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행복이란 무엇일까? 지금 살고 있는 나의 삶이 행복한 삶일까?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행복한 삶일까를 생각하며 살고 있으며 이런 고민은 고대시대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가며 풀어야 할 숙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행복(에우다이모니아)’이란 ‘인간의 고유한 기능인 덕(德)에 따라 탁월하게 발휘되는 영혼의 활동'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간의 행위가 그 목적으로서의 단계 가운데 ‘최상의 좋음’이 바로 행복이라고 말했는데 다만 이 ‘최상의 좋음’은 성취 가능하고, 완전하며 또 자족적(自足的)이라는 행복의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들이 ‘행복이라고 믿기 쉬운 네 가지’를 들며 이를 경계할 것을 설파했습니다. 이를테면 관능적 욕망을 추구하는 대중은 쾌락을 행복이라고 여기며, 귀족 계급은 명예를 행복이라고 여기고 또 식견 있는 사람들은 덕을 행복이라 여기며, 끝으로 기업가는 부와 재산을 행복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네 가지가 결코 행복이 될 수 없다고 그는 이야기 합니다. 이 네 가지는 행복과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행복 그 자체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의로운 이성에 따라 행동해야 하는데 이런 행위들은 결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올바르게 사유하는 습관, 올바르게 선택하는 습관, 올바르게 행동하는 습관을 통해 행복을 만들어 가야한다고 합니다.
중국의 석학 임어당(林語堂)도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행복으로 아는 것을 ‘동물적 행복’이라하였습니다. 청빈과 절제를 강조한 동양사상으로 볼 수 있지만 이런 맥락은 본질적으로는 동서양이 매 한 가지입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행복을 사치스런 생활 속에서 구하는 것은 마치 태양을 그림에 그려놓고 햇빛이 비치기를 기다리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했으며, 미국의 시인 겸 수필가인 헨리 벤 다이크는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있는 행복이라 불리는 상품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행복은 자기만족과 절제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정치가이자 사상가, 발명가인 프랭클린은 “행복에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이는 욕망을 적게 하거나 혹은 재산을 많게 하는 법”이라고 말했으며, 쇼펜하우어는 “너무 불행해지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너무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것”이라고 했으며, 에이브러햄 링컨 전 미국 대통령도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는 지극히 평범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영양을 섭취하고 생식을 하는 일은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동식물도 할 수 있는 아주 단순한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감각을 느끼고 욕구를 느끼는 일도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성적 판단을 하고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만 할 수 있는 인간다운 기능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고 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성적으로 사는 삶 그리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는 중용(中庸)의 덕으로 사는 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 아닐까요? 행복한 삶을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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