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晉三) 총리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는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악명 높은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내각의 상공대신이었습니다. 그가 전후 A급 전범을 면한 것은 오로지 그가 도조에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괴뢰 만주국의 창건에 관동군의 앞잡이로 크게 기여한 정치가였습니다. 그러나 공직에 묶여 있던 그가 1952년 정치 활동이 허용되자, 맨 먼저 한 것이 ‘자유 헌법’과 ‘자주 군비’를 주창한 ‘일본재건연합’이라는 보수 정치 단체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아베 총리가 헌법 개정과 군비 확장을 그의 정치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은 전연 우연이 아닙니다. 게다가, 1954년 9월생인 그는 2006년 9월에 처음 총리로 임명되었을 때. 일본 최초의 전후 태생 총리였습니다. 태평양전쟁은 물론 한국전쟁의 기억도 없는 사람입니다. 일본 인구 약 1억2천7백만의 80%는 전후 출생자이고 실제로 전쟁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인구의 약 5% 이하로 추정됩니다.

지금 일본이 한국 식민지배와 전시 위안부를 변명하고 헌법을 개정하여 군사력 확장을 추진하려는 데는 이러한 배경이 있고, 역사를 바로잡는 데엔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일본인 중에는 평화의 소중함을 알고 전쟁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양심 있는 사람도 있지만, 아베 총리가 주장하는 ‘강한 일본에의 회귀(回歸)’를 원하고 옛날을 그리워하는 국수주의자도 있습니다.

1945년 8월 연합국의 승리 이후, 패전 일본 처리에 있어 옛 소련의 눈치를 너무 본 결과 일본 완전 민주화에 실패한 미국은, 지금 세계 제2 경제 대국으로 성장한 중국과의 새로운 ‘동서 대치(東西對峙)’에 일본의 군사력이 필요해, 미묘한 한ㆍ일 관계에 과거에 없는 골치를 앓고 있습니다.

그러나  UN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위안부 문제 등 인권에 대해 대단한 관심을 보이는 데다, 미국 의회도 일본 위안부 문제 처리를 규탄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지 오랩니다. 이런 국제 기류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1993년에 발표한 ‘고노(河野) 담화’를 새로운 ‘아베 담화’로 대체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총리 특별보좌관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씨는 최근 한 민간방송에서, 전후 70년인 명년 아베 총리는 새로운 담화를 발표하여 ‘고노담화’를 ‘뼈없는’ 담화로 만들어야 한다고 알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즉각 이 발언을 반대하였습니다만, 이는 총리 주위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로서 스가 장관의 말을 믿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재특회(재일 특권을 용서하지 않는 회)는 ‘한국인을 죽여라’는 등의 험악한 구호를 외치며, 도쿄 번화가인 니시오쿠보(西大久保)를 비롯한 일본 전국의 한인 상가나 학교 근처에서 가두시위를 합니다. 작년에 약 300회에 달하는 시위를 한, 회원 1만이 넘게 성장한 이 과격한 민족차별 단체의 간부들이 여당 자민당 의원이나 간부와 같이 찍은 사진이 종종 문제가 되고, 국회에서도 논의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본인들은 사진 찍을 때 그런 단체의 간부인지 몰랐다고 해명했으나, 여당과 그들 관계에 의심을 남기고 있습니다.

여당과 국수주의자 또는 폭력배들과의 비밀 관계는 전례가 있습니다. 1960년 6월, 기시가 총리로 있을 때 미국과의 방위조약을 둘러싼 소위 ‘안보 투쟁’이라는 큰 소동이 일어나, 당시의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이 방일까지 취소되고, 20만~30만으로 추정되는 학생, 노동자와 정치인이 국회 의사당을 포위하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 당시, 정부는 극우 단체원과 옛 군인들을 동원하고, 재경 7개 신문이 ‘의회정치를 지지한다’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여 사태는 수습되었습니다. 그러나 기시 내각은 결국 이 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났습니다.

아베 총리는 언론자유 등 이유를 들어 극우 단체의 민족차별 시위와 ‘헤이트 스피치’를 방관하는 태도를 취하는 한편, 오보 사과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기사로 국가 위신을 추락시켰다는 이유로 양심적인 아사히(朝日)에 대한 규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에 발맞추어 여당계 언론도 아사히에 대한 집중 공격을 가하고, 시오노 나나미(野七生) 등 보수 작가들까지 동원하여 아사히의 위안부 오보로 국위가 손상되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아사히신문 사과문에서 지적하였듯이, 위안부 문제의 본질과 아사히 오보와는 전연 무관함에도 불구하고, 아베 정권과 그의 추종자들은 전시 위안부 강제 동원은 아사히 오보로 전 세계에 알려진 것처럼 책동하고 있습니다.

전전(戰前) 역사를 잘 모르는 일부 젊은 층을 중심으로 반한 사상은 악화 일로를 달려, 두 나라는 물론이고 미국까지도 한일 외교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여러 신문이 일본의 유권자 반 이상이 한국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일본의 일부 젊은이들이 현재 미국이나 서방 각국이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IS(이슬람 국가) 테러집단에 가담하려는 계획이 발각됐습니다.  서방 각국은 일본의 과격한 정치 활동에 대한 경계심을 한층 높이면서  노벨 학술상을 받은 일본의 다른 얼굴에 놀라고 있습니다.

일본인은 여러 얼굴을 가진 민족이고 양심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들은 어느 면에서 우리보다 앞서가는 국민입니다. 그러나 보수적 아베 총리가 있는 한, 일본은 그의 정책이나 철학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의 외조부가 기시 노부스케이고 그의 평생의 멘토가 29세의 나이로 명치유신(明治維新) 직전에 사형당한 황도(皇道)주의 학자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임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일본 부수상을 만났고, 두 나라의 다른 접촉도 계속됩니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는 만나야 할 이웃입니다. 다만, 일본 일부에서는 아쉬우니까 우리가 먼저 머리 숙여 가까이 온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는 없습니다. 문제는 상대를 바로 알고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지요.
 

필자소개

황경춘

 

일본 주오(中央)대 법과 중퇴
AP통신 서울지국 특파원, 지국장 역임

저작권자 © 엔디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