는 김아무개 영감님을 위한 천도제라 생각했는데 그 사람 때문에 억울한 죽음을 맞았던 사람들까지 다 천도되었구나 느껴졌다. 위패 드리는데 법당에 바람 한 점 불 곳 없는데 모신 위패가 파르르 떨렸다. 손을 내리고 떼었다가 눈을 감았다가 떴는데도 더 크게 흔들렸다. 그 때 김아무개 영감님이 답을 해 준 것을 알았다.”

그 천도제 지난 후로 법상사에는 어마어마한 일들이 생기고 있다. 법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 인터뷰도 성사되어 보다 많은 이들에게 법미 스님의 훌륭함을 알릴 수 있게 되었고, 정동영 전 대표도 직접 전화 와서 여기를 방문하기로 했다고 한다.

‘나는 석가여래니라’, ‘너는 내 자식이니라’ 부처님 말씀 듣고 깨우쳐

물론 법미 주지스님이 지금까지 이르기에 중간에 고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5년간 탁발을 하는 중에 소원은 기도처를 이루는 것이었기에 사찰을 짓고자 했지만 빚이 너무 불어나 버린 것. 방탕한 생활에 빠지기도 했다.

법미 주지스님은 “모든 것이 뜻대로 안되기에 어리석었음을 반성하며 개천에 누워 별을 보며 죽고 싶다고 애원한 적이 있었다. 12시까지 울다가 부처님 모신 곳에 가서 자는데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잠이 오지 않아 괴로워 뒹구는 중에 1층 기와집 높이에서 음성이 들렸는데 지금까지도 감동스럽다. 바로 ‘나는 석가여래니라’ 하는 음성이었다. 그 울림이 온 우주에 꽉 찼다. 나는 내 자신이 너무 못나고 형편없고 그런 사람이라 여겼는데 ‘니가 이 세상에 태어날 적에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고 너에게 알려 주었느니라’ 하신 것이다. 이어 ‘너는 내 자식이니라’ 하시는데 음성을 듣고는 마음을 바꿨다. 새벽에 일어나 이전까지의 방탕한 삶은 싹 다 정리하고 경주로 떠났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부처님의 음성은 모든 것이 사랑이다. 한 말씀만 누구든지 들으면 인간 세상은 끝이 난다.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 주신다.”고 증언하셨다.

 

청룡암에서 1년 8개월, 지금 법상사 터에 오기까지

그 뒤로 3년간 경주에서 정신없이 바쁘게 살던 중에 또 꿈에 스님 2분이 출현하셔서 ‘머리 깎고 조계종으로 들어가자’하고 명령하셨다. 그래서 당시 청룡암 절을 찾아 1년 8개월을 살았다고 한다. 하루 3시간만 자며 기도만 하는 시절이었다. 영험한 능력은 감출 수가 없는 법. 법미 주지스님의 말씀을 듣고자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웅전을 잘 지어서 부처님 모시고 도량 이뤄 기도처 만들고 싶다는 마음 있어 열심히 살았다. 하루에 32명과 대화 한 적도 있었다. 종일 바빴다. 22년 전이었는데 보시로 수억이 들어왔다. 그런데 주지스님이 모아놓으면 다 써 버리셨다. 청룡암은 날 주고 가신다 하셔서 절을 지으려 모았던 돈도 다 드렸지만 알고 보니 땅은 주지스님이 아들 명의로 되어 있었다. 생각해 보니 참 허망했다. 빈털터리 신세였다. 또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을 하는데 또 꿈속에서 부처님이 일러주셨다.”며 꿈 이야기를 또 들려주셨다.

“쾅쾅쾅 하면서 장엄하신 부처님이 산 정상에 솟으셨다. 꿈속에서 관세음보살 하고 합장하니 솟으신 부처님께서 고개를 우측으로 내려 보셨다. 그리고는 오른 팔로 여의주를 내리시는데 통통통 3번 뛰어 절벽으로 가려는데 애를 써서 공을 주웠다. 탁발 수행 다닐 적에 석불 부처님이 주신 책을 그 때 받지 않고 놓아두었던 탓에 이 고생을 했다는 생각이 들어 엎드려 공을 주운 것이다. 줍고 보니 두루마리로 펴지는데 적힌 글씨가 부처님 세계 글이었다.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읽고 고개를 돌렸는데 이 터가 보였다. 지금 법상사 터다. 그래서 드디어 여기 자리를 잡게 된 것이었다.”

기적은 이렇게 이뤄지는 것일까. 3년 전 강한 태풍 루사가 닥쳤을 때 법미 스님이 떠나온 청룡사암은 싹 다 쓸려 가버렸다고 한다. 거기 모시고 있던 부처님도 아랫마을까지 떠내려갔다. 하지만 법상사는 돌 하나 굴러오지 않았다고 한다. 인과응보가 있다면 바로 이런 일을 일컫는 것이 아닐까.

 

단지 차비만 들고 법상사 지금과 같이 부흥시키기까지의 기적

꿈속에서 부처님이 일러주신 대로 법상사 터를 찾아왔을 때 법미 주지스님이 지갑에 가진 돈은 단지 차비할 돈이 전부였다. 하지만 불사를 일으킬 자신은 있었다고 한다. 모든 것이 부처님이 알아서 해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가는 곳곳마다 보살님들이 주시니 순식간에 땅을 계약할 계약금이 모였다. 땅 주인은 200만원을 시주해 주었다. 이 동네에 ‘스님이 한 번 말하면 다 이뤄져 버린다’는 소문이 났고 사람들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산신각을 지을 때도 선몽이 있었다. “돌 바위 앞에 쪼그려 앉아 고민을 하는데 지금 산신각이 지어진 자리에 토굴이 하나 보였다. 입구에 남자 4분이 보이시는데 하시는 말씀이 ‘뭘 고민하고 있나. 헬리콥터 하나 불러서 옮겨. 돈은 우리가 줄게’ 하셨다. 그 꿈을 꾼 후로 금을 입힌 산신각부처를 모실 수 있었다. 원래 절 땅은 121평 밖에 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은 부처님과 산신님 원력으로 이뤄진 것이다. 주변 땅 주인 형제분이 찾아오셨는데 죄송하다고 진심으로 빌며 한 번만 지을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했더니 ‘안그래도 형제가 도량 모퉁이 돌아오면서 벌써 승낙하자고 마음을 먹었었다’고 하시더라. 땅을 그냥 쓰라고 하신 것이다. 산신각을 짓는데 건설회사 사장님도 시주하시고, 탱화도 금으로 입혔을 정도다. 이 때 불사를 이룰 수 있게 보시를 해 준 사람들은 모두 대박이 났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법상사에는 그 때부터 전국 팔도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현세, 과거, 미래를 모두 알고 법문 하니 어찌 사람들이 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법미 스님은 혼자 새벽기도도 하고 불공도 드리고 사람들을 대접하는 모든 일을 행했다. 하루에 3시간 정도만 잠을 청하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이에 7~8년 전부터 입구에 서서 이 곳은 기도 도량이고 부처님이 계시는 곳이라고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오지 않게 막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법미 스님은 “이 설악산 자체가 은혜로운 곳이다. 단 돈 50만원 차비만 들고 찾아온 저를 품어 오늘에 있기까지 도와준 것이 이 설악산이다. 물 님, 별님 등 모든 자연이 도우셔 제가 있다. 평생 영원히 이 은혜를 갚고자 한다. 그래서 대사찰을 이뤄놓고 선몽 받은 대로 관음봉 봉우리 정상에 세계에서 가장 큰 아미타 부처님을 모셔놓고 다음 생에 중국 간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법상사에서 백일기도하면 모든 것이 이뤄질 것

법미 스님은 “기도하면 모든 것이 다 알아지고 열릴 것이라며 한 푼도 없는 분도 여기 와서 기도하라는 목적으로 도량을 이룬 것이다. 누구든 공짜로 밥 먹고 기도만 하라. 어디서 왔는지 여기 뭐 하러 왔는지 다음에 어디 태어날지 알고 가자. 이것을 전하고 싶은 것이다.”라고 전하셨다.

앞으로 더 큰 기도터도 만들 예정이다. 여기에 와서 누구든지 100일만 찬 물에 목욕하고 기도한다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하셨다. 법미 스님은 “절실하면 이뤄질 수밖에 없다. 백일기도하면 무엇이든 이뤄진다. 인간으로 태어나도 용맹정진 하고자 마음먹는 사람은 정해져 있다. 아무나 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인연 따라 오는 것이다. 여기에 와서 기도 한다면 찬 물도 하나도 춥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속세에서 고통 받아 매일 죽을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몸에 찬 물을 끼얹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런 간절함이라면 이뤄진다. 소원성취 분명히 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라며 확답을 주셨다.

현재는 신도 회장님이 선몽을 받고 자비를 들여 만들어 놓은 방 두 칸이 있다. 앞으로 오실 분들을 위해 숙식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지금은 6~7명 정도만 수용 가능한 공간이지만 시작에 불과하다. 현재 문중과 협의해 땅 매수하려고 준비 중이다. 요사체 지어 얼마든지 앞으로 수용할 수 있을 예정이다.

 

꿈에서 아라한님을 만나고 호랑이를 만나 용맹정진하다

직접 법미 주지스님의 염불을 듣는다면 아마 누구나 깜짝 놀라고 말 것이다. 몸 속 깊숙한 곳 어디선가부터 울리는 음성인데 크고 울림이 엄청나다. 보통 인간이 그리 소리를 낸다면 아마 몇 십분 만에 지쳐 쓰러지지 않을지 걱정이 될 정도의 고성인데, 법미 스님은 벌써 7년째 이런 음성으로 매번 염불을 하고 계시다고 한다. 이 역시 꿈속에서 아라한님을 뵙고 호랑이의 울음을 들은 이후의 일이다. 당시 꿈 이야기를 청해봤다.

“해인사 문 앞에 서니 큰 문이 열리고 들어가니 입구에 건장하신 분이 봉투 석장을 건네주셨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그 봉투를 받아 들고 들어가니 성철 대선사님이 가부좌를 틀고 공중에 떠 계셨다. 마당에 들어서 보니 언덕이 하나 보이는데 두루마기와 바지 육각모까지 한 벌 차려 입은 분이 누각 중간에 계셨다. 보는 순간에 절을 하게 됐다. 절을 하고 고개를 드는데 그 분도 맞절을 하고 계셨다. 고개를 드니 영화에 자막이 뜨듯이 공중에 글자가 석자가 뜨는데 바로 ‘아라한’이라는 세 글자였다. 그 밑에 보살님 2 분이 계시는데 아라한님이 우릴 보더니 아기 울음으로 울고 계셨다. 중생이 불쌍해서였다. 우리 세 보살이 그것을 듣고 같이 울었다. 울다가 깼는데 그 날부터 음성이 바뀌었다.”

이렇게 아라한님을 친견하고는 나서는 음성이 달라져 버린 것이다. 그 날부터 새벽에 종성하면 천상의 음이 나왔다고 한다.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고, 연구한 적도 없이 홀로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이 때 받은 세 장의 봉투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는데 법미 스님께서는 “이것이 바로 탐진치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탐욕(貪欲)과 진에(瞋恚)와 우치(愚癡), 곧 탐내어 그칠 줄 모르는 욕심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 없고 남다른 수행을 했다는 것이다.”라고 해석해 주셨다.

“또 한 번은 계단 중간쯤에서 산신각이 보이는데 성철 대스님이 법문을 하시기에 요지부동하고 들었다. 그 법문을 마치고 나니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산천이 떠나가듯 우렁차게 우는 소리였다. 두 번을 울리시는데 설악산이 떠나갈 정도였다. 그 꿈 이후에 음성이 또 바뀌었다. 과거에는 작고 우는 듯 들렸던 음성이었다면 지금은 우렁차다. 쩌렁쩌렁 울리는 거성으로 바뀐 것이다. 아무리 소리쳐도 목이 쉬지를 않는다.”

그 날부터 법미 스님은 오는 사람들은 다 쫓고 법당에 서서 내려오지 않고 기도만 했다고 한다. ‘나는 기도하다가 죽겠다. 오직 기도만 하겠다. 생명을 부처님 전에 바치겠다.’는 마음을 갖고 꿈속의 그 산천이 떠나갈 정도였던 호랑이 울음처럼 기도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조용하던 스님이 용맹정진으로 돌변하여 고성염불을 하자 신도들은 더 많이 늘어나고 있다. 친견하고 한 마디라도 듣고 싶어 줄을 서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꿈꾸는 그대로 이루어지다.

역대 대통령을 모두 꿈속에서 만나고 예측하다

법미 주지스님의 선몽은 그야말로 예지몽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 천불, 불모대준제보살, 아라한을 모두 만나보았으니 하물며 인간 세상에서의 거물을 만나지 않았겠는가. 그 동안 역대 대통령도 모두 꿈속에서 만나 보신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 이 역시 참으로 기이할 정도로 신기하였다. 다만 현존하는 인물들이기에 다소 민감한 부분도 있어 지면에는 옮길 수 없음이 안타깝다. 직접 법상사를 찾아 법미 스님께 이야기를 청해 본다면 대한민국 정치의 어제와 오늘, 미래까지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자체로 부처님의 삶을 닮아 있는 법미 스님의 삶

혹자는 너무 꿈같다, 믿을 수 없다 할 수도 있으리라. 하지만 법미 스님이 들려주신 이야기는 너무나 세세하고 생생해 마치 직접 보고 들은 것처럼 전해졌다. 법미 스님의 꿈은 앞으로 있을 일을 다 알려주고 있었다. 그 영역이 정치, 경제, 세계 등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데 축지법처럼 댕겨서 다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법미 스님은 “많은 선몽들을 보여주는데 선몽대로 가지 않은 적이 없다. 하지만 꿈에 너무 집착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꿈에 매달리다 보면 현실에 소홀해 지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바르게 정도로 살면 꿈은 자동이다. 내가 정직하면 정직한 꿈을 꾸게 된다.”라 말씀하셨다.

법미 스님은 꿈속에서 부처님 손도 잡아 보았는데 엄지 부분의 손바닥이 도톰하며 바위, 쇠보다도 단단했다고 한다. 그 손을 잡으며 법미 스님께서 약속한 것은 ‘부처님 제가 좋은 일 많이 하고 오겠습니다’ 그것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믿을 수 없다고 흐릿하게 불교를 믿고 있는 분들에게 모범이 되고 부처님이 꼭 계신다는 것을 어떠한 과정을 통해서라도 알려드리고 싶다는 법미 스님의 바람이 이 기사를 통해 전해지리라 믿는다.

법미 스님의 지나온 삶의 궤적을 계속 듣다 보니 그 자체로 부처님의 삶을 많이 닮아 있다. 모든 중생을 가르치고 불사해서 힘없고 어려운 사람 구제하고는 중생이 한 분도 없는 그 날에 열차 마지막 문 닫고 끝내겠다는 원을 세우신 것이 지장보살이고 관세음보살이 아니었던가. 선몽을 통해 부처님을 뵙고 그 뜻을 알아차리고 중생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려 밤낮으로 기도하는 법미 스님이 바로 그 부처님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부처님께서도 법계 세계의 진리, 원리, 과거, 현재, 미래, 인과응보, 자업자득에 대한 것을 말씀으로 남기였었다. 제자들이 그 말씀을 듣고 기록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것처럼 법미 주지스님은 지금까지 말씀을 통해 이런 기적적 삶과 진리를 설파해 오셨었다. 그 말씀을 직접 듣고 이렇게 글로 남겨 전할 수 있게 되어 가히 영광이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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