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본부/ndnnews】안홍필 취재국장= 연천군의 역사는 군의 젖줄인 임진강과 한탄강에 분포된 선사유적에서 확인되었듯 구석기시대부터 인류가 거주하였음이 오래 전에 증명되었다. 신석기.청동기 시대인들의 주거흔적 또한 두강을 중심으로 고루 분포하고 있어 한민족문화의 시원을 찾아볼 수 있는 중심지이기도 하다. 또, 한국전쟁 후 극도의 임상이 파괴되었으며, 휴전 후 지금까지 일부 민통선 지역은 일반인의 제한되는 특수한 여건을 가지고 있다.

연천군 신서면은 연천군의 10개의 읍면 중 하나로 원래 강원도 철원도호부(鐵原都護府)의 외서면(外西面) 지역으로 신탄리(新炭里), 웅기리(熊起里), 대광리(大光里), 신순리(新順里), 내산리(內山里) , 빈연리(賓延里), 고라동리(高羅洞里), 도랑리(道浪里), 중사리(中寺里), 공장동리(公將洞里), 성평리(城坪里), 속전리(粟田里) 등 12개동리를 관할하였으나, 조선 철종10년(1859) 외서면이 지금의 신서면으로 개칭되었고, 한국전 이후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 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거과거 철원군 인목면(寅目面)의 검사리(檢寺里), 승양리(承陽里), 갈현리(葛峴里), 덕산리(德山里), 도밀리(道密里),신현리(薪峴里) 등 6개리를 신서면에 편입하여 강원도 철원군에서 연천군에 편입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대광.도신.내산 3개리 지역에만 민간인이 입주하였고, 마전.답곡리는 영농인만 출입 나머지 인목면이었던 6개리는 군사분계선을 끼고 있는 완충지대와 북한지역에 속해 있다.

신서면을 구성하는 마을 명칭의 유례

- 대광리(大光里) 본래 철원도호부의 외서면지역으로 고려7대 목종(穆宗) 때 장님 이덕기와 앉은뱅이 박춘식이 심원사 대종불사 공덕에 의하여 대광리라 불렸다고 한다. 1914년 웅기리(熊起里)와 신탄리(新炭里)를 병합했다.(2개의 행정리, 20개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 도신리(道新里) 조선 철종 10년 외서면이 신서면으로 개칭되면서 신서면으로 편입,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도랑리(道浪里).신순리(新順里).빈연리(賓延里) 등 3개리를 병합하여 도랑리의 ‘道’자와 신순리의 ‘新’자를 따 도신리라 했다.(5개의 행정리, 44개 반, 10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 내산리(內山里) 험준한 보개산의 산안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산리라 했다.(1개의 행정리, 3개 반, 6개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 마전리(馬田里)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기존의 성평리(城坪里)와 속전리(粟田里)를 병합하여 성평리에 속해 있던 갈마동(渴馬洞)의 ‘馬’자와 조밭골(粟田里)의 ‘田’자를 따서 마전리라 했다.(영농인만 출입이 가능한 1개의 법정리 지역이다.)

- 답곡리(畓谷里)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라동리(高羅洞里), 중사리(中寺里), 공장동리(公將洞里)와 성평리(城坪里)의 일부를 병합하여 논골에서 이름을 따 답곡리라 했다.(휴전선과 인접한 민통선 지역이 되어 영농인만 출입이 가능한 1개의 법정리 지역이다.

신서면의 옛 명소

- 장승천 내산리, 절골에서 흐르는 개천과 도리들에서 내려오는 개천이 합류하는 곳.

- 절골 내산리, 심원사지를 비롯하여 남암, 성주암, 지장암지 등 유명한 명승지 현재 원심원사외 사찰은 거의 한국전을 거치며 소실되어 흔적만이 남아 있다. 한편, 심원사는 코로나19 관련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하여 주 출입문이 잠겨 있어 옛 사찰이나 불교의 성지를 둘러볼 수 없다는 것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았다.

- 폭포를 품다, 고대산폭포와 고개산 작은 폭포, 천광곡 폭포 등이 있다.

- 통일을 염원한 숲 조성, 3번국도를 타고 신서면 대광리를 지나 철원군 쪽으로 가는 길목에 통일을 염원하는 숲이 있다. 잣나무를 식재할 때 커다랗게 ‘통’자와 ‘일’자의 형태를 이루도록 했다. 백녹색의 짙은 빛깔을 띠는 잣나무의 수관이 모이고 모여 주위의 낙엽송림 또는 참나무림의 옅은 색깔과 대비를 이루며, 우리민족의 염원을 위해 식재되었다.

신서면의 대표관광지

- 역고드름 : 연천 역고드름은 “경원선 신탄리역에서 북쪽으로 약 3.5km 떨어진 고대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으며 1945년 일제 강점기 당시 용산-원산 간 철로로 높이 4m, 길이 100여m, 폭 10m 철로를 건설하던 중 일본이 패망하면서 방치된 폐 터널”로 “6.25전쟁 당시 북한군의 탄약고로 사용되었으며 양민학살 현장으로 알려지는 등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상부에 균열이 생겨 겨울철에 터널 안으로 물이 떨어지고 터널내부의 독특한 자연현상이 만들어 놓은 수백 개의 다양한 형태의 역고드름이 자란다는 사실을 2005년 마을 주민들의 제보로 알려지게 되었다.

매년 12월 중순부터 자라기 시작해 이듬해 3월까지 땅에서 솟아오르는 종유석 모양의 역고드름과 천장에 매달린 고드름 1천여 개가 독특한 경관을 자아내고 있어 연천군 관광자원화에 이바지하며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 중의 하나이다.

겨울철 처마 끝에서 아래로 자라는 모습을 쉽게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역고드름은 아래에서부터 위쪽으로 자라기 때문에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아 왔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역고드름은 두 가지 원인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것이 최근 연구결과로 밝혀졌다.

- 열쇠전망대 : 육군 열쇠부대가 북녘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지역에 안보교육 및 망향의 한을 달래주기 위해 1998년 4월 11일 건립했다. 내부 전시실에는 북한의 생활용품과 군사장비가 전시되어 있다.

- 고대산 : 현재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산행지로 수려한 멋을 자랑하는 연천군의 대표 명산이다. 해발 832.1m의 정상에서는 철원평화와 북녘땅을 볼 수 있으며, 현재 개설된 3개의 등산로는 각각 독특한 형태로 산행의 묘미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또한, 새해 첫날 맞는 고대봉 정상에서 보는 일출은 또 다른 장관을 안겨준다.

- 고대산 자연휴양림 : 2017년 개장 3번국도 및 경원선 신탄리역이 근접하고 있어 접근성이 좋으며 접경지역 특유의 맑고 고요한 자연환경을 그대로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주요 시설물로는 숲속의집 13동, 산림휴양관 1동 6실, 숲속수련원 1동, 야영장 20개소, 공중화장실 및 취사장 1동을 갖추고 있다.

- 캠핑장 및 야구장 : 고대산 자락에 자리한 복합 휴양관광단지로 관광과 레포츠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다. 국내 최고의 글램핑, 캐라반 콘도시설을 갖추고 있고, 야구장 5면을 이용할 수 있어 가족단위 관광객을 겨냥한 수도권 북부지역의 대표적인 휴양과 안보관광중심지로 운영되고 있다.

- 연천의 자연체험 탐방길 12코스 통일이음길(28.4km)

평화누리길 12코스(통일이음길)는 신서면 역고드름을 출발하여 증면을 거쳐 군남면의 군남홍수조절지까지 이어지는 길이며, 봄에는 농번기를 맞은 농촌의 정취와 여름에는 푸르른 임도의 오솔길이 5km 이상 펼쳐져 있고, 가을에는 물감으로 칠해 놓은 듯 각양각색으로 물든 단풍의 향기와 추수의 계절답게 황금의 곡식이 들녘마다 무르익어 보는이로 하여금 마음의 풍요로움을 안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겨울에는 주변 산 나무들 사이에서 피어있는 눈꽃을 감상하며 걸을 수 있는 코스로 4계절 어느 날에 찾아와도 좋은 추억을 간직할 수 있다.

- 코스로는 역고드름을 출발 신탄리역(철마는 달리고 싶다), 도신리방아다리, 신망리,역, 청화산 로하스파크, 군남홍수조절지를 잇는 트레킹코스이다.

역사와 문화

연천지역은 인근 지역과는 달리 비교적 많은 수의 도요지가 존재하고 있다. 그이유로 일반적 도요지가 생산 및 공급에 유리한 조건을 따라 본포 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기 생산의 기본요건인 땔감과 물, 흙이 풍부하며, 주변에 임산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또 연천군의 도요지 발굴은 문화유산의 발굴과 연결고리가 형성되기에 그간 발견된 도요지뿐만이 아니라 임산자원이 고갈될 시 더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기조의 도요지를 중심으로 계곡을 따라 발굴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단편적으로 군사적인 요인에 따라 불과 몇 년 전에 조사된 유적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괴된 경우처럼 말이다. 연천군의 도요지는 대한민국의 도자문화의 역사적 중요성을 갖기 때문이다.

- 도신리분청사기도요(신서면 도신5리 구수동), 도신3리백자요지(신서면 도신 3리 독개미골), 도신3리백자요지2(도신3리 사기막골) 등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내포하고 있으나 현재 군부대의 진지화에 의해 거의 모든 곳이 출입이 불가하거나 이미 파손됐을 가능성이 높아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 성령산성 : 510m 높이의 산성은 정상부에 약 20m 높이의 천연절벽이 삼면에 줄을 지어 연결되고 있어 방어성으로서의 지리적 천혜의 조건이 잘 갖추어진 철옹성의 인상을 주고 있다. 성 전체 평면구조는 가오리형과 흡사하며 북쪽이 높고 남서쪽이 완만히 낮아지는 형태이다. 북쪽은 험준하고 남쪽으로는 추가령 구조곡을 지나는 경원선과 3번국도, 은대리.전곡리에 펼쳐져 있는 가사평(袈裟坪)이 한눈에 들어오는 것으로 보아 북상하는 세력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정학적인면과 일부 양호한 구간의 면석 축조기법으로 볼 때 궁예가 철원에 도읍했던 후삼국시대까지 소급될 것으로 추정, 수습유물로 보아 고려 말에 와서 몽고, 거란, 홍건적, 왜구 등의 빈번한 침입 때에는 대피 성으로도 이용된 것으로 보이며, 병자호란 때는 연천현감인 이창조와 읍인들이 단결하여 청나라 군사들을 대파했던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한국전쟁 유적

- 경원선 철도중단점 푯말(신서면 대광2리), 남북분단 전까지 경원선은 용산을 기점으로 원산에 이르는 철도이다. 그러나 분단이후 철도는 더 이상 북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중단되어 이를 알리기 위해 푯말이 세워졌다. 휴전선에서 약 9.5km 떨어진 남한 최북단 구 신탄리역 내에 서 있는 높이 3m의 철제판으로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글이 새겨져 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소실된 신탄리역 역사는 1961년 11월 현재의 역사로 다시 건립되었으나, 경원선은 아직도 ”불구의 철“로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 장승천 전투기념비(터키), 장승천 전투는 1951년 4월 22일부터 23일까지 현재 5사단 작전지역에서 미25사단에 배치된 터키군이 수행해 성공적인 작전으로 동막골을 흐르는 장승천을 인용해 명명됐으며, 터키군 425고지 방어중대는 사방에서 공격하는 중공군의 포위망을 각개행동으로 돌파하였으며, 다라미고개 정상에 배치된 경계소대는 전멸하는 순간까지 치열한 전투로 결정적인 임무를 완수함으로써 후방의 미군과 프랑스 및 필리핀군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 차후 반격작전이 가능하도록 기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66명이 전사하고 105명이 실종되었으며 35명이 부상을 당했다. 미25사단이 추계한 총 전과는 중공군 약 1,000여명을 사살하고 2,000여명에게 피해를 입힌 격전지 중 한곳이다.

신서면의 의병항쟁 격전지

대광리 소목계, 전언에 의하면 의병장이 소를 잡아 놓고 군장을 모집하는데 일본군이 정보를 입수하여 의병진을 포위 기습공격하여 상당한 의병들이 전사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대광리에서는 1907년 9월 27일 보개산에 주둔한 의병진 250명이 김화수비대와 재경 보병 50연대 6중대 1소대의 연합토벌대와 치열한 전투를 벌였으며, 또 1908년 2월 23일 도신2리 정갑진 중위 추모비 근방에서 삭령수비대에서 보낸 하사 척후와 교전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편, 대광리 산 88번지 오묘소, 대광리 1157번지 사묘소, 대광리 천광곡, 대광리 고대산, 내산리 신틀거리, 내산리 심원사, 답곡리 천안터 등 의병활동지가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항일 의병운동은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고 낡은 봉건체제를 극복하려던 반일.반봉건 민족운동으로 시기와 성격에 따라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1895년 민비시해사건과 단발령을 계기로 1896년 10월까지 전개된 의병운동을 ‘전기 의병운동’, 을사조약을 체결한 1905년 4월부터 정미조약으로 조선군대가 강제 해산당한 1907년 7월까지를 ‘중기 의병운동’, 1907년 8월부터 일제에 의한 의병대토벌이 자행된 1909년 10월까지를 ‘후기 의병운동’, 1910년 한일합방 전후로 국내 의병운동이 소멸하고 해외독립운동으로 전환하던 시기를 ‘퇴조.전환기 의병운동’이라고 한다. ‘연천지역의 항일 의병운동이 전개된 시기로는 후기 의병운동’으로 동쪽으로는 “보개산 등 높고 험준한 산악지대”가 펼쳐지고, 서쪽으로는 “황해도 금천군으로부터 남쪽으로 임진강”이 흐르며, ‘중앙부를 관통하는 3번국도’와 “경원선 철도 신설에 따라 군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는 연천지역으로 의병활동이 활발히 전개된 곳”이다.

신서면 중장기 발전계획

스마트 축산 ICT시범단지 조성사업

총 15.3ha(축사 26동 44,999㎡, 분뇨 4,903㎡, 방역시설 및 창고 2,927㎡, 관제.교육 및 숙소 1,297㎡, 악취저감시설 3,448, 기타 96,150㎡) 추진 중

- 신서면 도신리 대광리역 일원의 상권 쇄락으로 인한 지역주민의 상실감을 극복할 수 있고 관광 및 군부대 자원을 활용한 지역활성화 방안을 마련하고자 2020년 준공을 목표로 “신서 도심권역 지역활성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 내용으로는 대광리역 광장 주차공간을 재정비하여 차량 및 보행공간이 자유롭도록 구조를 개선하고 대광리역앞 상가거리의 오래되고 낡은 간판과 담장들을 재정비하고, 밤에도 안심하고 걸을수 있는 LED 조명 벽을 설치하는 등 위 사업으로 침체된 신서면 경제가 활성화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 연천군은 한국전쟁 당시 나라의 아픔을 오로지 몸으로 겪어온 지역으로 충(忠)에 대한 인식이 다른 지역보다 강한 지역이나, 한국전쟁 이후 접경지역으로 군사시설보호법, 수도권정비계획법 등 중첩규제로 인해 고통을 받아온 지역이다.

이런 연천군 신서면에 국가유공자의 마지막 예우 및 공훈을 강화하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양시킬수 있는 현충원이 들어선다. 연천군은 한반도의 평화시대를 준비하는 국제적인 평화지대로의 위상을 지닌 지역이며, 수도권에서 가까워 지리적으로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다.

현충원은 국가보훈처에서 2019년부터 2025년까지 시행하는 사업으로 연천군 신서면 대광리 500번지 외 61필지 939,200㎡(284천평)에 5만기 규모의 봉안시설과 부대시설을 갖출 계획이다.

현충원이 완공되면 도로망 확충, 버스노선 신설 및 방문객 증가로 침체된 신서면의 상권 활성화와 농가소득이 증대될 것으로 전망되며, 지역의 랜드마크로 지역민의 자부심 및 지역 인지도가 상승할 것으로 보여진다.

황영섭 신서면장은 “2020 연천방문의 해”를 맞아 우리지역에 숨은 명소를 발굴 계승하여 후손들에게 온전히 물려주는 것은 큰 자산이다. 우리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바로 알리기를 통해 연천군이 관광의 도시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신서면만이 간직한 역사문화를 잘 발굴하고 보존하기 위해 주민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경기도 최북단에 위치한 “경원선 주요 역이었던 대광리역과 신탄리역은 연천군이 그러하듯 옛 명성”은 사라지고 있으며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에 신서면은 지역적인 “특색을 최대한 살려 대광리역 주변 도심권역 종합발전계획 수립 추진”과 함께 “제3국립현충원 건립을 조속히 실시”하는 등 새로운 희망! 신서면민과 함께 만들어 가는 신서면의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충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신서면은 연천군의 여느 읍면과 같이 역사와 문화가 활발했던 지역으로 예로부터 ‘수많은 전쟁의 중심지로써의 역할을 수행하며 다양한 역사적 유산이 상당히 많았으나 지역발전의 이면에 가려진채 보존하고 계승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6.25 전쟁을 거쳐 이북 땅이었던 고장이 수복과 함께 대한민국의 땅으로 편입되었으나 “38선아래 첫 도시로 군사관련 시설들이 들어서면서 역사적인 유적들이 훼손되었거나 소실되어 사라진 문화유산의 흔적이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그럼에도 DMZ(비무장지대)란 특수로 인하여 조성된 자연경관과 동식물의 보고로 알려져 있듯 지금부터라도 ‘군사시설과 비무장지대 내 도처에 흩어져 있는 문화적 가치와 역사성 깊은 근대문화 유산을 발굴 보존한다면 신서면이 관광의 고장으로 향하는 무한한 잠재력은 간직한 지역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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