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선 봉산탈춤보존회장

 

‘봉산탈춤’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17호인 김애선 봉산탈춤보존회장이다.

김애선 회장의 고향은 황해도 봉산군이다. 매년 음력 5월 단옷날 밤이면 마을 주민들은 모닥불을 피우고 동이 틀때까지 잔치를 베풀었다.

“마을사람들은 경암산 앞 사리원 마당에서 대낮부터 남자들은 씨름을, 여자들은 그네뛰기를 했어요. 그리고 날이 저물면 장작불을 밝히고 탈춤놀이로 새벽까지 흥을 이어갔어요. 한해의 농사가 풍년이 되기를 기원하면서요”

김 회장이 봉산탈춤을 추기 시작한것도 아버지 (故 김진욱)를 따라다니면서 보기 시작한 5살무렵부터라고 한다.

김애선 회장을 만나 우리나라 봉산탈춤에 대해 들어봤다.

▶봉산탈춤을 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지요.

아버지가 함경도 봉산출신으로 북에서도 줄곧 봉산탈춤 연희자로 활동하고 계셨는데 제 나이 5살 때 월남하셨습니다. 북한에 있을때에도 집 앞마당이 넓어 공연준비를 마당에서 했어요. 어린 저에게 봉산탈춤을 준비하시는 아버지와 동료분들이 너무나 멋지게 보였어요. 자연스럽게 봉산탈춤에 입문하게 된거죠.
남한에 오셔서도 봉산탈춤 연희 활동을 계속 하였구요. 당시 경성에서 을지로 6가에 있는 대림극장에서 황해도 출신 사람들을 모아서 봉산탈춤의 모든 과정을 가르치셨어요. 고작 다섯살짜리 아이가 아버지를 따라 전국 탈춤판을 돌아다니며 아버지와 동료분들의 춤을 보고 그러하신 아버님의 생애를 곁에서 지켜보며 자라나면서 봉산탈춤은 자연스럽게 저의 생활의 일부분이 된거죠.

▶봉산탈춤 하면 일반인들 특히 젊은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나라 봉산지방의 탈춤 정도로만 알고 있습니다. 봉산탈춤에 대한 정확한 소개 부탁 드립니다.

봉산탈춤은 오래 전부터 황해도 여러 고장에서 추어오던 탈춤의 하나로서 해서탈춤의 대표격이 되는 탈춤입니다.

봉산탈춤은 원래 봉산구읍 경수대에서 연희되었으나 1915년경 군청 기타 행정기관이 사리원으로 옮기고 경의선도 개통되어 그 후 사리원 경암산 아래서 놀아왔습니다.

봉산탈춤은 그 극본과 춤, 가면, 의상 및 반주음악에 있어 한국가면극의 해서형의 특징을 잘 지니고 있으며, 다른 가면극과 마찬가지로 춤이 주가 되고 이에 몸짓 동작 재담과 노래가 따르는 형식입니다.

그러나 춤사위는 역동적이고 활기가 넘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북한에서 이루어지는 춤은 남한보다 활기가 넘치고 기운찹니다. 북청사자놀음과 같이 봉산탈춤도 북한의 한 마을에서 유래됐습니다. 탈춤의 춤시위는 흐느적거리지 않고 장단과 잘 어울립니다. 춤꾼과 관중도 흥이 ‘얼쑤~’하고 나올 정도로 매력이 넘쳐납니다.

 

 

▶지금까지 봉산탈춤을 위해 한평생을 살아오시면서 가장 행복했을 때와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지요.

40~50년전만 하더라도 봉산탈춤을 추는 사람들은 광대 대접을 받아 수치심으로 밖으로 돌아다니지도 못했어요. 그러나 그 열정만큼은 그런 손가락질을 이겨낼 정도로 대단했어요. 당시에는 나라가 어려워 탈춤을 추는 사람들에 대한 지원책이 하나도 없었어요. 이러한 상황을 이겨낸 아버지가 자연스럽게 봉산탈춤의 대가가 됐어요.그러니 아버지는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어요. 지금의 저는 당시와 비교하면 호강하는 거죠. 아버지는 봉산탈춤의 원래동작과 과정을 올곧이 전수하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민에 고민을 하셨을까요.

지금 제가 봉산탈춤을 전수해줘야 하는 입장에서 세월이 흐를수록 아버지가 가르치고자 했던 그 정신과 동작하나 하나가 생각납니다. 그 정신을 전수해야 하는게 저의 사명입니다.

인생의 굴곡, 희로애락은 언제나 함께 있다고 봅니다.

누구든 말하죠. 무대에 서면 행복하다고, 그리곤 무대에 오르기 전 연습과정이 힘들었다고, 그러나 저는 조금 다릅니다.

행복한 점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고 불행한 점은 북에서 같이 월남한 봉산탈춤의 식구 중 제가 마지막 남은 한 사람 이라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나라는 전통공연이 설 자리가 많지가 않습니다. 회장님께서 생각하시는 우리 전통공연 살리기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21세기 문화의 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시대에 있어서 급변하는 문화시대에 발맞추어 자극적이고 테크닉적인 것, 즉 외적인 것을 지향하여 민족문화의 전승이 모호해진 이 때, 전통에 대한 관심과 수용으로 인한 한국 탈춤의 발전과 본질을 재 의식, 우리탈춤이 범세계적으로 힘차게 비상하도록 우리 자신의 확고한 전통의식이 필요한 때라 여깁니다.

▶회장님의 앞으로의 소망은 무엇인지요.

모쪼록 우리 봉산탈춤이 격변하는 문화의 혼동기를 잘 견디어 후세에도 영원 하길 바랍니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현대의 색을 봉산탈춤에 가미하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원형을 살려 연희해도 관중들은 좋아합니다. 여기서 한걸을 더 나아가 봉산탈춤을 배우려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면 좋겠고요.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길은 참으로 배고픈 길 입니다. 현실입니다. 보존의 가치가 실제 개인에게 오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기능은 몰라도 예능은 그렇습니다.

문화재청의 보다 나은 처우가 요구되는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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