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지식정보산업진흥원 정책기획팀장/도시계획학박사 조준혁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저성장과 인구감소 등 사회경제적 여건 변화는 과거 방식의 도시개발에 한계를 드러냈다. 더 이상 과거의 것을 모두 지우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파는 방식의 도시개발은 통하기 어려워 졌다. ‘뉴타운’으로 상징되던 성장시대 도시개발 성공방정식은 더는 답이 없다. 추가적 신도시 개발은 미룬다 하더라도 낡고 사용하기 불편해진 오래된 도시는 어찌해야 할까? 나는 길의 재발견에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도시 재개발은 개인들이 소유한 공간과 공공이 소유한 공간을 모두 허물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다시 나누어 갖는 방식이었다. 자연히 구도시를 다시 살려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첫 발을 딛는 것도 힘겨운 곳이 허다했다. 그런데 길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지만, 소유하고 있지는 않아 길이 지닌 가치보다 적게 활용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그것에 가능성이 있다. 길은 공공이 주도해 환경을 개선할 수도 있고, 뜻 맞는 동네 사람들끼리 주도적으로 개선을 추진하고 공공이 지원할 수도 있다. 길의 재발견에 오래된 도시를 되살리기 위한 길이 있다. 끊어진 길을 잇고, 활용되지 않던 길을 다시 활용하고, 지나치게 자동차에게 내어주었던 길을 사람들에게 돌려줘 보자.

끊어진 길을 잇는 것은 오래된 도시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규모 호수공원을 만들어 주는 것과 동일한 효과를 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양시 덕양구는 일산지역에 비해 이렇다 할 대규모 공원이 없다. 그러나 공릉천과 도로로 잘려진 작은 산과 언덕을 잇는다면 호수공원 부럽지 않은 공원을 만들어 시민들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인구가 밀집한 원당과 삼송지구의 사람들이 자전거와 도보로 공릉천에 쉽게 가기 위해서는 잊혀진 작은 농로와 골목길을 세심하게 연결할 수 있다. 길을 따라 보리를 심거나 야생화가 자라도록 공간을 배려해 적은 돈을 들여 할 수 있다. 또한 성사체육공원처럼 커다란 길로 잘려나간 곳은 작은 다리와 경사길을 만들어 서오릉 쪽과 연결하면 고양누리길을 한층 풍성하고 이용객이 많이 찾는 곳으로 만들 수 있다. 이 역시도 많은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세심한 관심과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 가능하다.

활용되지 않던 길을 다시 활용하면 빽빽한 주거지에 작은 공원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작은 공원은 평소에는 동네 사람들에게 작은 여유를 제공하고 갑작스럽게 비가 쏟아지면 빗물을 잠시 가두었다가 흘려보내는 물 저장소 역할을 할 수도 있다. 이때 그린인프라를 활용하면 자동차가 오가는 것과 푸른 길을 공존시킬 수 있는 세심한 기술적 방안을 찾을 수 있다. 의지가 있으면 해결방법은 있다. 자동차 주차문제는 동네 사람들의 협조와 합의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 공공이 적극적으로 나서 주선자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동네에 어디가 합리적으로 이용 가능한 길인지, 여러 사람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주차장이 있을지, 조금 걸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자동차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과 이웃, 어르신들에게 길을 내어줄 수 있을지 이야기하고 의견을 모아야 한다.

지나치게 자동차에게 내주었던 길을 사람들에게 돌려주면, 사람들은 걷고, 자전거 타고, 모이고, 지역의 작은 가게는 되살아 날 수 있다. 그럼 교통문제는 어쩌란 말이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럼 한 1년 실제 실험을 해보자. 기대처럼 되지 않으면 다시 돌려놓을 수 있지 않은가. 뉴욕시 교통과는 하루 방문객이 30만 명이 넘는 타임스퀘어에 비슷한 실험을 했다. 일부 도로를 막고 페인트 등 임시 재료를 활용해 디자인하고 이동식 간이 의자와 테이블을 가져다 두어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만약 실험이 실패하면 페인트를 지우고, 이동식 의자와 테이블을 치우려는 요량이었다. 이 파격적 시도는 매우 성공적이었고, 사람들은 더 편안해지고, 인근의 가게들의 매상은 올라 임대료가 상승했다고 한다.

현재 영구적으로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광장을 바꾸기 위한 디자인이 마련되고 있다고 한다. 비슷한 시도를 지하차도 건설 이후 기존 도로에서 해볼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지하차도가 건설된 도로는 과거에 매우 넓은 도로가 있던 곳이다. 지하차도 건설로 차량통행이 급속히 줄어든 곳이 많을 것이므로 이를 활용하면 뉴욕시와 비슷한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바야흐로 도시를 활용하는데도 ‘아나바다’가 절실하다. 공간도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는 지혜가 필요하다. 우리 주변의 길을 ‘아나바다’해 길의 가능성을 들여다보면, 거기에 오랜 도시의 불편함을 고쳐나갈 수 있는 지혜가 있고 도시는 다시 활력을 되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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