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이었습니다.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학교에서 나눠준 인쇄물을 보면서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요즘 우리 딸내미가 무슨 공부를 하나?’하고 궁금하던 차에 슬쩍 들여다봤습니다. 인쇄물은 공정무역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야, 요즘 중학생은 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는구나’하고 생각하며 내용을 읽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문단 앞의 소제목을 보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그 소제목에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착한 초콜릿’. 소제목에 쓰여 있는 다섯 글자를 보며, ‘이제는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이렇게 틀린 문법을 가르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착하다’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라고 풀이가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착하다’는 말은 반드시 사람에게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변해서 이제는 사물에게도 인격이 주어지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착한 가격’, ‘착한 기변(휴대폰 기기변경을 저렴하게 해준다고 해서 붙인 이름 같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착한 식당’이 등장했습니다. ‘착한 식당’은 종합편성 채널에서 방송되고 있는 ‘먹거리 X파일’이라는 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코너의 이름입니다. ‘착한 식당’이라는 표현은 확실하게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왜냐하면 식당이라는 비 인격체는 천지가 개벽해도 착할 수가 없기 때문에 논리적 생소함에 의해 듣는 사람에게 강한 자극을 주기 때문입니다. 제작자는 아마도 언어의 논리를 파괴해서 얻는 이익을 좇은 것 같습니다.

 방송에 소개되어 문전 성시를 이루는 ‘착한 식당’을 보면서 아류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착한 낙지’, ‘착한 돼지’, ‘착한 고기’집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도대체 낙지나 돼지가 얼마나 착하다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만약에 착하다고 한다면 그렇게 착한 것들을 난도질해서 구워 먹고 끓여 먹고 볶아 먹는 사람들은 뭐가 되는 걸까요?

 ‘아무렴 낙지가 착한 거겠어? 주인이 좋은 재료로 합리적인 가격에 음식을 파니까 ‘착한 낙지’라고 간판을 쓴 거겠지’라고 생각하면서 필자의 주장이 공연히 트집잡는 것이라고 일축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우리말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사회 시험 공부를 하면서 ‘착한 초콜릿’이라는 비문법적인 제목을 읽고 국어 시험 공부를 하면서 조사와 용언을 외우고 있는 딸아이를 보자니 필자의 머리 속은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람이 아닌 사물이나 동물에 인격을 부여하는 것도 모자라 아예 존칭까지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급레스토랑에서 농어스테이크를 시켰더니 “죄송합니다. 손님, 오늘 농어가 준비가 안 되셔서요.”라고 말을 하는 겁니다. 식당 직원의 그 한마디에 졸지에 필자는 농어만도 못한 사람이 돼버렸습니다만 그 직원은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손님, 오늘은 연어가 참 좋으세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필자는 연어 스테이크를 잘근잘근 씹어 삼키는 것으로 분풀이를 대신했습니다.

 우리말의 우수한 이유 중에 하나는 ‘존댓말’이 있기 때문인데 이 존댓말은 잘 쓰면 약이 되나 잘못 쓰면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학교 다닐 때 정상적인 국어 공부를 했다면 틀릴 이유가 없는데 왜 다들 제대로 쓰지 못하는지 궁금할 따름입니다. 사장님께서 총무팀 사무실에 오셔서 “박 부장 어디 갔나?”라고 김 대리에게 물어 봅니다. 그러면 열이면 일고여덟 정도는 “네, 박 부장님 거래처 가셔서 아직 안 들어오셨습니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소위 스펙 좋은 김 대리는 이렇게 해서 사장님 눈밖에 나게 됩니다. ‘박 부장님이 안 들어 오셨습니다’라고 말하게 되면 그 말을 듣는 사장님은 박부장 보다 아랫사람 대접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김대리는 몰랐던 겁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실수는 최근의 세태에서는 애교로 넘겨줄 만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지난 3월에 모 패션 잡지에 실린 글로 SBS 류란 기자가 외국어 남용 사례로 보도한 내용입니다.

 ‘이번 스프링 시즌의 릴랙스한 위크엔드, 블루 톤이 가미된 쉬크하고 큐트한 원피스는 로맨스를 꿈꾸는 당신의 머스트 해브. 어번 쉬크의 진수를 보여줄 모카 비알레티로 뽑은 아로마가 스트롱한 커피를 보덤폴라의 큐트한 잔에 따르고 홈메이드 베이크된 베이글에 까망베르 치즈 곁들인 샐몬과 후레쉬 프릇과 함께 딜리셔스한 브렉퍼스트를 즐겨보자.’

 한글로 쓰긴 했으나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모를 국적 불명의 문장입니다. 이렇게 글을 쓴 사람이나 이 글을 잡지에 그대로 올린 편집자나 모두 이런 식의 언어 생활이 일상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이런 부끄러운 글이 버젓이 잡지에 실린 거겠지요.

 지난해 서울시 초등학교의 국어교육 예산은 6억 원, 영어교육 예산은 982억 원이었다고 합니다. 무려 160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교육 현장에서 홀대받는 국어 교육 때문에 좋은 우리말이 왜곡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먹거리 X파일’의 먹거리 역시 표준말이 아니었으나 비교적 최근에 표준말로 어쩔 수 없이 인정하게 된 거였습니다. ‘먹을거리’가 원래 표준말인데 하도 여기저기서 ‘먹거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어서 이제 표준말처럼 고착화된 거라고 합니다. 지금처럼 ‘착한’을 남발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착한’이라는 단어가 국어사전에 ‘사람이든 짐승이든 사물이든 마음에 드는 경우에 접두사처럼 붙이는 말’로 풀이가 되어 등재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언어는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하지만 그 변화의 방향이 옳은 방향인지 파괴적이고 충동적인 방향인지는 조금만 신경을 쓰면 알 수 있습니다. 엊그제가 공휴일로 재지정되어 23년만에 휴일이 된 한글날이었습니다. 쉬는 날 집안 대청소하듯이 앞으로 해마다 한글날에는 지난 1년 동안 잘못 쓰고 있는 국민의 언어습관을 깨끗이 청소하는 날로 정해서 아름다운 우리말을 지키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저작권자 © 엔디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