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7년간 살던 아파트에서 이사했다. 식구가 단출해져 큰 집이 필요 없게 됐기 때문이었다. 작은 집으로 가야 했기에 짐 줄이는 게 큰일이었다. 무엇이든지 아끼고 가급적 재활용하는 습성 탓에 집에는 켜켜이 쌓인 세간이 많았다. 심지어 전에 살던 곳에서 이사 올 때 가지고 왔던 상자가 그대로 벽장 한 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같은 평수 집으로 이사하는 게 아니기에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일임할 수 없었다. 옮기는 것은 그들이 하지만 자질구레한 것을 정리하는 건 주인이 직접 해야 할 몫이었다. 살던 집에서 버릴 것은 버리고 가야지 귀찮다고 모두 끌고 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정리해야 할 것은 크게 옷, 책, 가구류와 잡동사니였다. 먼저 옷은 지난 1년간 한 번도 안 입었던 것, 몸에 안 맞게 된 것, 유행이 지난 게 처리 대상이었다. 그동안 정들었던 옷이라 아까웠지만 비교적 쉬운 편이었다. 그러나 책이 골칫덩이였다. 책 안에 한 사람의 인생이 들어있다 생각하니 쓰레기통으로 선뜻 손이 안 갔다. 게다가 옷은 재활용 수거함에 넣으면 누군가에 도움이 되지만 책은 폐지로 처리된다고 생각하니 차마 버리기 아까웠다. 불현듯 수년 전 캐나다 여행할 때 눈여겨봤던 책 수거함이 생각났다. 밴쿠버에는 주택가마다 옷 수거함 옆에 책 수거함이 나란히 놓여있었다. 공공시설에 기증되는 이런 책 수거함이 우리도 있다면 그리 주저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구류도 마찬가지다. 침대, 책상, 의자, 책꽂이, 장식장, 서랍장 등 이제까지 멀쩡하게 사용하던 건데 공간이 협소해 할 수 없이 인연을 끊는 게 아쉬웠다. 그것도 적지 않은 비용까지 지불하면서 버려야하니 심한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통계청이 실시한 ‘2018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1999만9천 일반가구 중 아파트 거주 가구는 1001만3천 가구로 약 절반 넘는 사람이 공동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이렇게 함께 모여 사는 데 따른 장점을 활용하면 어떨까. 특히 처리비용까지 많이 드는 가구는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가져다 사용할 수 있도록 아파트단지 내 특정 공간에 일정기간 거치하면 좋겠다. 그렇게 하고도 남겨진 것에 한해 주인이 처리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게 될 것이다. 검소는 우리가 살면서 지녀야 할 큰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짐을 줄이고 난 지금 마음은 한결 홀가분해졌다. 군살을 빼 체중이 훨씬 가벼워진 느낌이다. 그동안 너무 몸이 무거웠다. 없어도 사는데 아무 불편함 없는 많은 걸 껴안고 살았다. 작지만 다양한 기능을 갖춘 집에 사니 편리한 점이 많다. 우선 동선이 짧아 좋다. 거실을 중심으로 안방, 서재, 옷방, 주방, 화장실, 다용도실이 옹기종기 한 데 모여 있다. 그만큼 관리해야 할 공간도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전에 살던 데보다 시내 중심으로 옮겼으니 이동시간이 적잖이 절약된다. 출퇴근 하는데 편도 30분 정도면 충분하다. 이것만 해도 하루 1시간을 번 셈이다. 일본에서는 직원 채용할 때 집에서 회사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묻는다 한다. 그만큼 출퇴근 소요시간과 업무 효율은 상관관계가 높다는 말일 게다.

  한 5년 주기로 주거환경을 바꾸는 것도 괜찮을 거 같다. 그럼으로써 몇 년간 쌓아놓기만 한 살림을 정리하고 새롭게 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벌써 6년 전 한 친구는 제주도로 훌쩍 떠나 아직도 살고 있다. 최근 또 한 친구도 지방에 살고 싶다며 고향 근처 남해안으로 갔다. 익숙한 것과 헤어진 것이다. 사람은 익숙하게 되면 나태해지고 자칫 무료해지기 쉽다.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새로운 환경에 놓이면 나름 거기에 맞추느라 한동안 몸과 마음이 게을러질 수 없다. 살면서 운동 삼아 동네 이곳저곳을 산책할 셈이다. 우리 동네가 어떻게 생겼고 집 가까이 무엇이 있는지 알아야 할 거 같아서다. 이러면서 당분간 마치 여행 온 기분으로 살게 되지 않을까. 새로운 동네에서 앞으로 펼쳐질 새 생활이 크게 기대된다.

 

저작권자 © 엔디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