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이끈 강력한 신의힘. 고통받는 중생 구원하기 위함이라
그녀를 이끈 강력한 신의힘. 고통받는 중생 구원하기 위함이라
  • 김태균기자
  • 승인 2020.02.10 09: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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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심보살

 

함안 특집/ 공심 보살

 

그녀를 이끈 강력한 신의 힘,

고통 받는 중생 구원하기 위함이라

공심 보살

 

- 20년 동안 신병으로 고생하다가 37세에 받아들인 무속인의 운명

- 놀라운 힘 직접 경험한 신도들로 줄이어

- 전통 종교인 무속 발전시켜 나가고파

 

 

 

무속인은 선택받은 운명이다.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매개체로 택함 받은 인간은 그 엄청난 힘을 감히 거스를 수 없다. 운명을 거부하려 할수록 신병은 육체를 고통으로 몰아놓고 주변 지인들까지 고난에 휩싸이며 정신적 고통까지 겪게 되기 때문이다. 공심보살 역시 처음에는 무속인으로 선택받은 운명을 거부하고 또 거부했었다고 한다. 그 탓에 힘든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그토록 그녀를 신의 길로 이끈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녀를 통해 수많은 중생들을 구원하고 기적을 행하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마침내 신의 제자가 됨으로써 전에 느껴본 적 없던 황홀함과 충만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고통 받는 중생은 그녀 덕에 치유되고 있다. 1시간이 넘는 인터뷰 시간 동안 그녀는 우여곡절 많은 인생사를 펼쳐내 보였다.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들려주는 그녀의 인생 스토리를 듣고 있노라니 그녀를 감싸고 있는 강렬한 힘과 영험함에 경외심이 들 정도였다.

 

 

무속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

공심보살은 16살 어린 나이부터 신병을 겪었다. 22살 되던 해에는 각혈까지 했다. 극심한 고통으로 오후 3시만 되면 온 몸에 한기가 들고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병원을 찾아도 병명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어릴 적에는 신의 세계가 뭔지도 몰랐고 그렇기에 굿이나 신 내림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몸이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기도를 드렸다. 제일 처음 기도를 하러 간 곳은 대구 팔공산이었다. “팔공산 산신각에 앉아서 기도 하고 있는데 한 20분 정도 흘렀을까요. 하늘에서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눈을 감고 앉아 있었는데 하늘에서 여자가 울다가 웃다가 하는 소리가 귓가에 들렸죠. 눈을 뜨고 쳐다보니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약해져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었죠. 하지만 그렇게 내려오기 싫은 마음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달고 살던 신경안정제, 수면제, 진통제를 기도하고 내려오니 전부 기적처럼 끊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쉽게 무속인이 될 수 없었다. 집안의 반대는 극심했기 때문이었다. 큰아버지께서는 마산문화원 원장을 역임한 교육자 집안에 아버지 역시 지역 내 유명한 언론인이었다.아버지는 인연을 끊겠다고 했다. “지금도 그 이야기를 하려면 눈물이 나요.”라면서 울먹이며 공심보살은 아버지께서는 이것이 너의 운명이고 숙명이라 하면은 거부하지 말라. 다만 한 가지만 약속 해 달라. 여기가 고향이고 누구 딸이라는 것을 전부 안다. 정 신()을 믿고 가겠다면 손가락질 받지 않는 사람 되었으면 좋겠다. 허나 나는 너를 내 딸로 안 보려 한다. 마음이 풀리면 언젠가는 너를 다시 받아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그 때를 기억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가 하는 장사마저 어려움을 겪게 됐다. 일하는 사람도 다쳤다. 일류 주방장이 손을 베이고, 서빙 하던 사람은 다리를 다쳤다. 결국은 빈털터리가 되었다. 형제간도 싫어하고 부모도 싫어하고 모든 사람들이 돌아서는 험난한 시간 이었다. 그녀는 그제서야 오로지 할머니 할아버지만 믿고 가야겠다고 엎드려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 뒤로 그녀는 기도를 통해 심신의 평안을 되찾아갔다. “기도를 하면서 기적 같은 일을 경험했습니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고, 형용할 수 없이 보드라운 새 깃털로 얼굴을 3번 문지르고 지팡이로 어깨를 3번 쳐 주시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부터 육체를 지배하던 모든 고통이 사라졌습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지요. 하염없이 눈물 흘리다가 문득 정신 차리고는 잘못했다고 엎드려 빌었습니다. 덕분에 모든 약을 끊고 산에 다니기 시작한 지 2달 정도 되어 저도 모르게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했죠.” 그 이후로 그녀는 신이라는 존재를 믿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 때 나이 37. 20년 가량을 거부하다가 결국에는 주어진 길을 가게 된 것이다.

 

기도하고 굿판 벌일 때 행복해

기도 하러 가는 길이 너무 즐거웠어요. 첫사랑의 설레는 느낌, 그것이었죠. 산에 가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너무 좋았습니다. 그 행복한 마음은 남편, 자식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한 번도 느껴본 적 없었던 느낌이었습니다. 그제야 할아버지 가르쳐준 대로 신당 모시고 법당을 만들었지요.”

 

공심 보살은 어른을 모시고 난 이후로 너무 행복합니다. 굿판에 가면 행복하고 신명이 납니다라고 전했다. 굿도 할 줄 전혀 모르는 상태였지만 유방암 수술과 같은 수술로 유방 한 쪽을 절제하고 난 뒤 일주일 만에 실밥 풀자마자 진적맞이 굿을 했다. 몸도 성하지 않고, 처음 해 보는 굿에서 그녀는 천향대를 지고 놀기 시작했다. 그녀는 그 때 그 마음이 너무 황홀했다고 회상했다. 모든 것이 무속인이 그녀의 천명이자 숙명임을 가리키고 있었다.

 

놀라운 기적 경험한 신도들 많아

워낙 영험하다 보니 점사와 굿을 통해 기적을 경험한 신도들의 사례도 많다. 영험함을 직접 경험한 신도들이 소문을 내고 찾아와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그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말소리가 또렷하게 들린다고 한다. 공심보살은 몇 가지 사례를 들려주었다. 첫 번째는 시한부를 선고 받았으나 굿을 통해 10년 이상을 더 살게 된 남성의 이야기였다.

“30대 초반 여성이 들어왔었습니다. 딱 보니 남편이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느낌을 받았죠. 얘기 하니 남편이 시한부를 선고를 받았다며 펑펑 울었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저는 신을 몸으로 받기 때문에 제 몸으로 아픔과 고통이 전해졌습니다. 기침이 나기 시작했죠. 폐가 안 좋은 것 같아 물으니 폐암으로 죽을 날을 받아 놓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남편을 살려달라는 부탁에 할머니께 부탁드리니 믿음을 주셨습니다. 살리지는 못한다. 다만 명은 늘여주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굿을 시작했죠. 그러자 누워서 왔던 그 분이 굿 중간에 벌떡 일어나 대를 잡고 놀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굿을 하고 난 후에 그 후로 10년을 더 살았습니다.”

최근에는 신병에 들려 있는 사람을 고쳐 주기도 했다. 빙의가 되어 알콜 중독에 시달리던 사람이었다. 굿을 하는 날까지도 술에 취해 있던 사람이었다. 장정 2명이 억지로 굿판에 데리고 올 때까지만 해도 인사불성이었다. 욕을 하고 도망치던 사람을 데리고 그녀는 땅바닥에 함께 앉아 데리고 굿을 했다. “차마 말로 형언할 수 없게 정신 없던 굿판이었습니다. 마음의 병, 외로움 있는 사람들이 빙의가 되기 쉽습니다. 그런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것이 저희 일이죠. 무당은 사람의 마음 어루만져 치유해 주는 사람이니까요. 곁에 앉아 한없이 울게끔 만들어 주었죠.” 그 결과 거짓말처럼 그 사람의 빙의는 말끔히 치료가 했다. 지금은 마산 어시장에서 건어물 장사를 한다는 사람의 사진까지 직접 보여주며 영험했던 사례를 들려주었다. 들을수록 신비롭고 놀라운 이야기들의 연속이었다.

 

공심보살은 자신은 문서 문제를 잘 본다고 자신했다. 빙의, 알콜 중독으로 고생 하는 사람들 낫게 한 적이 많다고 전했다. 질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낫게 한 수많은 사례들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제자도 많이 냈다. 현재 곁에 있는 제자만 4명이다. 8년째 밑에서 배우고 있는 제자가 있을 정도.

 

 

경상남도 함안군에 자리잡은 용화사 사찰에서
경상남도 함안군에 자리잡은 용화사 사찰에서

 

 

민속 신앙 자리매김하는 역할하고 싶어

공심보살은 다른 무속인들에게는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늘 배우고, 학습을 할 것을 강조했다. “영은 신이 주는 것이지만 스스로 많은 배움을 해야 합니다. 음악을 알아야 춤을 출 수 있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녀는 자신으로 말미암아 민속신앙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계기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도 전했다. “사람들이 흔히 무속을 미신이라고 치부 하지만 무속은 그 자체로 종교이자 행위예술입니다. 무속은 모든 희노애락을 표현하며 국악, 한국무용 역시 무속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죠. 저는 인간과 신과의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신에서 주시는 것을 통해 행위를 하기 때문에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무속이 민속 종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무속인의 길을 끝까지 거부하려 한 공심보살이었지만, 신은 그녀를 필요로 했다. 아마도 이 땅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통해 평온해 질 수 있기를 바란 뜻이 아니었을까. ‘공심보살이라는 이름 역시 그녀에게 보여주신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녀가 본 것은 동그라미 과 마음이었다. “제게 주신 것은 아무것도 없는 , 마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신의 세계로 들어올 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왔습니다. 대가를 바라지도 않고, 그저 신의 길을 걷겠습니다.” 이제는 그 숙명을 받아들이고 들리는 목소리와 느낌을 통해 온갖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을 구원하는 공심보살이었다. 힘든 운명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녀를 찾아보는 것이 어떨까. 분명 기적을 만날 수 있으리라.

 

 

김태균기자  press6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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