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 풀린 일본계 은행의 자금이 3조원 감소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일본의 경제보복이 무역뿐 아니라 금융 쪽으로도 행해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도출되고 있다.

 

특히 일본의 보복 기조가 이어질 경우 국내 금융시장에서 자금 회수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와 이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착수했다.

 

7일 금융감독원 금융통계정보시스템과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미쓰비시파이낸셜그룹(MUFG)과 미쓰이스미토모(SMBC), 미즈호(MIZUHO), 야마구찌(Yamaguchi) 등 4개 일본계 은행의 국내 총여신은 18조2천995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9월말 기준 21조817억원에서 2조7천822억원 줄어든 수치다.

 

지난해 9월 기준으로 보면 일본계 은행의 국내 여신은 전체 외국계은행 국내 지점의 총여신 77조9천억원의 27.1%에 달한다. 중국계 은행(34.3%)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한국 금융시장에서 일본계 은행의 입지가 작지 않다는 의미다. 본국에서 저금리로 자금 조달이 가능한 일본계 은행이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금리를 제공하므로 기업 입장에서도 매력 있는 자금원이다.

 

일각에서는 일본계 은행의 직간접적인 여신 규모가 69조원에 달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런 자금은 국내 은행과 기업, 한국에서 활동하는 일본계 기업들이 활용하고 있다.

 

일본계 은행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미 한국시장에서 자금 회수를 시작했다.

 

시계열로 보면 지난해 9월 말 총여신 21조817억원에서 12월 말 19조5천196억원, 올해 3월 말 18조2천995억원으로 줄었다.

 

일본계 은행의 외화 예대율이 높았던 데다 전 세계적으로 위험자산 선호 현상이 줄어들면서 지난해말부터 대외 익스포저를 줄이기 시작한 것으로 금융권은 해석하고 있다.

 

최근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와 관련해 일본계 은행들이 즉각 행동에 나서는 상황은 아니나 기존에 이어져 왔던 전반적인 대외 익스포저 축소 동향과 맞물리면서 한국에서 회전시키는 일본계 자금의 규모나 속도를 줄일 소지가 다분하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기존 대출의 만기 연장을 거부하거나 신규 대출을 줄이는 등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일본계 은행이 당장 움직이지 않겠지만 일본의 수출규제는 한국의 금융시장에도 서서히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업계는 주식시장에 들어온 일본계 자금의 방향성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금감원은 5월 말 현재 일본계 자금이 보유한 상장주식 가치를 12조4천710억원으로 집계하고 있다. 이는 전체 외국계 자금의 2.3%로 미국과 영국 등에 이어 9위다.

 

주식시장에 들어온 자금은 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은 데다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가능성도 작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드물다.

 

일본계 자금이 상법상 의미 있는 의결권을 의미하는 기준선인 3% 선을 넘어선 기업도 일부 있으나 이를 악용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각 부처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여타 분야로 확산할 가능성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금융부문에서는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은행권 등이 이달 초부터 잇달아 실무회의를 열고 발생 가능한 시나리오를 점검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일본 현지에서 영업 중인 우리 기업들의 신용 위축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일본계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리거나 채권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국내 은행이나 기업의 유동성 상황 역시 예의주시하고 있다.

 

일본 금융권이 자금 세탁 등을 핑계로 송금 제한 등 행위에 나설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008년 금융위기 때와 달리 지금 우리 거시경제와 금융시장이 안정돼 있어 일본이 돈을 안 빌려줘도 얼마든지 다른 데서 돈을 빌릴 수 있다"고 말했으나 긴장을 늦추지 못하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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