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노력으로 모두가 만족스러운 운동을

정점이지만 기본이라는 뜻의 이름. 더킹 복싱클럽 김동현 관장

남양주 / 더킹 복싱클럽 김동현 관장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한 노력으로 모두가 만족스러운 운동을

정점이지만 기본이라는 뜻의 이름. 더킹 복싱클럽 김동현 관장

 

복싱은 서로 소통해가며 서로 성장시키는 운동

선수 출신의 힘든 과거, 선수를 키우지 않는 이유

남양주시 복싱협회의 부재와 앞으로의 계획

 

7~80년대 무엇보다 뜨겁게 한국을 달구었던 복싱의 붐. 하늘의 별같이 많은 복싱선수와 스타들이 두각을 나타냈고, 시합이 있는 날 밤이면 삼삼오오 약속이라도 한 듯 TV가 있던 집에 모이던 밤. 화려한 콤비네이션과 한방에 온 동네가 들썩였고, 다음 날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의 고사리손은 복싱선수처럼 쥐어져 차가운 아침 공기를 가르곤 했던 그때.

복싱을 사랑하거나 세월이 깃든 사람들은 누구나 알던 복싱의 시대와 비교하면, 사실 현재의 복싱은 다른 스포츠들처럼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여전히 복싱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스포츠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은 많다.

남양주시 더킹 복싱클럽의 김동현 관장은 비록 현재 복싱계의 전선에 나가 있는 선수만큼은 아니겠지만, 이곳에서 체육관을 운영하며 언젠가 또다시 다가올지도 모르는 복싱 붐을 대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1. 오르고 내려오길 반복했던 선수 생활

더킹 복싱 클럽의 김동현 관장은 학창시절 선수 생활을 해왔다고 말했다. 복싱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당시 학교에 있던 복싱부에 친구의 권유로 가입하게 된 것이 그 시작이라고 말했다.

당시 김동현 관장은 무척 살집이 있었던 편이었는데 사실 복싱이라는 스포츠에 매료되었다기보단 살을 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복싱에 취미를 단단히 붙이고 빠져들어, 중학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 복싱부가 있는 체육고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진학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진학한 후 대회에서 항상 예선탈락을 하는 등 부진을 겪었다고 한다. 다행히 체급을 올려보라는 조언에 체급을 올린 뒤 큰 대회에서 우승을 거머쥐었지만, 그때 손가락이 두 번째 시합에서 골절된 이후에도 계속 싸워 복합골절로 이어져 큰 수술을 해야 했다고 한다.

이후 재활과 관리를 통해 복귀할 수 있을 정도가 된 후 대학에서도 복싱선수 생활을 계속했지만, 어이없게도 첫 시합에서 팔이 골절되는 바람에 복싱을 못 하고 대학교 내내 코치 생활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게도 4학년 마지막에 어쩌다 대회를 나와 좋은 성적을 거두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동현 관장은 생각해보면 자신의 선수 생활은 전체 오르내림의 기복이 컸다며 웃었다. 만약 이후 계속해서 선수 생활을 했더라면 이러한 자신의 웃지 못할 기복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줄지도 몰랐지만, 그만큼 겪게 될 슬럼프가 두려워서 이렇게 지도자의 길로 돌아섰다고 말했다.

이 때문인지 김동현 관장은 자신이 가장 무서운 것은 슬럼프가 되었다고 전했다.

2. 선수가 아닌 더킹 복싱클럽의 관장으로서의 자신

현재 김동현 관장은 선수 생활 10년에 트레이너 생활 5~6년 정도의 경력을 가지고 있고, 근래부터는 신임이지만 경기도 복싱 심판이 되어 여전히 복싱에 관련된 인생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이 더킹 복싱클럽도 얼마 전까지 코치로서 있던 체육관을 자신이 직접 인수해 운영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9월에 리모델링과 더킹 복싱클럽으로 이름을 바꾸어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기존 관원분들이 계속 다녀주시고 새롭게 관원들도 모여들면서 현재는 약 100명 가까이 된다고 한다.

체육관을 인수해 리모델링하면서 사실 가장 고민했던 것은 체육관 명이었다고 김동현 관장은 말했다. 결국 고심 끝에 나온 것이 ‘더킹’이라는 이름이었는데, 이 이름이 군림한 왕이자 복싱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기본기이자 파고는 기술의 이름도 되기 때문에 바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정점이면서 동시에 기본인 그 중의적인 느낌이 특히 좋았다고 한다.

김동현 관장은 오랜 시간 선수 생활과 트레이너 생활을 하다 보니 관원들을 단체로 모아두고 앞에서 가르치는 것은 잘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복싱에서 선수와 코치의 관계라는 것이 단순히 가르치고 알려주는 것뿐 아니라, 눈과 생각을 서로 들여다보며 서로를 파악하고 함께 성장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타 체육관과 달리 김동현 관장은 가급적 1:1 혹은 정말 어쩔 수 없을 경우엔 비슷한 시간과 비슷한 조건을 가진 몇 분을 모아 소규모로 코치를 하고 지도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자신의 방식이 다행히도 괜찮게 받아들여졌는지 최근 관원분들이 다른 분을 데리고 함께 운동하러 오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3. 선수 출신이기 때문에 부릴 수 없는 선수 육성의 욕심

모든 선수가 힘들겠지만, 특히 복싱 선수들은 직접 타격을 당하고 혹독하게 싸워야 하므로 무척 힘들다고 김동현 관장은 말했다. 그 때문에 통상적으로 복싱 체육관에서는 유능한 이들을 선수로 키워 이름을 알리려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한다. 바로 그 고통을 알기 때문에 섣부르게 추천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정말 선수로써 활동하고 싶어 하는 이들은 지도해 주겠지만 자신이 주도적으로 선수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았었고 앞으로도 그리 권하고 싶진 않을 것 같다며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4. 남양주시 복싱협회의 부재와 미래를 위한 계획

현재 남양주시에는 복싱협회가 없다고 말했다. 물론 옛날에 몇 번인가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지만 당시엔 남양주시에 복싱 체육관이 많지 않아서 불발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동마다 두세 개의 복싱 체육관이 들어서면서, 동시에 다이어트 붐도 불어 관원 수도 많아지고 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남양주시 복싱팀이나 학생팀, 혹은 다양한 시연 행사 등 많은 것을 해보고 싶었지만, 협회가 없었기 때문에 하지 못한 일이 너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에 협회가 생기면 복싱 관련 사업을 진행해서 남양주시에 다시 7~80대 그때처럼 복싱 붐을 불어오게 할 수 있는 기반이 잡힐 것 같다고 김동현 관장은 기대에 찬 모습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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