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필의 음색과 자신들만의 고유한 연주 스타일로 베를린필과는 다른 관현악 세계를 확실히 펼쳐

빈 필이 베를린필의 그늘에 가려있다는 생각을 그동안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11월 1-2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서 접한 브루크너 교향곡 8번과 올 슈트라우스 관현악 연주를 감상하고서 이런 내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빈필은 빈필의 음색과 자신들만의 고유한 연주 스타일로 당당히 무대에 서서 베를린필과는 다른 관현악 세계를 확실히 펼치고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다.

11월1일 금요일 밤 첫날, 빈필이 뽑아든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은 필자에겐 베를린필이 8년전 내한공연시 연주한 단 한곡의 선택 말러교향곡 9번을 흡사 연상시켰다. 매해 신년 전세계 음악애호가들의 시선을 끄는 빈필 신년음악회의 왈츠 연주로 인상이 짙은 빈필로서는 1873년 브루크너 본인이 직접 지휘를 맡아 빈 필과 초연을 한 끈끈한 관계를 보여주며 웅장함과 경건함이 묻어나는 묵시적 진중한 곡의 연주에도 강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지휘 스타일을 처음 본 것은 12년전인 2017년 11월 성남아트센터에서 뮌헨필과 내한공연 때다. 그때만 해도 틸레만이 40대 후반이어서 세계 지휘계에 그 위상이 확고히 뿌리내렸다고 볼 수 없는 시점이었는데 그 이후 올해 빈필 신년음악회에서 더욱 내공이 다져진 그의 지휘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번 서울 내한공연에서 틸레만은 한국 음악팬들에게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의 명확한 음악적 구조를 보여주는데 초점을 맞춰 자신이 내한공연 직전 밝힌 대로 정말 대단한 영감을 갖고 있어서 다시 한번 들어봐야겠다는 마음들을 관객들에게 불러일으킨 것 같다. 틸레만이 4악장 마지막 고개와 허리를 숙이며 한참동안의 정적을 이어간 것은 차이콥스키교향곡 6번 비창 마지막 4악장의 끝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정적과 침묵이 이어져 이날 연주의 또하나의 백미였다고 본다.

11월2일 빈필은 올 슈트라우스 연주곡들로 관현악의 향연을 펼쳐 묵직한 브루크너의 세계와는 다른 곡들의 연주에도 능한 관현악단이란 사실을 새삼 일깨웠다.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 Op. 28은 슈트라우스의 교향시로 독일 시골 민화속 인물인 틸 오일렌슈피겔의 불운과 장난에 관한 연대기를 담고 있다. 틸을 대표하는 2가지 주제가 각기 호른과 클라리넷으로 해학적으로 연주된 반면 섬세하고 예술적 연주가 돋보인게 빈필의 이튿날 연주의 전반부에서 인상적이었다.

2부에서 연주된 오페레타 <집시남작>서곡과 디나미덴, 왈츠, 작품번호 173 연주는 흡사 1월1일의 빈 신년음악회를 서울 예술의 전당에 갖다놓은 듯 했다. 이어진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 모음곡, 작품번호 59는 유럽 궁정사회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듯한 연주로 연주의 밀도가 뛰어나 이날의 하이라이트였다는 평들이 있었다.

바그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비롯한 독일 낭만 오페라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는 틸레만의 연주 스타일에 비춰 그가 지휘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가 연주해 녹음된 CD를 들어보니 틸레만의 슈만교향곡 전집은 고풍스러운 음색과 탁월한 오케스트레이션의 상쾌한 연주가 돋보이는 슈만교향곡 1번부터 귀를 잡아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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