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미국 여행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뉴욕에서 한 무리의 한국 단체 관광객을 태우고 워싱턴으로 떠나는 버스 속에서 한국에서 익히 보던 모습 그대로 누군가가 마이크를 들고 먼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너나 할 것 없이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기 시작하였습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좋으나 싫으나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래도 하고 춤을 추었는데 분위기가 중반에 이르렀을 때 어느 60대 부인에게 사회자가 노래를 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강제적인 분위기에 그녀는 앞으로 나와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얼마 전에 사랑하는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습니다. 우리는 너무 사랑했고 많은 시간을 함께 여행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는데 무정하게도 남편은 나를 두고 먼저 멀리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녀의 눈가에는 눈물이 맺혔고 목소리는 떨리듯 다소 처량하게 들렸습니다. “여러분들이 즐겁게 노래하시는데 분위기를 깰 것 같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저도 여러분들과 함께 아무 문제없듯이 노래를 해야 하는데 저는 지금 지난날에 남편과 함께 여행하던 곳을 돌아보며 아름다웠던 추억을 되새기고 있습니다. 지금 이 길도 남편과 함께 여행했던 길입니다. 저는 지금 남편과의 추억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지금 여러분들처럼 웃고 즐겁게 노래할 입장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즐겁게 노시는데 방해하고 싶지는 않습니다만 저에 대한 입장도 배려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녀의 말에 모든 사람들은 숙연해졌습니다. 그리고는 더 이상 노래와 춤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 합니다.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놀려가기 위한 것 아닌가? 그러면 버스에서부터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을 춰야 제대로 노는 것인데 그걸 하지 않으면 여행이 아니지...’ 그런 사람들 마음속에는 개인은 철저히 무시당하고 집단이라는 무리 속에서 함께 웃고 함께 놀아야 제대로 된 단체여행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여행의 목적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길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혼자 사색을 즐기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좋아하는 책을 읽으며 여유 시간을 가지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두 손을 꼭 잡고 오순도순 이야기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누구는 좋아하는 노래를 이어폰을 통해 들으면서 마음을 풍성하게 만들고 싶어서 떠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다 무시하고 모든 사람이 다함께 노래 부르고 춤을 춰야만 제대로 된 여행일까요? 한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에서도 버스에서 노래 부르고 춤을 추고 술을 마시면서 떠드는 일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원칙을 정하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왜 유독 우리만이 예외로 원칙을 어겨도 되고 나만 즐겁고 기쁘면 상대방이 슬프고 괴로운 시간인지 아닌지도 판단하지도 않고 사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얼마 전 우리는 엄청난 여객선 침몰 사건을 겪었습니다. 전 국민이 슬픔에 잠겼고 여러 문제에 대해 많은 말들을 하였습니다. 선장을 비롯한 선원 그리고 정부 그리고 언론의 문제점 등을 지적하며 저마다 자기 목소리를 마치 그 분야에 전문가인양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것은 공무원과 관련기관 종사자에 대한 문제를 따지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전에 국민 각자가 자기의 위치에서 법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법과 원칙이 존중되는 사회가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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