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도 병이 드니 정자(亭子)라도 쉴 이 없다.

호화(豪華)로이 섰을 적엔 올 이 갈 이 다 쉬더니

잎 지고 가지 꺾인 후에는 새도 아니 앉는다.

 넘치는 시상(詩想)으로 수많은 작품을 쏟아내 조선 시가(詩歌) 흐름에 큰 줄기를 이룬 송강 정철(松江 鄭澈, 1536~1593)은 말년의 외로움을 이렇게 읊었습니다. 고집스러운 데다 정쟁(政爭)도 마다 않는 거친 성격으로 험한 세상을 살았던 그도 노후엔 사람이 그리웠던 모양입니다. 당쟁(黨爭)에 휩쓸리며 욕을 들었던 것과는 달리 청빈한 생활로 세상을 뜨기 직전에는 끼니를 걱정할 만큼 곤고(困苦)한 삶이었다니 더욱 외로움을 느꼈을 법합니다.

 흔히들 나이 들어 대접받으려면 입은 다물고 지갑을 열라고 말합니다. 지갑이 부실하면 하다못해 두 귀나 마음이라도 열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주위를 돌아보면 나이 들수록 마음이 누그러지기는커녕 더욱 고집스럽고 편협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내가 남 보기에 그러하니 남이 날 보기에도 그럴 것입니다.

 내내 잘 지내던 친구와도 어느 날 사소한 일로 언쟁을 벌이고는 마음이 상해 두 번 다시 안 본다 다짐합니다. 젊은 시절 다음 날 곧바로 술잔을 부딪치며 웃어넘기던 일도 나이 들어선 오히려 알량한 자존심을 내세워 고집을 부립니다. 그러니 남는 건 노여움과 서운함과 고독뿐입니다.

 젊은 시절 한때 스스로 빠져드는 고독은 인간적인 성숙에 필요한 과정일 수도 있습니다. 의미 없이 지내온 일상을 돌아보고 삶의 방향을 다시 생각해 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입니다. 나와 남과의 관계를 점검하고, 인간관계를 재설정하는 데도 좋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인생 황혼기에 맞닥뜨리는 고독은 위험한 존재입니다. 평생을 반추하고 성찰하는 기회도 되겠지만 자칫 스스로를 위축시키고 자폐적인 절망에 빠져드는 덫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있는 사회라고 합니다. 통계청의 ‘2010년 인구총조사’ 결과 전국 16개 시도 모두가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이 7%를 초과해 '고령화사회'로 들어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의 고령화는 필연적으로 건강과 복지 문제로 연결됩니다. 나이 들어 질병이 느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개인은 물론 지자체, 정부의 노인 건강과 복지를 위한 재정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질병과 그로 인한 재정적 부담보다 더욱 두려운 것이 노년에 맞게 되는 고독입니다.

 우리나라는 노인 자살률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1위에 올라 있습니다. 노인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 수가 2000년 43명에서 2010년 80명으로, 10년 새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고 합니다. 그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외로움과 우울증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죽어도 세상이 알지도 못하는 주검 또한 해마다 늘고 있습니다. 무연고 사망자 수는 지난 2009년 587명, 2010년 636명, 2011년 727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햄버거 가게에서 새우잠을 자며 외롭게 떠돌던 70대 ‘맥도날드 할머니’가 지난 7월 홀로 숨진 사실이 뒤늦게 보도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지난 9월에는 가족과 헤어져 혼자 살던 60대 여인이 사망한 지 5년 만에야 백골로 발견되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노인들이 맞게 되는 고독, 고독사의 문제는 복잡다단해진 사회생활에의 부적응, 젊은 세대의 핵가족화, 세대 간의 이해 부족 탓이 클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소한 일에서 비롯된 가족 간의 갈등, 개인의 폐쇄적인 사고, 그로 인한 갈등 심화의 탓이 더 커 보입니다.

 문제를 푸는 근본적인 열쇠는 가정의 정상화, 가족 관계의 복원에 있습니다. 나이 들수록 가장 가까운 부부 사이, 가족 간의 소통이 중요합니다. 친지, 친구와의 교유도 중요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고독과 그에 따른 비극을 예방하는 비결인 것입니다. 2011년 전국 268개 시·군·구 중 노인 자살률 1위였던 전북 진안군은 위험도가 높은 노인들을 파악, 매주 한 차례 이상 전화를 걸고 한 달에 한 번 면담을 시행한 결과 지난해에는 노인 자살률이 234위로 떨어졌다고 합니다. 관심을 가져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는지, 실증한 예입니다.

 가까웠던 이들과 멀어진 이유, 갈등의 원인은 다양할 것입니다. 그러나 풀지 못하는 이유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자존심, 아니면 불신 탓입니다. 이 가을 더 늦기 전에 알량한 자존심을 버리고 닫아걸었던 마음의 빗장도 열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손을 찾아 쥐고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체온을 나누며 따뜻한 겨울을 준비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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