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 양여천 시인

 

내 속에 찌꺼기들
고여서 움직이지 못하던 것들

아파서 신음하고 바람에 사시나무 떨듯 나를 흔들던
봄철의 태풍, 몸살의 감기에 드러누웠다가
바람에 붕 떠서 휩쓸어가는 격랑에
다 날아가버리고 휘몰아쳐 날려버리고

폭풍은 그렇게 내 머리를 바람결에 씻어버린다
너 혼자만 그리 치열하게 살았느냐고
너 혼자만 몸살하며 아팠었냐고
아무것도 아닌 냥, 비바람에 우- 하고 몰고 가버린다

살아 숨쉬고 있는 내 육체속에
내 영혼이 손끝에 닿을 듯 아프게 투명하게
깨끗해진다, 근심도 고민도 아무것도 없다
한 점의 재도 남지 않는다, 깨끗하다

격정의 불꽃만이 나를 휘감을 때
나는 정결해지는 줄만 알았다
고통의 담금질에서만 깨끗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때론 바람이 나를 밀어내기도 하고
나를 멈추게도 하면서 이리저리 몰고간다
불꽃속에 견디고 남은 조각만이 내 산물은 아니었다
바람에 다 날아가버리면
견고한 뿌리만 남아 다시 일어선다
눈물속에 다시 돌아보면 거기에 아직 우뚝 솟아 있었다

모든 것은 버릴 필요도 가질 필요도 없다
버릴 때가 있으면 가질 때가 있는 것을
바람은 결국 태풍이 되어 내 곁을 돌아 운명을 타고 날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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