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6년 잉글랜드 왕국과 스코틀랜드 왕국이 피로 얼룩진 반목과 대립의 역사를 봉합하고 연합왕국(United Kingdom)을 만들기 위한 협상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습니다. 잉글랜드의 앤 여왕은 스코틀랜드 의회에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습니다.

“하나의 총체적이고 완벽한 통합은 지속적인 평화의 굳건한 기반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종교, 자유, 재산을 보호해주고 사람들 간의 적대감,  그리고 두 왕국간의 경계심과 의견 차이를 없애줄 것입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힘, 부와 무역을 증가시킬 것이고 이러한 통합으로 이 섬 전체는 애정으로 결합되고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서 비롯되는 모든 불안감으로부터 해방되어 모든 적대세력에 대항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서한은 80여 년 후 미국의 독립 13개 주가 하나의 연방으로 통합할 때 역사적 교훈이 되었습니다. ‘건국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인 존 제이(미국헌법제정회의 뉴욕주 대표)는 1787년 ‘인디펜던트 저널’에 13개 주가 하나의 나라로 통합하는 연방헌법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연재 기고문을 쓰면서 바로 앤 여왕의 이 서한을 인용하여 미국인들을 설득했습니다.

미국 역사상 중요한 문서로 남아 있는 ‘페더럴리스트 페이퍼’를 보면, 존 제이뿐 아니라 건국의 아버지들이 그리스나 영국의 역사에서 이웃나라끼리 오히려 더 쉽게 반목하는 사례를 들면서 같은 영국의 뿌리에서 생긴 미국 13개 독립 주들이 한시 바삐 통합하지 않고 그냥 가면 언젠가 서로를 불신하고 투쟁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을 예견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볼 때, 신대륙 넓은 땅에 흩어진 채 독자적인 정부를 갖고 자치를 누리던 13개 독립 주들이 하나의 나라로 합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런 뜻에서 미합중국을 창업한 각 주의 소수 선각자들의 현명함에 찬탄을 하게 되고, 그들이 모국 영국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었다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18세기 이래 유럽과 신대륙에 걸쳐 영미(英美)헤게모니 시대가 열린 것은 영국의 연합왕국이 성립되고 북미대륙에서 여러 독립적인 식민지들이 통합하여 ‘미합중국’을 창설했기 때문에 일어난 하나의 세계사적 운명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18일 실시된 스코틀랜드 독립 국민투표는 전 세계에 충격파를 던졌습니다.

만약 찬성투표가 많이 나와 스코틀랜드가 분리되었다면 아마 영국의 하드파워는 단순히 국토면적과 인구의 감소로 계량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할지 모릅니다.

스코틀랜드를 잃은 영국의 해군은 핵 기지를 옮겨야 하고 군사전략적 곤경에 처하면서 국제사회에서 누려온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의 힘과 위상을 서서히 잃어갈 것입니다. 그게 미국은 물론 프랑스 독일 등 EU국가에도 상상하기 힘든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에 유럽 대륙 주요 국가들이 속으로 반대표가 많이 나와서 영국의 현상유지를 바랐던 것으로 보입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 실패로 세계는 조용해질까요? 결코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저주파의 음파처럼 멀리멀리 오래오래 영향을 미칠 것이란 예감이 듭니다.

연합왕국으로서의 영국의 지위는 그럭저럭 유지하게 되었지만 영국 내정에 던지는 파장은 벌써 만만치 않게 감지됩니다. 스코틀랜드는 독립은 쟁취하지 못했지만 국방과 외교를 제외한 광범한 자치권을 확보하게 될 것이며, 이는 영국의 미래를 덮는 어두운 그림자일지 모릅니다.

지구상에는 크고 작은 200여 개의 독립 국가들이 있습니다. 많은 나라가 소수민족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중국 신장성의 위구르자치구처럼 한국의 16배에 이르는 땅을 가진 곳도 있고, 벨기에의 프랑드르처럼 자그마한 지역도 있습니다. 그들은 한 나라로서의 독립을 원합니다.

스코틀랜드 국민투표는 독립운동을 전개해왔던 전 세계 소수민족 지역에 큰 자극을 주었습니다. 유럽에만도 무수히 많은 소수민족들이 저마다 독립의 의지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국에도 텍사스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텍사스가 독립한다는 게 상상조차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잃어갈 때 그 넓은 나라가 한 국가로 통제가 가능한 일인지, 역사가  암시하는 바가 큽니다.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에서 역사와 현실을 잇는 세계사적 흐름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15년 전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가 21세기의 특징을 통합과 분리의 역설로 예측했습니다. 세계 경제는 통합되어가는 반면 이 세상엔 1,000개의 국가가 생길 것이라고 예측했습니다. 물론 1,000이란 숫자는 상징적일 뿐,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세계의 여러 나라가 분리독립의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는 점입니다. 통합보다는 해체가 21세기의 세계사적 추세라는 뜻입니다.

300년간 통일되어 있던 나라가 국민투표에 의해 다시 갈라서려는 움직임에서 이 세상엔 영원히 고정된 국가란 없다는 사실을 절감합니다. 남북통일을 염원으로 삼고 있는 한국인들에게도 어떤 방식의 통일을 해야 하는 것인지를 고민해보게 하는 계기인 것 같습니다.

 

필자소개

김수종

 

한국일보에서 30년간 기자 생활. 환경과 지방 등에 대한 글을 즐겨 씀.
저서로 '0.6도' '다음의 도전적인 실험' 등 3권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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