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벌써 8년입니다.

신혼 때부터 남편은 밖으로만 돌았고 가정생활이라는 것은 관심도 없었습니다.

가정보다는 친구를 좋아했고 밥보다는 술을 더 좋아해서 술만 먹으면 사고를 쳤고 동네에서 싸움 대장으로 아무도 남편을 달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니 집에 들어오면 툭 하면 온몸에 멍이 들도록 나를 때렸습니다.

힘이 장사라서 씨름대회에 나가면 황소를 우승 상품으로 받아 동네잔치를 하면서 늘 우쭐대던 남편이 어느 날부터인가 자꾸 숟가락을 놓치고 넘어지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술 때문에 그런 것인 줄 알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날이 가면 갈수록 정도가 심해져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니 ‘소뇌 위축증’으로 운동능력상실, 시력장애에 이어 끝내 사망에 이른다는 불치병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병수발에 그동안 모아둔 씨암탉 같은 돈들도 다 떨어지고 나중에는 생계를 잇기 위해 방이 딸린 가게를 얻어 장사를 시작하였지만 형편은 더욱 어려워가기만 하였습니다.

남편의 몸은 점점 굳어만 가고 그 와중에도 남편은 좋다는 약과 건강식품, 갖고 싶은 물건을 사오라고 고집 부려 내 속을 많이도 태웠습니다.

그렇지만 남편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어갔고 재산은 남편의 병수발에 바닥이 났으며 가족들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8년을 앓던 남편은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도 않고 야속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남편이 떠난 얼마 후 큰애는 군대를 가게 되었고 군대 가던 날은 남편이 더 없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큰애는 등록금이 없어 가게 된 군대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건강할 때는 술만 먹고, 아파서는 약 값과 병원비에, 죽어서는 아플 때 진 빚 갚느라 아들 등록금도 못 내게 만들면서 가족들에게 평생 짐만 남기고 간 남편과 ‘영혼 이혼’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미운 남편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작은 아이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집을 팔고 청주로 이사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이삿짐을 싸고 빠진 물건이 없나 살피다가 버리려고 모아 둔 노트들이 있어 뒤적였습니다.

노트 속에는 눈물인지 침인지로 얼룩진 누런 종이에 쓰인 글을 발견했습니다.

“애들 엄마에게당신이 원망하고 미워하는 남편이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를 보살펴 주어 고맙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날마다 하고 싶지만 당신이 나를 용서할까 봐 말 못했고.

난 당신에게 미움 받아야 마땅하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하는 말 같구려.

여보, 사랑하오! 나 끝까지 용서하지 마오.

다음 생에 다시 만나면 그때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겠소.”

손에 힘이 없어 삐뚤빼뚤하게 쓴 남편의 편지를 보는 내 얼굴에는 눈물 콧물이 범벅되어 흐르고 있었습니다.

평생을 짐만 남기고 떠난 남편을 용서해야 하는 걸까요?

사랑은 이다지도 질긴 인연으로 나의 가슴을 찢어지게 만드는지 모르겠습니다.

다시 태어나도 만나기도 싫은 남편이 생각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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