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사법제도 대해 고민하게 될 영화

 요즘 언론을 통해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정치적으로 복잡하고 대립이 심할 때면 나오는 말이지만, 사실 보통은 ‘민주주의’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는 그리 고민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한 민주주의가 어떻게 유지되고 완성되는가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보통은 그저 ‘다수결’의 원칙, 즉,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따라 이루어지는 민주주의의 구체적 완성이라 보는 편이지요. 물론 맞는 말이지만, ‘소수의 의견’은 어떻게 수용 할 것인가? 또는 ‘소수의 의견’이 더 합리적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또한 필요 한 것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영화는 이런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원제 ‘12 Angry Men’)>입니다.

 정적이 감도는 긴장감 속에서 끝난 재판. 6회에 걸쳐 진행 된 ‘소년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혐의’의 재판이 끝난 후, 12명의 배심원들 대다수는 유죄를 확신하는 분위기입니다. 게다가 찌는 더위에 좁은 배심원실의 선풍기까지 고장이라 배심원들은 최종결정을 빨리 끝내자고 합니다. 야구도 보러가야 하고, 또 어디를 가야하고 하면서 말이지요.

 이 재판에서 배심원들의 결정에 따라 유죄인 경우 그 소년은 사형을 당하게 되고, 무죄인 경우는 당연히 풀려나게 됩니다. 배심원들의 평결은 ‘만장일치’입니다. 그들은 최종회의를 하기에 앞서 자신의 결정에 관해 투표를 하게 됩니다. 당연히 만장일치가 될 것으로 믿었던 대다수의 배심원들은 단 한 명의 배심원이 무죄를 주장함으로 해서 토론과 회의를 통해 만장일치의 유죄 또는 무죄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헨리 폰다(배심원 8역, 이 영화에 나오는 배심원들은 각자의 이름이 아닌 1,2,3 등 숫자로 불린다)는 사건의 정황을 미루어 볼 때 이 사건은 소년의 범죄라고 하기엔 의심이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나머지 배심원들과의 설전은 계속되고, 그와의 대립이 점차 거칠어지자 배심원들은 일단 그의 주장을 들어보기로 하고,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기 시작합니다. 시신에 있는 상처와 소년의 키를 비교하고 사건을 목격한 증인들의 증언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지 되짚어 보는 등 상황을 재현하면서 설득력 있고 논리적인 그의 주장이 계속되면서 배심원 한명 한명이 헨리 폰다의 주장에 동의를 하게 됩니다.

 1957년에 만들어 진 시드니 루멧 감독의 ‘12명의 성난 사람들’은 무덥고 선풍기마저 고장난 좁은 배심원실에서의 한 소년의 유무죄에 대한 격렬한 토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 토론 과정에서 관객들은 배심원 대다수가 유죄라고 하였으나 토론이 이어짐에 따라 무죄로 돌아서는 배심원들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영화가 끝날 때에는 배심원 만장일치의 무죄판결이 내려지게 됩니다.

 우리가 보통 다수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올바른 태도로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시 되어왔다면, 이 작품은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사회적 합의에 대해 질문을 던집니다. 즉, 99%가 틀린 결정을 할 수가 있고 1%가 맞는 결정을 할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이 영화에서 언급되는 ‘만장일치’라는 것이 어쩌면 대안의 하나가 될 수도 있지만, ‘만장일치’라는 강한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주장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는 또 어찌 할 것인가 라는 부분도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 민주주의적 결정방식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관객에게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영화 후반부, 주인공의 강력한 논리적 설득력에 어쩔 수 없이 무죄를 선언하는 듯한 마지막 배심원의 모습 후 주인공이 법정을 나서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필자가 보기에 주인공은 소년이 무죄가 확실하기 때문에 다른 배심원들을 설득한 것이 아니라, 유죄라고 하기엔 사건의 정황상 ‘합리적 의심’이 많이 들었을 뿐입니다(당연한 것이지만, 소년은 살인을 했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주인공이 가진 ‘합리적 의심’에 대한 논리의 타당성을 갖춘 주장을 다른 배심원들은 정당하게 받아들인 것입니다.(마지막 배심원은 아닌 듯 보이지만).

 이런 ‘합리적 의심’이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즉, 다른 생각이나 견해에 대해 침묵을 강요하거나 인터넷의 익명성 등에 기대거나 아니면 집단 또는 여론 등을 이용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라고 하긴 어려운 것이지요.

 이 영화는 최근 국내에도 도입되고 있는 국민참여재판(배심원제)제도 등 사법제도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결과를 이끌어 내는 방식은 ‘만장일치’일 수도 있고, 다수결일수도 있고, 배심원 평결은 의견수렴의 방법일 뿐 최종선고는 판사가 하는 방식 등 여러 측면에서 말입니다.

 1957년이라는 오래전 만들어진 흑백영화이며, 영화의 대부분이 좁은 배심원실에서 연출되어 진 이 작품은 뛰어난 각본과 배우들의 열연에 의해 그 어떤 블록버스터 영화 보다 긴장감과 극적 재미, 엄청난 몰입도를 보여 준 영화입니다.

 그것에 더해 민주주의와 사법제도라는 현 사회의 근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며, 12명의 배심원들이 토론과정에 보여주는 스페인계 소년에 대한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한 선입견(한 배심원이 말하기를 “빈민가에서 자란 애들은 잠재적인 사회악이오”라고), 다수 배심원들의 집단본성 등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들여다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언제나 편견이 진실을 가립니다.” - 주인공 배심원 8(헨리 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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