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착비리는 한 지역에 오래 거주하며 정착하여 그 지역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토박이들과 연계하여 발생하게 되는 비리라고 볼 수 있고, 공직감사에서의 토착비리는 지방자체단체 내에서 지방공직자와 지역 업체, 토호세력 등 토착세력이 유착·결탁하여 이루어지는 부정비리를 말한다.

토착비리라는 용어는 김영삼 대통령 시절 때 언론에서 등장하기 시작 되었는데 당시 청와대민정수석을 단장으로 하는 특별사정반이 6대 지방토착비리에 대한 암행감찰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하면서 토착비리라는 말이 일반화되었다. 이 암행감찰보고서에서 6대 지방토착비리로 분류한 유형은 ①선거지원 등에 의한 고위권력층비호 관련 비리 ②검찰, 경찰, 세무서 및 지방관청과 유착된 지방유지 비리 ③지방의회직을 악용한 비리 ④사전 정보누설이나 사건은폐 축소 등 공무원의 고질적인 비리 ⑤지방언론 비리 ⑥지역주민 원성과 지탄을 야기한 대표적 비리 등이다. 이러한 토착비리의 문제점은 우선 경제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 손실을 끼치며 지역의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 그리고 정당한 경쟁 풍토를 약화시키는데 중소기업의 경우 연구나 기술개발보다는 지방자치단체에 뇌물을 주어 권력에 의존한 사업을 유지하려고 하게 된다. 즉, 정경유착과 관행을 뿌리내리게 하고 주민들의 의욕을 저하시켜 지역 사회 전체의 경쟁력과 사회결속을 저해한다. 뿐만 아니라 토착비리는 공적 서비스를 훼손시키고 지방정부에 대한 불신을 고조시킨다.

토착비리는 지방자치단체 내에서 지방공직자와 토착세력이 유착·결탁하여 이루어지는 비리행위이기 때문에 외부에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게 진행된다. 토착비리가 외부에 공개되는 것은 감사활동이나 경찰 및 검찰과 같은 사법기관의 공직비리에 대한 수사결과, 내부감사 등에 의해 적발되어 언론에 보도되거나 공개되는 감사 결과 등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경기북부 최북단의 연천군은 국민권익위원회가 총 609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9 공공기관 청렴도 측정에서 2등급에 선정, 5년 연속 우수기관(1~2등급 유지 기관)으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혈연, 지연과 학연으로 얽혀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전형적인 토착비리가 상존하고 있다. 토착비리에 관련된 신문기사와 공개된 감사 자료를 토대로 연천군 토착비리의 현황과 실태에 대해 알아보고 이와 같은 토착비리 근절을 위한 방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지난 2019년 연천군 공무원들과 지역 건설업체간의 관급공사 유착으로 간부공무원 1명, 브로커 1명이 구속됐다. 검찰이 브로커를 긴급체포하고 수사관 10여명을 보내 연천군 맑은물관리사업소, 건설과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날 지역 토착 건설업자와 공무원들의 자택과 차량 압수수색도 같이했다. 당시 검찰 수사로 연천군의 공직사회가 어수선하였으며 주민들로부터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2011년에도 연천군 공무원들과 지역 건설업체간의 관급공사 몰아주기 유착 의혹으로 공무원 수십여 명이 경기북부지방경찰청 수사과에 줄줄이 소환당해 조사를 받은 적도 있었다. 지역 건설업체들은 연천군 공무원들과 학교 선후배 등 끈끈한 인맥을 배경삼아 관급공사를 따내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던 것이다.

다음은 경기도에서 연천군 종합감사 결과 중 공개된 자료 가운데 일부 발췌한 내용들이다.

공증절차 없이 부당한 용역 발주로 예산낭비 초래, 공사 선금급 정산업무 부당처리 사례, 중앙정부 부처의 변경승인 없이 임의로 2차례로 걸쳐 사업계획을 변경하면서 국ㆍ도비 지원대상이 아닌 사업을 포함하여 추진하였고 설계변경 대상이 아닌데도 설계변경을 통하여 사실상 수의계약으로 부당하게 처리한 사례, 공공하수처리시설 설치공사 관급자재 검수도 부당하다며 지적 받았다. 공무원 근무성적평정도 부적정 하였는데 그 예로 동일한 평정대상 공무원군의 순위를 부당하게 변동시켰으며 가점부여 계획과 다르게 가점을 부여하고 자격증 소지가 의무화 되어 있는 직렬에 신규임용 전에 취득한 자격증에 대하여 부적정하게 가점 부여한 사례도 있었다.

또한, 심사대상 선택예방접종 백신을 구입하면서 계약심사를 받지 아니하였고 백신구입 단가계약 체결 시 견적가격 중 가장 낮은 가격을 적용하지 아니하고 평균가를 적용 하였으며, 통합발주 하여야 하는데도 4~5차례 분할하여 예산 낭비를 초래하였다. 지원대상이 아닌 축사 증축사업을 신·개축하는 것으로 신청하여 부당하게 사업대상자로 확정되도록 하였으며 사업시행단계에서 현지점검 등을 통하여 증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도 관리ㆍ감독을 소홀히 하여 위법한 행위에 대한 시정조치 없이 사업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용도폐지 관련 업무처리 부적정, 장기 미준공 불법건축물 관리 소홀, 화물운송사업자 유가보조금 환수조치 미이행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감사 지적을 받아 관계 공무원 징계요구, 훈계, 추징, 회수, 과징금 부과 등의 조치를 당했다.

토착비리의 발생원인으로 기업체의 뇌물과 청탁, 지방자치단체장의 금품 및 충성요구, 공무원의 부패와 금품요구, 지방의원 및 토착세력의 청탁 등 다양하다. 건축, 건설, 토목, 인사와 환경위생 업무에서 토착비리의 발생 빈도가 높고 계약, 인허가, 인사 청탁, 공사, 보조금 및 국공유재산이 주요 토착비리 발생분야이다. 이중 인허가권은 공직자들에게 대체로 일종의 독점적 권력으로 인식되어 그들이 인가 또는 허가를 거절하거나 단순히 방치함으로써 공권력을 뇌물수수에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또한,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 선거와 관련해 지출한 과도한 공천헌금과 막대한 선거비용을 다시금 회수하고자 하는 심리의 발동, 당선에 기여한 선거 공로자에 대한 대가제공 부담 등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토착비리를 막지 못하는 원인으로는 유착, 제도와 기능의 마비, 상급자 통제의 미비가 지적되고 있다.

토착비리의 근절방안으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공무원의 권한을 축소하기 위해서 재량권을 최소화시키고 감사나 규제 강화, 제도의 정착, 청렴도 교육 등의 윤리의식 고취, 이들의 권한을 감시하는 일 등이다. 이에는 규제기관이나 시민단체, 언론의 감시도 포함된다. 즉, 감사나 규제를 통해 처벌수준을 강화하여 공무원들과 토착세력들 간의 유착을 줄이고 윤리의식을 제고하는 것, 업무처리 공개시스템이나 심의, 평가결과를 공개하여 투명성을 높이는 것, 장기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의 건전성을 높여야 한다. 이중에서 지방자치단체의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방언론, 시민단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상호 감시, 견제를 원칙으로 한다.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권력이 양분되고 상호감시, 견제 체제가 살아있는 곳에 부패, 비리는 자리 잡기 힘 들 것이다. 연천군은 서로 가까워서는 안 될 직업의 사람들이 너무 가깝게 지내고 있다. 공직자와 군의원은 서로 거리를 유지해야 할 사람들이다. 언론인과 정치권, 시민단체도 서로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더구나 집행부를 감시, 견제해야 할 군의원들 조차 이들과 함께 놀아나게 되면 부정부패, 비리는 막을 길이 없어진다. 공익적 고발정신과 주민참여는 민주시민의 기본의무이다. 지방신문사 등 언론의 수가 많아도 지방단체장과 의원들이 지방언론의 감시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지방언론 역시 존재의 의미가 약해진다. 지역언론의 역할은 지방정부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다. 지방의 현안 문제에 대해서 헐뜯기, 겁주기 식 보도는 지역에 대한 비관적 인식만을 심어줄 뿐이다. 지방 현안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평가에 입각한 비판이 필요한 것이다. 건강한 비판을 통한 언론 본연의 기능이 잘 작동된다면 토착비리 근절에도 많은 영향을 줄 것이다. 대체로 토착비리는 행정조직 내부 공무원들의 유착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정기관이 이를 조사하고 처단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언론의 경우, 그 조직적 형태가 다르고 행정조직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자유롭게 그 비리와 부정을 폭로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이미 벌어진 부정부패에 대해 사건 보도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부정부패를 미연에 방지해야만 언론으로서의 역할과 그 소임을 다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에서 관료와 마피아를 합쳐놓은 관피아란 말이 있다. 그나마 중앙정부는 언론, 시민단체, 국회 등으로부터 견제와 감시를 받지만 지역 내에서는 단체장의 권한이 대통령을 능가하기에 지방정부 관피아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한다. 시민단체도 언론도 지방단체장의 눈 밖에 나면 보조금이나 신문 광고 등에서 불이익을 받기에 감히 현직 단체장에게 맞설 엄두를 못 내는 것 일 수도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지역에서조차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돈과 조직으로 거대한 벽을 치고 있는 토착세력과 맞서는 것이 힘에 부칠 때가 많은데, 앞으로 이 나라 전체를 바꾸려면 얼마나 더 고통스럽고 힘든 시간과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인가? 우리는 깨끗하지 못한 자치단체, 지역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지를 알아야 한다. 시민단체와 지역 언론의 날카로운 비판과 격려는 연천군의 토착비리 근절과 예산낭비를 줄이고 나아가서 연천군의 발전을 이끌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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