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적 터치에 의한 마치 자연과 같이 목가적이면서 숭고한 음색

그랬다. 폴란드 출신의 라파우 블레하츠가 지난 10월 14일 토요일 저녁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쇼팽의 피아노 소나타 제2번을 빚어낼 때 관객은 최고의 피아니즘에 넋을 잃었다. 후반부의 연주자나 관객의 몰입도가 더 진하고 높았던 이날 리사이틀에서 블레하츠는 쇼팽 피아노소나타 제2번 III. Marche funebre: Lento에서 꿈속의 몽환을 걷듯 연주, 30대 초반의 나이임에도 불구 거장적 터치에 의한 목가적이면서 숭고한 음색이란 표현이 전혀 무색치 않았다. 

브람스의 간주곡(intermezzo) 작품 118의 2번을 연주할 때엔 최고의 피아니즘이 펼쳐지는데 관객의 또 한번의 감격으로 이어졌다.

 

2005년 제15회 쇼팽국제콩쿠르 우승과 동시에 특별상 4개 부분을 최초로 석권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라파우 블레하츠였지만 국내 관객들이 그의 피아노 리사이틀을 접하기는 마치 5년전에 내한공연을 가졌던 루마니아 출신 라두 루프처럼 베일에 싸여있었다. 12년의 기다림, 최고의 피아니즘을 마주할 순간의 기대감으로 콘서트홀은 관객의 열기 고조가 사뭇 느껴졌다.

첫곡 바흐의 네 개의 듀엣에서 블레하츠는 듀엣 바장조 BWV 803에서 간결하다는 느낌을 줬으나 명징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듀엣 사장조 BWV 804에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신인다운 모습도 보였으나 깔끔한 마무리가 돋보였다. 블레하츠가 마음과 직관에 귀기울여 올해 2월에 녹음한 앨범음반 이탈리안 콘체르토에서의 산뜻한 피아노 타건과 귀를 상쾌하게 하는 톤의 청아함이 아쉽게 느껴졌다.

베토벤 론도 사장조 Op. 51-2에선 첫곡 바흐보다 좀더 정제된 사운드를 들려줬고 음반과 달리 절묘한 기교와 터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시간이었다. 이어진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제3번 역시 블레하츠의 한번만의 피아노 리사이틀로는 포만감을 부족하게 느끼도록 만든 시간이었다.

블레하츠의 첫 내한 피아노 독주회는 한마디로 내용이 있는 것이었고 당초 받아본 프로그램들의 인상보다 굉장히 내용이 알찬 연주로 이어져 쇼팽 곡들로 채워진 2부는 관객의 흡인력과 감상태도가 전반보다 훨씬 좋았다. 야상곡 올림바단조 Op. 48-2의 물흐르듯 하는 연주의 돋보인 점이나 마지막 곡 연주 피아노 소나타 제2번에선 관객으로 하여금 최고의 피아니즘에 넋을 잃게 만들었다.

블레하츠의 독주회가 끝나기 무섭게 콘서트홀 로비를 가득 서너줄로 길게 채운 블레하츠의 사인을 받기 위해 늘어선 장사진이 이날 관객의 블레하츠의 피아니즘의 감격을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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