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전에 살던 동네에 작은 옷 수선집이 있다. 젊었을 때 양장점을 운영했던 60대 초중반 아주머니가 주인이다. 옷 수선을 잘 하고 사람이 좋아 일감이 넘쳐 항상 일에 치어 산다. 한 번은 필자가 부탁한 여행용 바둑판 가방과 바둑돌 통을 멋지게 만들어 줬다. 그 후 볼 일이 없어도 지나는 길에 가끔 들러 과일 같은 걸 나누고 했다. 일이 많다 보니 평일, 주말할 것 없이 밤 10시 넘어서야 문 닫는다. 건강부터 챙기라고 조언하지만 우이독경이다. 

  필자는 미장원이 아닌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다. 요즘 남자도 미장원을 많이 이용해 이발소는 드물다. 지금 다니는 곳도 힘들게 찾았다. 옛날 살던 동네 뒷골목 살림집 반지하에 있는 수수한 곳이다. 멀리 이사 한 지금도 거기까지 간다. 이발사는 80도 넘은 노인이다. 직업병인 듯 허리마저 굽었다. 1960년대 초부터 60년째 한 우물을 파고 있다. 그러니 머리 자르는 데는 달인이다. 기계는 안대고 가위로만 필자 머리를 다듬는다. 3주마다 그를 만날 때면 인간에게 과연 일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매번 착한 이발비에 웃돈을 약간 얹어드리는데 얼마나 고마워하는지. 필자가 옷을 입는 동안 재빠른 동작으로 구두까지 닦아준다. 이렇게 고객을 정성껏 대하는 이발사는 찾기 힘들 것이다. 

  98세 현역 치과의사가 있다면 믿겠는가. 바로 필자 이모부 얘기다. 해방 후 함흥에서 월남해 당시 경성대 치대를 나왔다. 필자가 어렸을 때 이모 댁에 놀러가도 치과와 집이 붙어 있어 항상 웃는 낯으로 반갑게 맞아주셨다. 이모님이 쓰러져 26년 동안 병상에 누워계셨을 때도 열과 성을 다해 보살폈다. 별 취미도 없고 평생 가정과 치과일밖에 모른다. 아직도 정릉에서 동대문까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해 그 근처 치과에서 월급의사로 일하고 계신다. 

  필자 주변에 있는 세 분의 일 마니아를 소개했다. 과연 이들은 일이 좋아서 그렇게 일을 할까. 아닐 것이다. 통계청 통계가 이를 증명한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OECD국가 중 가장 높다. 노동시장 완전 은퇴연령도 남녀 공히 72세로 최고치다. 그 뒤를 멕시코, 칠레, 일본이 뒤따르고 있다. OECD 평균은 남자 65세, 여자 64세다. 우리나라 일하는 노인 10명 중 9명은 ‘계속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는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가 62%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35%다. 은퇴를 해도 살기 위해 10명 중 서너 명은 계속 일하고 있는 것이다.

  선진국 영국은 어떤가. 영국도 65세 이상 인구의 약 10%가 현직이다. 이 중 34%는 그들이 원래 다니고 있던 곳에서 일하고 있다. 영국은 2011년 법적 은퇴연령 65세를 완전 폐지했다. 영국에서는 나이를 이유로 해고하지 못한다. 이렇게 노년층이 계속 일하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더 많아졌다고 한다. 영국 노인의 삶은 한국 노인과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먹기 위해서 일하는 게 아니고 행복한 삶을 위해 일하고 있다. 영국은 65세부터 75세까지의 이런 ‘젊은 노인’을 욜드(yold, young-old)라 부른다. 영국인들은 은퇴 후 취미, 봉사를 일상으로 지낸다. 평생 즐긴 취미 생활을 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취미를 붙인다. 자원봉사단체에 가입해 남을 위해 봉사한다. 그리고 평범한 가사를 돌보는 일에 매달려 젊어서 일할 때보다 더 바쁘게 지낸다고 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도 이제 이런 선진국형 삶을 지향해야 한다. 우리는 이제껏 우리 삶의 중심을 경제적 가치에 두었다. 최근 한국경제학회 연구에 따르면 우리는 지난 1990년부터 2017년 사이 소득은 4배 늘었어도 행복지수는 여전히 하위권에 머물렀다. 소득 증가와 행복도는 비례하지 않음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있다. 앞으로는 경제적 가치와 공공성, 인간주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사회적 가치가 균형을 이루는 삶을 좇아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엔디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