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연천방문의 해” 제5편 연천군 미산면의 역사.문화와 지질.안보의 숨결을 찾다!
“2020 연천방문의 해” 제5편 연천군 미산면의 역사.문화와 지질.안보의 숨결을 찾다!
  • 안홍필 기자
  • 승인 2020.05.21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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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본부/ndnnews】안홍필 기자=연천군 미산면(嵋山面)은 마전군(麻田郡) 지역으로 마전의 읍내가 되어 군내면(郡內面)이라 하여 월곡(月谷), 중부(中部), 동부(東部), 이동(梨洞), 삼화(三和), 아미(峨嵋), 장양(長楊), 냉정(冷井), 등 8개 리를 관할하였다. 1914년 4월 1일 일제의 행정구역 폐합에 의해 마전군이 연천군으로 편입되면서, 마전군 동면(東面) 지역이었던 백촌(栢村), 분석(盆石), 가정(柯亭), 유촌(柳村), 우정(牛井) 등 5개리와 서면(西面)의 송현(松峴), 광동(廣洞), 석장(石墻), 월곶(月串) 등 4개리(서면에 속해 있던 작동리는 1914년에 왕징면으로 편입됨)를 병합했다. 아미산의 이름을 따 미산면이라 하고 마전, 동이(東梨), 아미.백석(栢石), 유촌, 우정, 광동, 석장의 8개리로 개편하여 관할했다. 그러나 1945년 해방과 동시에 미산면 전 지역이 38선 북쪽에 위치해 공산치하에 놓였다가 한국전쟁이 끝난 후인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고 민간인 입주가 허용되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하여 적성면에 편입되었던 삼화리를 다시 미산면에 편입시켜 9개리로 개편, 관할하게 되었다. 북쪽에 있는 산지 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구릉지대이며, 임진강이 동부에서 남류 하다가 곡류하여 남서쪽으로 흐르고 그 유역에 평지가 발달했다. 전체면적 중 농경지가 30% 정도이며, 논농사보다 밭농사가 우세한 지역이며, 1987년 1월 1일 “대통령령” 제12007호에 의해 석장리가 백학면으로 편입되면서 다시 8개리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산면을 구성하는 마을 명칭의 유례

- 아미리 : 1454년(단종 2)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 답동리(畓洞里)라 기록되어 있으나, 조선후기 아미산의 이름을 따 “아미리”라 개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인접해 있는 장양리(長楊里)와 냉정리(冷井里)를 병합하여 미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45년 해방되며 공산치하에 놓여 있다가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지금에 이른다. 현재 2개의 행정리, 6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 백석리 : 마전군 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백촌(栢村), 분석(盆石), 가정(柯亭)리를 병합하고 백석리라 하여 미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45년 해방되며 공산치하에 놓여 있다가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지금에 이른다. 현재 1개 행정리, 4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 유촌리 : 마전군 동면 지역으로 마을중앙에 큰 버드나무가 있었다 하여 ‘유촌리’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미산면에 편입되었다.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지금에 이른다. 현재 1개의 행정리, 5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 우정리 : 마전군 동면 지역으로 임진강 옆에 큰 우물인 ‘소우물’이 있어 ‘우정리’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미산면에 편입되었다.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지금에 이른다. 현재 1개의 행정리, 6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 동이리 : 마전군 동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중부(中部), 동부(東部), 이동(梨洞)리를 병합하고 동이리라 하여 미산면에 편입되었다가,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지금에 이른다. 현재 1개의 행정리, 3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 마전리 : 마전군의 군내면 월곡(月谷)리 지역으로 마전군의 관아가 있어 ‘마전읍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마전군이 연천군으로 편입되면서 월곡리를 마전리로 개명하여 미산면에 편입되었다.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지금에 이른다. 현재 1개의 행정리, 3개 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 삼화리 : 마전군 군내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연천군 적성면에 편입되었다.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어 민간인 입주가 허용되었다.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8호인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의해 미산면에 편입되어 지금에 이른다. 현재 1개의 행정리, 3개 반으로 편성되어 있다.

- 광동리 : 마전군 서면의 송현리(松峴里) 지역으로, 1895년(고종 32)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너븐골을 광동리라 하여 송현리를 2개의 법정리로 분할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송현리를 병합, 광동리라 하여 미산면에 편입되었다.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었으나 현재 민간인이 살지 않는 법정리이다.

임진강과 마을이 품고 있는 역사, 문화, 지질의 옛 명소를 찾다!

- 도동박 : 숭의전 서쪽에 있는 개울, 조선 초 숭의전에서 각종 제기와 귀중품을 훔쳐 달아나던 도둑이 밤새 도망쳤으나, 날이 밝고 보니 멀리 도망도 못가고 이곳을 맴돌던 도둑을 마을사람들이 접고 물건을 모두 되찾은 곳이라 한다.(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이 고사가 실려 있다.)

아미나루 터
아미나루 터

- 아미나루 : 아미리에서 삼화리로 건너다니던 임진강 나루. 삼화교를 건너 임진강 남쪽으로 가면 지도상에 혹처럼 튀어나온 독특한 마을을 만난다. 임진강의 이남 땅이면서 연천군에 속한 유일한 마을 미산면 삼화리. 다리가 있기 전에는 등본 따위를 떼러 면사무소라도 가려면 꼭 배를 타 야 했으며, 항시 대기하는 뱃사공을 소리를 질러 이용했다고 한다.

- 아미산(峨嵋山) : 숭의전 동북쪽에 있는 산으로 임진강 수변 위에 솟아 있는 잠두봉.숭의전과 아미사가 어우러지는 이곳은 선경(仙景)이 중국 사천성 아미현 서남쪽에 있는 아미산에 비견할 만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조선 초에 창건된 아미사와 연계되면서 지어진 이름이라는 두 가지 설이 전해온다. 또한, 조선 후기 지리지에는 마전리에 있던 소금창고 때문인지 염창산(鹽倉山)으로도 기재되어 있다.

어수정
어수정

- 어수정(御水井) : 숭의전 입구에 있는 우물, 고려 태조 왕건이 궁예의 신하로 있을 때 개성과 철원을 왕래하면서 중간 지점이었던 앙암사(仰巖寺, 현 숭의전 자리)에서 쉬면서 마셨던 우물이라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또, 아미리 ‘옻샘’이 있는데, 이곳의 ‘약수는 신비한 효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은이색영당
목은이색영당

- 목은이색영당 : 고려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牧隱 李穡)의 영정을 모신 영당이다. 목은 선생의 영당이 이곳에 세워진 이유는 목은 선생의 5대손인 청주목사 이명은이 이곳 노동리 일대에 정착하여 한산 이씨 집성촌을 이루게 된 것에서 찾아볼 수 있다. 처음 영당은 이명은의 6대손 이극빈 등 7형제의 뜻을 모아 1686년(숙종,12)에 목은 선생의 영정을 봉향하게 되었다. 그러다 한국전쟁 중에 전소되어 1974년과 1993년 두 차례에 걸쳐 중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목은은 1328년 가정 이곡의 아들로 태어나 14세 때 성균시(成均試)에 급재 했고, 21세에 원나라에 유학하여 중국문학의 연원을 연구 체득하여 명성이 자자했다. 귀국해서는 예문관 대제학, 성균관대사성을 지냈으며, 당시 장군 이성계가 고려의 왕위를 탈취하려하자 이를 저지하려다 역신들의 탄핵으로 수년간 각처로 유배생활을 했다. 정몽주, 길재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사람으로 성리학 발전에 공이 큰 인물로 알려져 있다.

- 용못 : 종못 위에 있는 못, ‘동국여지지’ 마전군 산천조와 허목의 기행문에는 이곳에 대하여 “전설에 의하면 이 곳 수면위로 용이 나타나면 가뭄이 든다고 기록되어 있다.

- 잠두봉 : 숭의전 동쪽, 임진강에 수직으로 솟은 바위봉우리로 그 형태가 누에의 머리와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 잠두봉 절벽에는 조선 후기 마전군수를 역임했던 한문홍(漢文洪)의 칠언율시가 새겨져 있고 측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종못
종못

- 종못 : 숭의전 앞, 임진강에 있는 깊은 소. 명주실 한 꾸러미가 다 들어가는 깊이. 고려 태조의 원찰이었던 앙암사 경내에 있던 범종이 임진강으로 굴러 떨어져 물속에 잠겼다. 그 후 국난이 일어나기 직전에 종소리가 울려 미리 예견했다고 하여 ‘종못’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지’ 등에 의하면 수면이 잔잔한 날 잠두봉 정상에서 임진강을 내려다보면 강 속에 잠긴 범종이 보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 두리산(圓山, 分石山) : 안골 북쪽에 있는 산. 높이 148m 백석리.유촌리, 왕징면 노동리.동중리와 경계가 된다. 미산면이 마전군에 속해 있었을 때 이 봉우리 정상에 올라서면 마전군 전 지역이 두루 보인다하여 두리산으로 붙여졌다. 옛 지리지에는 분석산(分石山, 盆石山)으로도 기재되어 있다.

- 구네미고개 :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백제, 고구려, 신라가 치열한 영토분쟁을 할 때 우정리 장대봉 산성에서 주둔하고 있던 군사들이 적은 숫자를 감추기 위해 우정리 여우고개에서 빈 곡식섬을 지게에 짊어지고 유촌리로 넘어오는 전술로 적을 물러나게 했다고 한다. 이후 군사들이 넘어 다닌 고개라 하여 군네미라 했던 것이 지금의 ‘구네미고개’로 음이 변했다고 한다.

- 소우물(牛井), 태우물(泰井), 버티우물 : 적석총 남쪽에 있는 큰 우물. 이 부근의 지형이 소가 누운 형국이고, 소의 코에 비유되는 곳이라 한다. 실제로 이곳은 두 군데에서 많은 양의 물이 항상 솟아나 예로부터 우물의 주변에는 취락지가 발달되었다.

- 금굴산(金窟山), 봉화산(峰火山) : 우정리와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95.7m 쇠가 많이 매장되어 있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일제강점기에는 금광과 철광이 개발되었다. 그때 채굴로 인하여 산내부가 텅 비어 있어 ‘공굴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고려시대에는 봉화를 올렸던 곳이라 하여 ‘봉화산’이라고도 불려진다.

썩은소
썩은소

- 썩은소 : 동이리반도 남쪽, 미강서원지 앞에 있는 임진강의 큰 소, 고려가 멸망한 뒤 고려 왕들의 위패를 실은 배가 임진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 멈추어 쇠밧줄로 정박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날 쇠밧줄은 썩고 배는 아미리 잠두봉 아래로 떠내려가 있어서 쇠밧줄이 썩은 소라 불렀다고 한다. 한국전쟁 전에는 마포리로 건너다니던 나루가 있었다.

당포나루 터
당포나루 터

- 당개나루(堂浦), 장거리 : 마전리 서남쪽 임진강에 있던 나루터, 동남쪽에 있는 당성(堂城) 안에 마전군 사묘의 하나인 성황사(城隍祠) 당집이 있어 지어진 이름. 당개나루는 마전군 때부터 서해안에서 올라온 새우젓.소금 등을 실고 배가 정박하여 이곳에서 생산되는 농특산물과 교역하던 장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또, 마전군 선정비 5기와 은행나무 고목 한 그루가 있었으나 한국전쟁 당시 모두 없어졌다고 한다.

- 무자당(無子堂) : 향교 밑 동쪽, 산 정상에 있던 당집 예전에 아들이 없던 부인들이 득남을 위해 기도하던 곳이다.

- 형제바위 : 큰 우물 북쪽, 임진강에 있는 바위 가뭄이 들어 강물이 줄어야 수면위로 나와야 보인다고 한다.

- 정발장군 정문터 : 너븐골 앞에 있던 충렬문 자리,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 전투에서 장렬한 최후를 마친 부산진첨사 정발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문이었으나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지금은 터만이 남아 있다.

- 이시미소 : 우정리 벌판에 방목한 소를 이무기가 잡아먹었다는 전설이 있는 임진강의 깊은 소.

- 밤여울 : 동이리와 군남면 남계리 계림동 사이에 있는 큰 여울.

숭의전 느티나무
숭의전 느티나무

- 숭의전 느티나무 : 경내에 있는 고목 수령은 약 570년으로 조선 문종 2년(1451) 고려 왕씨 후손이 심었다고 전해오며 철따라 웅웅 소리를 내며 울면 비나 눈이 많이 오고, 이 나무에 까치가 모여 들면 마을에 경사가 까마귀가 모여 들면 초상이 난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현재 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보호 받고 있다.

미강서원 : 미강서원은 허목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신 곳. 현재 서원은 해탈해 사라지고 터만이 남아 있다. 강 건너 낮은 숲이 절경을 뽐내고 있다.

지산팔경 속으로 들어가다!

- 숭의전의 푸른절벽(崇義殿 蒼壁) : 미산면 아미리 숭의전 동북쪽이 있는 산.

- 미강서원의 쌍잣나무(嵋江院雙栢) : 동이리 썩은 소 위에 있었던 서원 터.

- 금굴산의 해돋이(金屈山朝旭) : 동이리와 우정리 경계지점에 위치한 산.

- 아미산의 가을달(峨嵋山秋月) : 아미리 동북쪽에 있는 산.

- 반륜정의 시객(半輪亭遠客) : 마전리 임진강변에 있었던 정자.

- 임진강 어부의 노래(赤壁江魚歌) : 은 함경남도 문천군 풍산면 마식리의 마식령에서 발원하여 강원도 이천, 황해도 금천, 연천, 파주를 경유하여 개성군 임한면 정곶리의 관산과 파주시 탄현면 성동리의 오두산 사이에서 한강에 합류하여 서해안으로 흘러간다.

평화가 주는 의미를 찾아서...

DMZ(DeMilitarized Zone)란 1953년 7월 27일 인천시 옹진군을 시작으로 서해안으로 흐르는 임진강 하구에서부터 강원도 고성까지 248km에 남과 북이 휴전협정과 함께 설정된 군사분계선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각각 2km를 지정 총 4km의 공간에 군대의 주둔이나 무기를 배치하지 않는 비무장지대를 지정한 지역을 말한다.

1954년 11월 17일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의거, 행정권이 수복되었으나 민간인 입주가 허용된 지역을 제외하고는 민통선으로 영농을 위한 농업인만이 출입이 가능하고 나머지 지역은 이북에 속해있는 행정구역상 연천군에 편입되어 있으며, 동족간의 전쟁으로 인하여 10리길밖에 안 되는 지척에 고향을 두고도 부모형제를 만날 수도 없다는 실향민들의 애환을 간직한 평화구역이지만 북한의 도발이 일어나는 등 군사협정 위반하고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지구상 유일한 분단선이다.

UN군 화장장
UN군 화장장

- UN군 화장장 : 6.25전쟁 이전 미리 중화인민공화국의 마오쩌둥과 소비에트 연방의 이오시프 스탈린의 협조와 지지를 얻은 김일성은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38도선과 동해안 연선(沿線) 등 11개소에서 경계를 넘어 38도선 이남으로 진격했다. 조선인민군의 대공세에 유엔은 미국을 주축으로 바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 제82호를 의결하고 이 전쟁에서 한국을 원조하기로 결정하고 파병한다. 이후 연천군과 철원군 일대 전투에서 희생된 UN군 병사들의 화장을 진행하던 곳이다. 6.25사변은 유엔군과 중국인민지원군 등이 참전하여 세계적인 대규모 전쟁으로 비화될 번 하였으나, 1953년 7월 27일 22시에 체결된 한국휴전협정에 따라 일단락되었다.

마전리 의병전투지
마전리 의병전투지

- 마전리 의병전투지 : 마전리 의병 전투지는 1907년에 대규모 의병부대가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으로, 11월 8일 의병 1,000여명이 헌병 18명이 수비하고 있던 마전 서남쪽의 두일성 천신면을 포위하고 공격했다. 한편 마전헌병분견소는 그 전에 의병들이 마전읍내를 습격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철원헌병분견소에 증원을 요청했다. 이에 철원헌병분견소 중위 태전청송은 부하 20명과 철원수비대 하사 5명을 인솔하여 9일 오전에 급히 마전으로 향했다. 이때 의병들은 김화수비대에서 파견된 일본군의 후방공격을 받아 고전 끝에 20여명의 사상자를 내고 후퇴했다고 한다.

대표관광지와 트레킹 코스

숭의전
숭의전

- 숭의전 : 강바닥의 자갈이 훤하게 비칠 정도로 물이 맑다 하여 징파강이라 하였던 임진강. 그러나 고려 우왕 11년(1385), 징파강에는 누렇게 흐린 물이 3일 동안 흘렀다고 한다. 그로부터 10년이 채 안 되어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었다. 고려의 왕씨들은 행여 훼손이 되거나 모욕을 당할까 염려하여 태조 왕건의 위패를 가져다가 돌배에 실어 예성강에 띄워 보냈다. 배는 바다로 나갔다 역류하여 동이리 임진강가에 멈췄다. 돌배에 탔던 사람들은 이곳이 길지라는 생각에 배를 쇠밧줄로 매어놓고 위패를 모실 자리를 찾았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밧줄은 썩어 끊어졌고 황급히 배를 찾으니 배는 하류의 잠두봉 절벽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침 그곳은 태조 왕건이 종종 기도를 드리러 왔던 앙암사가 있었다. 배가 닿은 곳 절벽 위에 사람들은 건물을 지어 위패를 모시고는 숭의전이라 했다. 왕씨의 후손으로 하여금 숭의전을 지키게 하기 위하여 후손을 찾던 중 충청도 공주에서 왕씨의 후손인 제우지를 어렵게 발견하고 왕순례로 계명시켜 숭의전의 제사를 모실 숭의전부사로 임명장을 내려 숭의전지를 지켰다고 한다.

​동이리주상절리(임진강)
​동이리주상절리(임진강)

- 동이리주상절리 : 연천 동이리(임진강) 주상절리는 미산면 동이리 67-1번지 일원에 위치해 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만나는 합수머리(도감포)에서부터 북쪽으로 임진강을 거슬러 수 킬로미터에 걸쳐 아름다운 수직의 주상절리가 발달해 있다. 홍적세 중기 무렵 철원 북쪽에서 분출한 용암은 철원-연천 일대에 넓은 용암대지를 형성하였는데 화산활동이 끝난 후 용암대지가 강의 침식을 받게 되자 강을 따라 기하학적인 형태의 현무암 주상절리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동이리
동이리

절리는 암석의 표면에 발달하는 좁은 틈(혹은 금)을 말하는데 침식을 받게 되면 이 틈이 벌어지면서 암석이 쪼개지게 된다. 주상절리는 긴 통모양의 절리를 일컫는 말로 대개 현무암에서 가장 잘 발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무암은 용암이 굳을 때 발생하는 수축작용으로 인해 중심점을 따라 사각 혹은 육각형 모양으로 수직의 절리가 발달하게 되며, 침식을 받게 되면 육각형 모양의 돌기둥이 떨어져 나가면서 아름다운 주상절리 절벽이 만들어지게 된다. 주상절리의 절벽이 담쟁이와 돌단풍으로 석양빛에 붉게 보인다하여 적벽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이리주상절리는 지질학적으로 추가령 구조곡이 관통하는 곳으로 구조곡을 따라 흐르는 임진강과 한탄강을 따라 선캠브리안기에서 신생대 말까지 우리나라 지질시대의 거의 모든 암석 표본과 지질 활동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신생대 말엽의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주상절리는 내륙지역에서 강을 따라 분포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주상절리대로 DMZ 생태체험관광에서 빼어 놓을 수 없는 대표적인 지질명소이다.

당포성
당포성

- 당포성 : 임진강과 당개나루터로 흘러드는 하천이 형성한 삼각형모양의 절벽 위에 만들어진 고구려성이다. 강에 접해 있는 두면이 절벽이기에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았으며 평지로 연결되어 적이 쉽게 공격할 수 있는 나머지 한 면(동쪽)에만 높고 견고한 성벽을 쌓아 침입을 차단하는 방어시설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돌로 쌓아 만든 성벽으로 보이나 석성을 쌓기 전에 먼저 점토를 다져 쌓은 후 그 외면에 석성을 쌓아올린 토심석축의 구조이다. 중심성벽이 받게 되는 하중을 분산시키기 위해 3단의 보축성벽을 쌓았으며 성벽 앞에는 폭 6m, 깊이 3m의 구덩이를 파서 적이 쉽게 성벽을 오르지 못하게 했다. 동벽 외부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조성된 수직의 기둥 홈이 관찰되는데, 중국 내의 환도산성, 패왕조산성, 흑구산성, 평양의 대성산성 등 고구려의 산성들에서 확인된 바 있는 특징들이 있다. 특히, 당포성 동벽에서는 수직의 기둥 홈이 하부의 확과 세트를 이루고 있어 주목된다. 현재는 성벽의 훼손 및 붕괴 위험이 있어 흙을 덮고 잔디를 식재하여 보호하고 있다.

한강유역에서 후퇴한 고구려는 6세기 중엽 이후 7세기 후반까지 약 120여 년 동안 임진강을 남쪽 국경으로 삼았으며, 임진강 하루에서부터 상류 쪽으로 덕진산성, 호로고루, 당포성, 무등리보루 등 10여개의 고구려 성을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했다. 당포성이 위치하고 있는 곳은 강이 크게 굽어 흐르면서 강물의 흐름이 느려져 쉽게 강을 건널 수 있는 여울목으로 양주 방면에서 북상하는 신라군이 임진강을 건너 개성으로 진입하는 길목에 해당하기 때문에 고구려의 입장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당포성은 고구려시기에 처음 축조되었으나 신라가 점령한 후에는 성벽을 고쳐 쌓아 계속 사용했다. 이 때문에 성배부에서는 고구려기와와 함께 신라의 기와들이 상당수 출토되었다.

또한, 당포성은 고구려시대 임진강변에 돌로 쌍은 평지성이다. 임진강으로 유입되는 소하전의 침식작용으로 높은 수직의 절벽이 끊어진 지점에 구축되어 있다. 임진강의 물길이 만들어낸 수 km에 달하는 수직절벽은 현무암 주상절리로 되어 있으며 높이 20여m에 달하는 등 별도의 성벽을 쌓지 않아도 적을 쉽게 막아낼 수 있는 천혜의 자연 성벽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따라서 평지로 연결된 부분만을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현무암을 이용해 쌓았는데 이러한 현상은 연천군일대의 고구려 성의 특징 중 하나로 나타나고 있다. 당포성의 남쪽 성벽인 주상절리 절벽은 다양한 주상절리의 모양과 함께 하천의 침식작용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한편, 국가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지질공원으로 지정 인증만을 남겨두고 있으나 군사적인 요인으로 인하여 성벽 내 일부가 훼손되어 있는 모습도 있다. 이는 6.25 사변을 겪으며 근대사가 남긴 흔적으로 옛 삼국시대와 마찬가지로 근대사에서도 군사적 요충지의 의미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하지만 전선용 철탑은 이동의 필요성이 대두된다. 문화재 지정 이전에 설치된 철탑이라 해도 역사적인 지점에 편의에 의한 철탑설치를 시행한 한전에서는 문화적 가치를 간직한 역사문화를 훼손했다는 지적에서 책임론에서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요구자 필요에 의한 이전 비용을 거론하기 보다는 스스로 문화재 지점에 설치된 철탑의 이전 고려해야 함이 우선일 것이다.

정발장군묘
정발장군묘

- 정발장군묘 : 정발(鄭撥, 1553년 ~ 1592년 5월 23일(음력 4월 13일))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1579년(선조 12년) 무과에 급제해 해남현감, 거제현령, 북정원수 종사관, 거제현령, 비변사낭관, 위원군수, 훈련원첨정, 사복시첨정 등을 지내고 임진왜란 당시의 벼슬이 정3품 행 절충장군 경상좌도 부산진 수군첨절제사에 이르렀다.

1592년(선조 25년) 4월 임진왜란 때 벌어진 첫 전투인 부산진 전투에서 부산진수군첨절제사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일본군의 기습공격에 정규군 800여명, 백성 2200여명과 함께 맞서 싸우던 중 왜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그리고 부산성이 함락되었다.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흑의장군으로도 불렸다.

그의 애마(愛馬)인 용상(龍嘗)이 투구와 갑옷을 생가까지 물고 달려왔다. 사후 시신을 찾지 못하여 투구와 갑옷만으로 경기도 연천군 마전면 백석리 새릉에 의관장(衣冠葬)으로 장례를 치렀다.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의 초량역 근처에 동상이 설치되어 있다.

임란이 끝나고 그의 생가가 있던 광동리 너븐골 근처에는 조정에서 내린 불천위(不遷位)의 은전으로 별묘(別廟)가 건립되고, 1683년(숙종 9) 미산면 백석리 묘소로 가는 길 입구 비문(숙종 때 송시열이 지었으나 유실)과 함께 충신정려문이 세웠으며, 한국전쟁 때 화재로 전소되었다. 1982년에 후손들이 다시 비를 세웠다.

심덕부의묘
심덕부

- 심덕부(沈德符)의 묘 : 심덕부(1328~1401년)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으로 본관은 청송, 자는 득지 호는 노당(蘆堂).허당(虛堂)이며, 고려 충숙왕 복위년에 벼슬에 나가 여러 요직을 거쳤다. 고려 우왕(1380, 6년) 나세, 최무선과 함께 충남 서천에서 최무선이 제조한 화포를 처음 실전에 사용하여 왜구 토벌에 큰 공을 세웠다. 우왕 14년(1388)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을 도와 정도전, 정몽주와 함께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세우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조선 개국을 맞아 회군1등 공신에 초록되어 청성백(靑城伯)에 봉해졌다. 조선 태조 3년(1394)에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의 판사가 되어 한양의 궁궐과 종묘를 세우는 일을 총괄하여 신도 건설을 주도한 인물이다.

영원부원군(윤호)
영원부원군(윤호)

- 영원부원군(領原府院君) 윤호(尹壕)의 묘 : 윤호는 1424~1496년 조선전기의 문신으로 1447년 생원시에 합격했고, 1476년 춘장문과(春場文科)에 급제하였으며, 병조참판 영돈녕부사 등의 벼슬을 지냈다. 그의 딸이 성종의 왕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가 되자 영원부원군에 봉해졌다.

1476년 공조참판, 1488년 돈령부원사, 이듬해 바복시제조를 겸했다. 1494년 우의정으로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궤장을 받았다. 평소 성품이 검소하고 교만함이 없었으며 외척으로서 세도는 추호도 찾아 수 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미산면에는 신호(申浩)의 묘와 의병장 심상우의 묘소도 있다.

- 연천평화누리길 10길(고랑포길) : 사계절 특성화 농촌마을 탐방길인 10코스는 장남교에서 시작해 숭의전지로 이어지는 길로 한성과 개성의 물자가 한강을 타고 교류하던 곳으로 남북의 교류를 염원하는 뜻에서 고랑포구의 이름이 붙여졌으며 임진강변을 따라 걷게 된다.

코스는 숭의전을 출발해 구미교, 비룡대교, 전동교, 사미천교, 장남면사무소, 장남교(원당리)입구로 이어지는 18km 구간으로 약 6시간 정도 소요된다.

연천평화누리길 11길(임진적벽길)
연천평화누리길 11길(임진적벽길)

- 연천평화누리길 11길(임진적벽길) : 고구려에서 고려로 이어지는 역사탐방길인 11코스는 숭의전을 출발해 당포성, 동이리대대, 주상절리, 황공천, 임진교, 북삼교, 군남홍수조절지로 이어지는 19.2km 구간으로 약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청토귀리밭 둘레길
청토귀리밭 둘레길

- 청토귀리 밭 둘레길 : 미산면 마전리 1,2,3반 : 연천군 청토귀리회는 관광의 해를 맞는 2020년 재배지에 관광두레 사업과 연계한 대표관광 상품화를 추진 중에 있다. 청토귀리(조양 쌀귀리)는 3월 초 파종하여 6월 중순에 수확하는 2모작이 가능한 농산물로 새싹이 파란 잎을 머금고 올라오는 5월 초 연천군을 대표하는 초록색으로 얼룩지는 5월과 가을수확의 시기에 볼법한 황금들녘을 6월에 이미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광경으로 6월에 펼쳐지는 수확을 경험할 수 있는 관광 벨트화가 이루어진다면 또 다른 볼거리 제공과 청정지역인 DMZ접경지역인 연천군에서 최초로 재배를 성공시킨 쌀귀리 재배지역으로 관광특화상품화가 가능하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다소 시간의 흐름이 느려짐을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다.

동산사슴목장
동산사슴목장

- 동산사슴목장 : 동산사슴목장은 연천군에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청결하고 쾌적한 환경 속에서 사슴을 사유하고 있으며 정기적으로 사슴의 뿔을 잘라 신선한 상태의 녹용을 공급하고 있어 주말이면 꾸준히 손님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소문이 자자하다. 주말을 이용해 사슴목장에 견학과 함께 인근에 놓여 있는 문화제와 힐링의 시간을 가져 봄직하다.

동산사슴목장의 모든 재료는 농장에서 생산된 국내산 100%의 제품만을 사용하며, 한약재의 경우 경동시장에 위치한 약재상 '향이 좋은'과 제휴를 맺어 최상급의 약재만을 엄선하여 사용한다. 또한, 약의 제조과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약업사의 도움 및 사용하는 한약재의 품질 관리를 위해 한의사의 도움을 받아 직접 제조하고 있다.

또한, YC글램핑장과 송림다원과 송림원이 산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자연이 주는 아늑하게 고즈넉함이 있어 찾은 이가 많다. 송림다원은 직접 다려 낸 전통차와 오리전문음식이 주 메뉴이고 캠핑족을 위한 글램핑장도 운영되고 있어 한 곳에서 즐길 수 있어 주말을 이용해 마음만 가지고 찾는다면 최상의 힐링을 만끽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미산면이 추진 중인 중장기사업과 개선점

만들어가는 문화 UN참전도시 육성사업 추진

6.25 남북 동족간의 전쟁으로 UN 16개 참전국이 전투에 참여한 유일한 지역이다. 이로 인해 UN군 전사자를 위하여 미산면에 화장장이 조성되었다. 참전군인의 희생을 기리고자 제3국립현충원 내에 기념탑 조성과 기념행사를 16개 참전국의 주요 관계자 초청과 관광객을 유치하고, 이를 통해 세계 속 UN 관련 관광도시 연천군으로 발돋움하고자 2021년~2026년 조성될 국립현충원과 맞물려 추진 중이다.

이용희 미산면장은 “2020연천군 방문의해를 맞아 연천군이 새로운 관광도시로 도약하는 원년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미산면이 한탄강 지질공원과 연천임진강 생물권 보존지역을 잇는 자연 친화적 자연생태 관광도시로 육성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연천군 미산면은 과거 와 현재를 연결하는 역사화 문화를 갖춘 도시로서 9개리(행정리8, 법정리1) 중 5개 마을이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있으며, 강변을 두지 않는 내륙지역은 황공천 과 노동천 2개의 하천과 미산면, 백학면 일대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백학저수지가 어울러져 수련한 경관을 자랑하는 지리적 특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70년대 인구산아 정책 과 80년도 경제성장에 따른 도시화 정책은 농촌지역에 고령화와 인구 감소로 인한 지자체의 존폐위기에 있는 현 시점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남을 미산면을 난개발할것이 아니라 기존자연환경을 가꾸고 역사와 문화를 거점으로 자연생태자원을 이용한 명소로 보존하여 친환경관광도시로 육성하여 지역을 지키고 살아가는 주민에게 관광부가소득을 되돌려 주고 차후 국가의 여건변화에 따라 미래세대가 지역을 기획하고 운영할 수 있는 자산을 남겨 주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천혜의 자연의 보고로 알려진 비무장지대 내의 산적해 있는 역사와 함께 했던 문화적 가치 발굴과 연천군의 중.장기적 종합발전계획을 위해선 군사시설보호구역과 수도권과 관련된 각종 규제에 대한 현안사항 등 관광의 도시로 나아가기 위해선 선행적으로 풀어야 될 각종 규제가 숙제가 주둔중인 군부대 등과의 협조와 상생을 위한 노력이 뿌리 깊게 남아 있기도 하다. 역사적 문화재에 6.25사변이 남긴 흔적들이 너무도 많은 곳에서 목격되고 있어 다소 아쉬움은 남으나 이 또한 역사의 한부분이며, 문화로 옛 문화와 근대문화가 함께하는 복합문화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연천군이 이러저러한 각종규제를 풀어야 할 것인지와 또, 어떠한 형식의 복합문화를 가져갈 것인가에 대한 고심과 노력에 많은 도시들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안홍필 기자  afc77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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