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을 연구한 사람들에 의하면 그는 공식적으로 27번의 실패를 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 언론은 링컨을 ‘실패를 밥 먹듯이 하면서 도전하는 인물’로 평가했습니다.

선거에서는 공식적으로 6번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에 절망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꿈을 위해 도전했습니다.

그렇게 노력한 끝에 결국 대통령에 올라 노예해방이라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저는 실패할 때마다 실패에 담긴 뜻을 배웠고 그것을 디딤돌로 활용했습니다. 누구보다 실패를 많이 한 것이 제가 성공을 이룬 비결입니다.”

이 말로 링컨은 성공이야기를 대신했습니다.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 미국 최대 부자가 되었고, 53세에 세계 최대 갑부가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55세에 그는 불치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그가 최후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갈 때, 병원 로비에 실린 액자의 글을 보게 됩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전율이 생기고 눈물이 났습니다.

선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가운데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는 순간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입원비 문제로 다투는 소리였습니다.

병원 측은 병원비가 없어 입원이 안 된다고 하고, 환자 어머니는 입원시켜 달라고 울면서 사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곧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지불하고 누가 지불했는지 모르게 했습니다.

얼마 후 은밀히 도운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자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던 록펠러는 얼마나 기뻤던지 나중에는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 때 그는 나눔의 삶을 작정합니다.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 그의 병도 사라졌습니다.

그 뒤 그는 98세까지 살며 선한 일에 힘썼습니다.

나중에 그는 회고합니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어렸을 때 아주 우유부단한 아이였다고 합니다.

하루는 어린 레이건이 구두를 맞추기 위해 구둣방을 갔는데, 샘플 구두를 보고도 고르지 못했습니다.

두 가지 구두가 다 마음에 들었던 것입니다.

결국 레이건은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레이건은 다음 주에도 다시 구둣방을 찾았지만 역시 결정을 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를 포기하기가 너무 아쉬웠기 때문입니다.

어린 레이건을 지켜보던 구둣방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로널드, 하나를 고르기가 힘든가 보구나. 그렇다면 이러는 게 어떻겠니? 다음 주에 오렴. 내가 구두를 맞춰놓을 테니.”

레이건은 신나게 집으로 돌아갔고, 약속한 날 구둣방을 찾았습니다.

레이건을 반갑게 맞이한 주인은 창고에서 구두를 가지고 와서 레이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구두를 본 레이건은 마치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구두는 레이건이 선택하지 못했던 두 개의 구두가 하나씩 맞춰진 짝짝이 구두였던 것입니다.

주인은 레이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로널드, 결정할 때는 단호해야 한단다. 결정하지 않으면 결국 이렇게 되지.”

훗날 레이건은 짝짝이 구두의 일화를 언급하며 ‘그때 저는 내가 결정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내 결정을 대신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라고 술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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