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는 568돌 한글날입니다. 우리 한글은 짜임새가 아주 과학적이어서 배우기 쉬워 아주 효율이 좋은 글자입니다. 또 한글은 목표로 가지고 인류가 만든 것으로 세계에서 단 하나뿐인 글자라고 자랑합니다. 여러분도 정말 자랑거리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글이 헤쳐 온 역사를 돌아보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그만큼 스스로 경쟁력이 아주 좋다는 뜻일 겁니다.

아무리 경쟁력이 뛰어나도 가꾸지 않고 내팽개쳐 두면 어느덧 사라질지 모릅니다. 우리말과 글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보기를 들겠습니다.

1. 재잘터(트위터를 일컫는 우리말)에 있는 곳을 표시하는 기능이 있나 봅니다. ‘@테크노 파크 in 인천 송도’와 같이 표시합니다. 저게 우리말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재잘터 한글판을 맡은 사람은 우리말로 어떻게 표현하는지를 모르나 봅니다! 사용자 가운데 저것을 올바르게 고치라고 요구하는 사람도 없었나요? 다행히 얼숲(페이스북을 뜻하여 만든 말)에는 ‘~에서’라고 표시되어 마음이 좀 편합니다.

2. 우리말에도 정관사가 생겼나 봅니다. 요즘 상호나 상표를 보면 복장이 터집니다. ‘더 팰리스’, ‘더 케이’, ‘더 바인’, 더 스타일’ 나아가 이제는 ‘더 뚝배기’, ‘더 짜장면’, ‘더 국수’까지 나타났습니다. 이제 국문법에 정관사를 넣을 날이 곧 올까요?

3. 우리 일상에서 외국어를 생각 없이 씁니다. 주변에 있는 달력을 살펴봅시다. 대부분 달력에 요일이 ‘Sun, Mon, Tue, Wed, Thu, Fri, Sat’라 적혀 있습니다. 우리는 요일을 ‘일 월 화 수 목 금 토’라고 말합니다. 영어로 말하지 않습니다. 왜 달력에 영어 약자로 요일을 표시하고 있을까요? 저는 영어 약자로 적힌 요일을 볼 때마다 짜증이 납니다. 내 정서, 내 습관과 맞지 않아 지금도 무슨 요일인지 헷갈립니다.
신문기사나 토막글(칼럼)에도 영어단어가 숱하게 들어갑니다. 대부분은 그것을 가름할 우리말이 있습니다. 기자나 글쓴이가 우리말을 몰라서 영어를 썼겠지요. 아니면 ‘내가 그런 단어까지 알다니 참 대견해!’하는 마음이 들어 있어 그랬을 겁니다. ‘좋다, 됐다, 알았다, 그래...’라고 말하면 될 것을 ‘오케이, 오케바리’라 합니다. ‘땡큐, 파이팅, 큐, 스톱...’ 이런 말은 어느새 우리말로 바뀌었나 싶을 정도입니다.

4.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만들어내는 정책이나 구호가 영어로 된 게 참 많습니다. ‘It's Daejeon’, ‘Fly Incheon’... 이렇게 적으면 뭐가 좀 더 있어 보입니까? 모양새 더 좋습니까? 예전에 'High Seoul'에서 지금은 '희망 서울'로 바꾸었기에 다행입니다. 국어기본법에 “공문서에는 한글을 쓰고, 필요하면 외국어를 괄호 안에 같이 적을 수 있다.”고 되어있는데, 공무원이 국어기본법을 어기고 있습니다. 당장 처벌해야 할 것 같습니다.

5. 요즘 노래 가사를 들어보면 어이가 없습니다. 태반이 영어투성이입니다. 국민가수라까지 불리는 조용필 씨 노래도 ‘Bounce! Bounce!'를 외치기에 노래가 좋고 안 좋고를 떠나 참 실망스러웠습니다.

6. 대학에서는 국제화라는 명분으로 영어 강의를 강요하나 봅니다. 외국어를 전공하는 학생에게 해당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것이라면 누가 뭐라 그러겠습니까? 수학 물리 화학, 심지어 고전문학 같은 인문학을 영어로 강의하면 제대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 따위 제도를 만들어낼까요?

7. 인터넷을 살펴보죠. 인터넷을 띄우면 글자를 입력할 기본은 한글이어야 합니다. 습관으로 글자쇠를 누르다보면 영어가 뜹니다. 지우고 다시 치게 만듭니다. 짜증납니다. 네이버 어학사전에는 국어사전보다 영어사전이 먼저 나옵니다. 누가 쓰는 사전입니까? 곤란합니다. 고쳐 달라고 요청해도 대답이 없다 합니다.

보기를 들자면 끝이 없습니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이란 정체성을 이어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은 우리말을 써야 뜻을 올바르게 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사람이 우리말 쓰는 것이야 당연한데, 그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하기가 이리 힘듭니다.

얼마 전 어느 신문에 ‘서울대 지질학과 1962학번’이 ‘우리말을 이대로 두어도 괜찮겠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우리말이 잘못되는 것을 걱정하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이런 어르신이 계시기에 그나마 희망을 봅니다.

다가오는 한글날은 한글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더욱 발전시킬 길을 찾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경제가 빨리 성장한 것은 한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말 우리글을 갈고 닦아야 더 빨리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시 공휴일이 된 뒤 두 번째인 한글날이 더욱 보람 있는 날이 되길 기대합니다.
 

필자소개

고영회(高永會)

 

진주고(1977),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1981), 변리사, 기술사(건축시공, 건축기계설비). (전)대한기술사회 회장, (전)과실연 수도권 대표, 세종과학포럼 상임대표, 대한변리사회 회장 mymail@patinf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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