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아침 신문을 읽다가 문예춘추 10월 호에 냈다는 당신의 위안부 관련 글 발췌가 실려 있는 대목에서 시선이 멈추었습니다. 제목만 보고도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급히 그 잡지에 난 당신의 칼럼을 입수해서 읽어보았습니다. 당신은 '위안부 대오보, 일본의 위기를 피하기 위해'라는 글에서 위안부 피해자 증언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심지어 위안부는 '참 상냥한(부드러운) 이름'이라고까지 하면서 두고두고 당신들이 치욕스러워해야 할 과거를 미화하고자 하였습니다.

참으로 놀랄 일입니다. <로마인 이야기>가 나온 이래 이 지역에서 당신의 이름은 새로운 별처럼 빛났습니다. 동양인 여성이 서양 역사의 본류 중 본류인 로마 역사를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으니까요. 당신의 명성은 일본에서는 물론, '일의대수'일 만큼 가깝다는 이 땅에까지 순식간에 퍼졌습니다. 많은 지식인 작가들의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건 출판과 관련해서 여러 차례 한국을 드나든 당신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지면에 당신의 이름과 함께 새로운 책이 뜨면 우리는 기대와 설렘으로 술렁였습니다. <로마인 이야기> 이후의 신간들, 또 그 이전의 저작들 모두 우리가 읽어보고 싶은 책들이 되었지요. 저는 우리 신라처럼 천년의 공화국이었던 베네치아 이야기를 특히 즐겨 읽었답니다. 역사가의 책보다 당신의 이야기가 더 쉽고 친근하게 다가왔으니까요. 우리는 진정 당신의 팬인 것을 흐뭇하게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이번 문예춘추에 올린 위안부 관련 글로 인해 이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에 들어선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위안부 문제가 갖는 보편성에서 벗어나 편협한 일본적인 시각, 그것도 지금 한창 득세하고 있는 우익적 사고에 입각한 논조에 편승하였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치명적인 실수였습니다. 역사를 보편적 시각에서 조명했으려니 하고 그간 즐겨 읽었던 당신의 책들에 대해서도 다시금 의문을 품어야 할지 모르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당신이 진정한 역사가가 아니란 점에 실망한 것이 아님은 역사평설가임을 자처한 당신도 잘 아실 것입니다. 언젠가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이름이 기억나진 않지만 우연히 만난 컬럼비아 대학교의 어느 역사 교수에게, 당신이 로마의 역사를 대중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기에 이를 높이 평가한다고 했다가 제 얼굴이 붉어진 적이 있답니다. 그 교수는 일언지하에, 우리는 그런 문헌에는 전혀 주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그땐 그 교수의 말이 부당하다고 느껴졌지요. 역사도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인데, 왜 정통 역사서에만 매달려야 하느냐고 되묻고 싶었답니다. 그런데 이제야 그 교수가 한 말의 의미를 알 듯합니다. 역사가는 보편성에 입각해야만 역사가라는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편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란 걸 말입니다. 돌이켜보면 당신은 보편성보다는 시오노 나나미라는 한 인간이 가졌던 흥미를 위주로 역사를 평설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보편적 인권보호에 위배된다는 점에서 세계적으로 비판을 받고 있는 일제 전시하 군대위안부 문제, 요즘은 당신도 인정하듯, 전시 성노예 문제로 인식되고 있는 그 엄중한 문제를 어찌 그리 가볍게,  편의적으로 다루었는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당신은 한 일본인의 입장에서, 위기에 내몰린 일본인들을 달래기 위해 커다란 역사적 진실을 호도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지금까지 당신이 쌓아온 명성에 큰 오점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적어도 이 땅에서는 말입니다.

일제의 소위 위안부 모집과 운용에 강제가 없었다니요? 어찌 역사를 그리 함부로 재단하나요? 위안부로서 그 모진 삶을 살아야 했던 여성 한 분, 한 분이 당신의 이야기 속 에서 무수히 죽어간 이름 없는 병사들처럼 그렇게 보이던가요? 당시 조선에서는 정조를 강제로 빼앗기는 것은 죽음이나 다름없는 것으로 인식되었답니다. 모르긴 해도 일본도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어떤 소녀가 죽음과 다름없는 길을 스스로 택해서 그 길로 갔다는 말입니까? 그 고통을 겪은 분들의 고뇌에 찬 증언을 어찌 거짓으로 본다는 말입니까? 노예적인 위안부 이야기는 사실 오래 전에 나온 당신의 선배 작가 고미카와 준페이(五味川純平)의 <인간의 조건>에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아무리 지금의 일본 사회가 국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더라도 과거에 있었던 진실은, 진실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한 시기의 정치인에 불과한 아베 류의 값싼 역사인식에 기대어 어찌 진실을 왜곡하고 인류보편의 가치를 저버릴 수 있단 말입니까? 매우 안타깝지만 문필가로서 당신의 생명은 여기까지로 보입니다. 이 말을 하기 위해 시작한 제 이야기가 꽤나 길어져서 미안합니다. 한때 당신의 충실한 독자였던 사람으로서, 마지막 인사를 드려야겠습니다. 앞으로 남은 생에서 더 이상  물의를 빚지 않고 편안하게 지내시길 바랄 뿐입니다.

 

필자소개

정달호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직업 외교관으로 일했으며 주 이집트 대사를 역임했다. 현재 제주 소재 유엔국제훈련센터(UNITAR)소장으로 재직 중이며, 제주특별자치도의 외국인자문위원회 위원장으로 외국인거주환경개선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라산 자락에 텃밭과 나무를 가꾸며 자연의 품에서 생활의 묘미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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